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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올] 얼음판은 왜 미끄러울까?

FERRIMAN 2010. 2. 17. 14:56

왜 얼음판은 미끄러울까?

해묵은 질문, 그러나 답은 모른다

▲   ⓒ연합뉴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금 6개를 따내며 세계 올림픽 역사에 새로운 장을 쓴 우리의 쇼트트랙은 아직도 얘기하면 흥분된다. 특히 2002년 동계올림픽에서 미국 선수 안톤 오노와의 불미스런 일이 생각나 매 경기마다 혹 선수들이 몸싸움하다 또다시 넘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서 골인했을 때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는 얘기는 언제나 하이라이트다.

쇼트트랙, 피겨 스케이트를 비롯해 동계올림픽 경기에서 선수들이 빙판에서 미끄러지는 일은 흔하다. 메달 기대주였던 선수가 엉덩방아를 찧을 때는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는 일은 너무나도 익숙한 현상이다. 따라서 ‘왜 얼음판은 미끄러울까’는 질문은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그렇다면 이 질문은 21세기 첨단의 시대에 전혀 어려운 문제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오래 전 과학자들이 그 해답을 찾았을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최근 미 뉴욕타임스는 우리가 아직도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왜 얼음판에서 미끄러질까? 다음 3가지 설명 중 어느 것이 가장 타당한지를 먼저 생각해보자.

1. 빙판을 누르는 압력으로 얼음이 녹기 때문
2. 빙판을 지나면서 발생하는 마찰로 인해 열이 발생해 얼음이 녹기 때문
3. 얼음판 자체가 미끄럽기 때문

이 문제를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몇번을 선택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어디선가 책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첫 번째를 선택할 것이다. 첫 번째가 한때 교과서에 수록된 설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답이다.

얼음은 특이하게도 액체상태인 물보다 밀도가 더 낮다. 이 때문에 얼음은 물 위로 뜬다. 이에 반해 영하 115도에서 언 알코올은 액체 알코올 잔 바닥으로 쏙 가라앉고 말 것이다.

얼음이 압력이 낮다는 것은 압력을 가하면 녹는점을 0도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를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탈 때에 적용해보자. 길죽하고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은 빙판에 압력을 준다. 이 압력은 표면 얼음의 녹는점을 낮춘다. 그렇게 해서 표면 얼음은 녹게 된다. 그럴 듯한 설명이다.

미 위스콘신주에 위치한 로렌스대 화학과 교수 로버트 로젠버그 박사는 미 물리학회에서 발행하는 피직스 투데이 지난해 12월호에 이 설명이 잘못됐음을 명백히 보였다. 68kg의 사람이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위에 서 있다. 이때 빙판에 가해지는 압력은 제곱센티미터의 넓이에 3.5kg이다. 일반적인 스케이트 날은 면도날처럼 날카롭지 않고 두께는 약 3mm이며 길이는 약 30cm 정도다. 따라서 두 개의 스케이트 날이 바닥과 닿는 면적은 182제곱센티미터. 이 면적에 68kg이 누르면 얼음의 녹는점은 고작 -0.017도 정도 떨어진다. 하지만 빙판은그보다 더훨씬 낮다.

더 나아가 압력에 의한 효과는 왜 바닥이 평평한 신발을 신은 사람도 빙판에서 잘 넘어지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훨씬 더 넓은 면적이 얼음과 닿고 있어서 빙판에 가해지는 압력이 상당히 낮은 데도 말이다.

이런 까닭에 압력에 의한 효과 대신 다른 두 설명이 타당하게 얘기되고 있다. 그 중 현재 좀더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마찰 효과다. 빙판 위로 스케이트 날이나 신발이 지나가면서 마찰이 생긴다. 이로 인해 열이 발생해 얼음이 녹게 되고 그 결과 빙판에 미끄러운 층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마찰 효과는 가만히 서 있을 때 역시 왜 미끄러운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가만히 서있을 때는 마찰이 생겨나지 않아 열이 발생하지 않아도 "얼음은 여전히 미끄럽다."

그래서 10여 년 전 얼음표면이 단지 미끄럽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얼음은 물분자가 6각 고리를 이루는 구조다. 그러나 가장 최상층은 이 구조를 갖지 못한다는 게 이 주장의 설명이다. 최상층의 물분자는 서로 고리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0도 아래에서도 얼지 않은 액체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즉 얼음은 본질적으로 물의 층을 갖는다는 것.

이 개념은 사실 10년 전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1850년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간단한 실험을 통해 이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는 두 개의 얼음조각을 서로 마주보도록 눌러줬다. 그러자 두 개의 얼음이 하나로 합쳐졌다. 이 실험을 통해 패러데이는 얼음 표면이 물층으로 돼 있는데 두 개의 얼음이 만나게 되면 이 물층이 더 이상 표면에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 얼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물층이 너무나도 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관찰하지 못했다.

1996년 로렌스버클리 연구소 과학자 가보 소모자이는 얼음표면에 전자를 쏘아 전자가 어떻게 튕겨 나오는지를 관찰했다.전자가 튕겨 나오는 패턴을 통해 분석한 결과, 영하 148도까지 전자는 고체인 얼음이 아니라 액체인 물과 충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 년 후 독일의 과학자팀이 얼음에 헬륨원자를 충돌시켜 본 결과 역시로렌스버클리 연구소에서 발견한 점과 일치했다. 소모자이 박사는 "물층은 얼음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본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빙판은 미끄러운가에 대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물층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유력할까? 아니다. 과학자들은 마찰과 물층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로젠버그 박사는 이에 대해 "현재 나는 두 가지 주요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말한다"고 대답했다.
/박미용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