기업경영과 경제
[중앙일보]신성장동력은 함께 밀어야 문이 열린다.
FERRIMAN
2008. 7. 2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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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입력시간 : 2008-07-23 오전 1:14: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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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장동력 찾아라 <中> 함께 밀어야 문 열린다
MS·소니·HP는 첨단기술 공동구매 한국은 ‘나홀로 기업 문화’ 리스크 커 P&G의 ‘히트상품 제조’비결은 … 전세계 활용 가능 연구원 150만명
“우리 회사 안에는 신성장 동력 산업을 찾는 연구원이 8700여 명 있다. 전 세계에 네트워크화된 연구원은 150만 명이 넘는다.” 글로벌 생활용품업체인 미국의 플록터&갬블(P&G)이 자랑하는 말이다. 이 회사는 2000년부터 자사의 지적 재산과 다른 사람의 지적 재산을 공유하는 ‘연결 그리고 발전(C&D·Connect&Develpment)시스템’을 마련했다. 신성장 동력 찾기는 리스크(위험)가 워낙 커 사업화하기까지 개별 기업 역량만으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외 선진 기업들은 회사 밖 자원을 네트워크화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 P&G의 경우 관련 대학 교수, 정부 출연 연구기관, 협력업체 연구원을 자사 연구원과 똑같이 활용하고 있다. 각종 정보와 아이디어에서부터 사업성 검토와 시장조사 때도 이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P&G 측은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초기 신사업 투자에 대한 위험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된 크레스트 전동칫솔과 프링글스 프린트 등은 바로 C&D시스템으로 탄생했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신사업 발굴 때 주로 ‘오픈 이노베이션(열린 혁신)’방식을 쓴다. 인텔의 경우 Lablet라는 협업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미국의 버클리·카네기멜런대와 영국의 케임브리지대, 중국의 칭화대를 상호 연결해 신사업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투자 부담이 커 자사가 쓰지 않고 있는 특허와 예비 기술을 벤처업체에 주고 그 대가로 일부 지분을 받는다. 일종의 협업 모델인 셈이다. 일본의 ‘도레이 합섬 클러스터 방식’도 눈길을 끈다.
섬유업체인 도레이와 후루리쿠 지역 내 염색·직물업계, 현지 대학, 연구소가 손잡고 독특한 협업 체제 모델인 클러스터를 만든 것이다. 이 클러스터를 통해 ‘콩에서 추출한 아미노스 섬유’ ‘우주선에서 쓰였던 탄소섬유로 만든 지갑’ 등 수없이 많은 첨단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이 체제는 2004년 가스 노스케 도레이 명예회장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기술·신상품을 내놓자는 게 목표였다. 우선 클러스터 내 11개 분과위원회를 만들었다. 분과위원회란 업종 혹은 상품별로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이 모임에 참여한 회사들은 제품의 최신 유행이나 정보를 공유하고 신상품·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은다. 분과위원회가 아이디어와 기술을 제안하면 대표 기업 격인 도레이가 이를 기초로 원사나 첨단소재를 개발한다. 클러스터 가입 업체는 처음엔 68개였으나 현재는 106개로 늘었다. 송재용(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 미래 비즈니스 환경이 갈수록 복잡하고 불투명해지는 추세”라며 “이 때문에 세계 최대 컴퓨터 메이커인 IBM조차 내부 기술과 역량만으로 독자적으로 신성장 동력 산업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신성장 동력 산업 찾기에서 세계 흐름과는 정반대로 외부와의 협력을 기피하고 여전히 독자 행보를 고집하고 있다. 국내의 폐쇄적인 기업문화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회사별로는 특허 출원이 많지만 제대로 활용되는 비율은 낮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끼리 협력한다면 상품화할 수 있는 특허가 각 회사의 캐비닛에서 사장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소 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또 전문적인 기술을 중개할 수 있는 기술거래소 같은 인프라도 취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백동현 한국기술거래소 본부장은 “마이크로소프트·소니·HP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세계의 첨단기술을 공동으로 사들일 정도”라며 “국내에선 개별 기업이 큰 위험을 떠안아 가며 신성장 동력 산업을 찾다 보니 실패가 잦고 제대로 된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일보가 전국경제인연합회·삼성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많이 나왔다. 주요 기업의 신수종 사업 발굴 담당자와 학계, 민관 싱크탱크, 정부 부처 관계자 등 110명을 설문한 결과 “사업이 불확실한 데다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 ‘각개약진식 추진(8.8%)’보다 ‘기업 간 협업 체제(30.39%)’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이런 식의 개방형 유망 사업 발굴에 익숙하지 않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폐쇄적인 기업 문화 때문이다. 강병창 삼성종합기술원 전무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국내의 신성장 동력 산업 찾기를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며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동종 업체끼리 힘을 합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김형걸 법률팀장도 “일본처럼 기업과 기업은 물론 기업과 공공기관 간 공동 연구체제를 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표재용·안혜리·장정훈 기자 전경련 김민성 미래산업팀 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임영모·복득규 수석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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