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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위기의 서남해 조선소

FERRIMAN 2008. 9. 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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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서남해 조선소

널려있는 녹슨 철근ㆍ멈춰선 기중기…멈춰선 C&중공업ㆍ대한조선
추석 앞뒀지만 임금 두달 밀려…대형 조선업체에 인수설 확산

추석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10일 오전. 전남 목포시 삽진산업단지 내 C&중공업 방문객 주차장에는 단 한 대의 차량도 없었다. 블록생산공장 내부에도 작업자는 없고 언제 잘라 놨는지 모를 철근만 여기저기 쌓여 있을 뿐이다. 철근을 실어 나르던 지게차도 한 귀퉁이에 처박힌 지 오래다.

올 연말까지 인도해야 한다는 8만1000t급 벌크선은 선미부분만 건조된 채 덩그러니 서 있었다. 길이만 320m에 이르는 도크는 맨 앞쪽 50m의 공사가 진행되지 못해 무용지물로 전락해 버렸다. 한 달 임차료만 1억원을 한다는 400t짜리 기중기 2대도 도크 안에 멈춰 서 있었다.

공장 가동이 완전 중단됐다. 이기희 C&중공업 부사장은 "금융권에서 돈줄이 막혀 임금과 납품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미 지난달 15일 협력업체가 모두 철수해 버린 상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C&중공업 협력업체는 모두 20곳. 납품업체만 500여 곳에 달한다. 현재 C&중공업이 협력업체에 지급하지 못한 돈은 780억원. 이 중 인건비가 290억원이다.

블록 도장과 페인트를 맡고 있는 협력업체인 대원쇼트 김진일 사장은 "직원 130명의 두 달치 임금인 10억여 원을 받지 못했다"며 "33년간 조선소 협력업체를 해 오면서 임금이 체불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소연했다. 추석 상여금은 고사하고 월급마저 2개월째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조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남 해남에 울산 현대중공업에 이어 국내 2위 규모(396만여 ㎡) 조선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 43척, 총 3조2000억원어치를 수주한 대한조선은 이미 가동 중인 1도크에서 21척, 2도크에서 22척을 건립키로 결정했지만 자금이 문제다.

올해 초 4000억원의 시설자금을 우리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상태다. 당초 10월까지 2도크 공사를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달랑 3~4대 포크레인만 터파기 작업을 하고 있다. 몇 달째 공사 진척이 거의 없는 상태다. 내년 10월까지 17만t급 벌크선을 2도크에서 건조를 완료해야 하지만 사실상 힘들게 됐다.

이처럼 전라남도가 서남권에 조성 중인 조선클러스터 정책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일부 중소형 조선사들이 대형 조선소로 넘어간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전라남도는 2013년까지 신안지역 조선타운(1499만㎡)에 17개 신생 조선소를 건립하는 것을 비롯해 서남권을 조선클러스터로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매출 15조원에 고용인원만 6만명을 만들어내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대표적 중소형 조선소인 C&중공업과 대한조선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휘청거리는 바람에 정책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후판값 급등에다 금융권 자금경색이 겹치면서 신생 중소형 조선사들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전남도도 수치 홍보에 매달릴 게 아니라 특단의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자금 숨통만 터주면 정상으로 갈 수 있다."(박영길 C&중공업 관리이사)

C&중공업은 지난 4월 우리은행을 주관사로 하는 금융권에 시설자금으로 1700억원가량의 대출을 요청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회사의 방만한 경영과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대출을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이다. 여기에 선주로부터 선수금을 받을 때 필요한 RG(선수금 환급 보증서)마저 금융권에서 거부해 선박 건조도 늦어지고 있다.

박영길 C&중공업 관리이사는 "금융권에서 시설자금과 RG 부분만 해결해 주면 당장 열흘 내에 2300억원이 유입돼 조선소의 정상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수주해 놓은 선박조차 공장이 멈춰서는 바람에 건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희 C&중공업 부사장은 "이번 달 말까지 자금조달에 실패하면 사실상 조선소를 더 끌고 가기 힘들어진다"며 "올 12월 말 첫 배를 인도하지 못하면 내년 2월부터 하루에 1650만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올해 들어 폭등한 후판값도 조선소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 t당 800달러(중국 수입가격 기준) 하던 후판가격이 최근 1300달러로 50% 이상 폭등했다.

사정이 다급해진 대한조선은 아예 전남도에 'SOS'를 청했다. 김재곤 대한조선 부사장은 최근 전남개발공사를 방문해 "2도크가 산업단지로 지정된 만큼 전남개발공사에서 공사를 해주면 나중에 분양받는 방식으로 대금을 갚겠다"고 제안했다. 공사 대금은 약 1500억원.

전남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먼저 세금으로 민간업자 공사를 해 주는 것이 공기업 취지에 맞지 않고 경영난에 시달리는 타 기업 간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한조선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부도와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지역경제에 피해가 나타날 수 있어 이 같은 제안을 무시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김영창 전남개발공사 경영본부장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 "현재 심사숙고를 거듭하고 있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대한조선의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대형 조선소의 인수설마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정작 해당 조선소에 대한 대출을 맡고 있는 은행 관계자는 "자금 지원이 안 되는 것은 두 회사에 대한 리스크가 그만큼 크다고 봐야 한다"면서 "현재 실무자들이 지원을 검토하고 있지만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남지역에서 조선소를 운영하는 A 사장도 "현재 금융권은 신생 조선소에 대해 자금줄을 옥죄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형 조선소에서 중소형 조선소를 인수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경영난에 시달리는 업체는 지역경제를 위해서라도 대형 조선소에 넘기는 것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전남에서 가동 중인 조선소가 56개다. 지난해 총매출이 3조여 원. 전국의 11%다. 고용인원은 2만4000명 정도 된다.

정부와 전남도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2004년 전남 전략사업으로 조선산업을 정한 이후 조선소를 과도하게 유치하면서 벌어진 후유증이라는 지적이다.

양복완 전남도 경제과학국장은 "향후 10년간은 조선산업의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조선클러스터를 추진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조선과 C&중공업은 개별업체에 국한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 국장은 "금융권에서 신생 조선소에 대한 대책을 강화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조치"라며 "정부가 전남도 지역을 조선산업 전략지로 선택한 만큼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 송성훈 기자 / 목포 해남 = 박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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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1 04:05: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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