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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썩는 친환경 통신선

FERRIMAN 2010. 6. 7. 11:50

기사 입력시간 : 2010-06-07 오전 12:25:00
[피플@비즈] 썩는 친환경 통신선, 미국 1위 통신사에 수출
세계 첫 옥수수로 만든 케이블 제품 개발 … 삼신이노텍 김석기 대표
옥수수나 감자·고구마 등에서 추출한 전분을 주원료로 만든 케이블(통신선) 제품이 출시된다. 통신기기 액세서리를 생산하는 삼신이노텍은 7일 생분해성 케이블 제품 60만 개를 미국 1위 통신회사인 버라이즌에 수출한다고 밝혔다. 4일 경기도 고양에 있는 본사에서 만난 김석기(50·사진) 대표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친환경 케이블이 세계 최대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삼신이노텍은 이어폰·USB케이블·무선헤드폰 같은 통신기기 액세서리를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지난해 말 식물성 전분을 주원료로 하는 생분해성 케이블을 개발했다. 기존의 석유화학 계열 피복선을 식물 성분으로 대체해 미생물에 의한 생분해가 가능한 제품이다. 3월엔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김 대표는 “옥수수·감자 전분이 30% 이상 들어 있어 땅 속에서 6개월이 지나면 피복선이 70% 이상 저절로 썩는다. 환경에 이로운 것은 물론이고 구리 같은 금속 성분과 분리가 쉽다”고 소개했다. 한국화학시험연구원이 시험한 결과 이 회사가 개발한 합성수지 물질은 45일 이내에 45% 이상 생분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 신뢰성 테스트도 통과했다. 심하게 구부리거나 열을 가해도 성능에 이상이 없다는 설명이다. “플라스틱 합성수지가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요. 그러나 뛰어난 경제성 때문에 업계에선 대체 상품 만들기를 주저했습니다. 사실 이를 대체할 신상품을 만들기도 어려웠고요.” 김 대표는 “국제 유가와 농산물 가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신제품의 재료비는 이전과 거의 비슷하다”고 소개했다.

생분해성 케이블은 옥수수나 감자·고구마 같은 식물을 원료로 사용한다. 옥수수(사진 왼쪽) 등에서전분을 추출한 뒤 여기에 특수오일, 폴리프로필렌 등을 더해 새로운 합성수지(가운데)를 만든다. 이합성수지 안에 구리 같은 전도체(와이어)를 넣어 고온 사출한 다음 기타 부속품을 붙여 이어폰 같은 제품(오른쪽)을 완성한다. [삼신이노텍 제공
김 대표가 친환경 제품 개발에 나선 것은 2007년 가을께다. 그를 움직인 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절박함이었다. 이 회사는 중국 톈진에 공장을 두고 연간 60여 개 아이템, 5000만 개 이상의 제품을 만든다. 지난해 1300여 임직원이 3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순이익은 10억원 수준. 그러나 1인당 매출액이 290여만원에 불과한 전형적인 노동집약 업종이다. 그는 “삼신은 세계 시장 점유율 0.5% 내외”라며 “이대로 가다간 언제 경쟁에서 밀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궁즉통이었을까. 중국 출장 중 우연히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물을 보게 됐는데, 그 주원료가 녹말가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온도에 따라 녹고 굳는 성질도, 가벼우면서 성형이 쉬운 속성도 피복선을 만드는 폴리프로필렌 소재와 유사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쓰고 있는 케이블에 응용할 수 없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며 “이때부터 2년간 200차례 넘는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기껏 만들어 놓은 합성수지가 물처럼 흘러버리기는 예사였고 10단계에 이르는 사출 온도를 조절하기도 까다로웠다. 이런 시행착오 끝에 지난해 말 전분 30%와 특수오일·폴리프로필렌 등을 섞은 신물질을 개발했다. 사실 개발에 성공했을 때 나도 놀랐다.”

특허 등록을 서두르는 한편 미국 버라이즌과 판매 협상을 벌였다. 밀고 당기기를 6개월여, 7일 초도 물량을 실은 컨테이너 3대가 미국으로 출항한다. 김 대표는 “이어폰의 경우 개당 납품가격이 4.1달러로 기존 가격(3.4달러)보다 20% 이상 높게 받았다”며 “회사 수익성이 그만큼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제품은 ‘아이-디지(i-DIGI)’라는 자체 브랜드로 출시하고, 겉포장에 ‘삼신’ 로고를 넣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휴대전화를 살 때 이어폰을 포함한 모든 액세서리를 따로 사야 한다. 자연스럽게 삼신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갈 것이고, 다른 업체와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 대표는 “현재 전분을 주원료로 한 플라스틱 사출 제품을 개발 중”이라며 “TV와 휴대전화 등에 들어가는 부속품에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이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