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교육과 정책

[사이언스타임즈] 과학 기술과 과학 정신

FERRIMAN 2010. 11. 22. 08:47

철학자가 말하는 과학‘기술’과 과학‘정신’ ‘과학과 인문사이’ 강연회 19일 KT&G 상상마당서 열려 2010년 11월 22일(월)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인간의 진보를 이끌어가면서 과학기술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이 국력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과학기술이 강력한 국가의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한국과학문화재단이 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 재출범하고 과학과 수학, 교육의 융합을 꾀하고 있다. 그러면 이런 시대에 과학정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19일 KT&G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과학과 인문사이’ 강연회에서는 ‘과학기술과 과학정신’이라는 주제로 엄정식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강연이 진행됐다. 이번 강연회는 과학과 인문·예술의 융합을 위한 ‘2010 융합문화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 ‘과학과 인문사이’ 강연회가 19일 KT&G 상상마당에서 진행됐다. 

‘과학’과 ‘기술’은 동의어가 아니다

엄정식 교수는 먼저 “원래 과학과 기술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강연을 시작했다. 엄 교수에 따르면 최초의 철학자인 탈레스는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답변을 찾기위해 신전에 가서 신탁을 묻거나 신의 영감을 얻는 것이 아닌, 사물을 관찰하고 실험을 하며 추론을 통해 답을 얻으려 했다.

엄 교수는 이어 “과학은 기술을 염두에 두고 나온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탈레스가 고민했던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는 철학적 질문은 과학정신으로 무장한 입자물리학자들이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통해 얻으려는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그런 질문이 기술과 연관이 된다면 이는 ‘쓸모없는 질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엄 교수는 말했다.

엄 교수는 “과학은 철학과 함께 ‘순전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욕구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며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진리를 향해서, 앎을 위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욕구, 그것이 과학정신이다”라고 과학정신을 정의했다.

한중일 3국, 과학‘기술’만 받아들이고 과학‘정신’은 배제

19세기 말경 서구 문명이 동아시아를 거침없이 밀어붙일 때 중국에서는 중체서용(中體西用), 일본에서는 화혼양재(和魂佯才), 우리나라에서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논리를 내세웠다. 서로 강조하는 점이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이 세 논리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신은 우리가 우월하지만 기술이 쓸모가 있으니 그것만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다.

▲ 엄정식 명예교수는 한중일 3국이 과학기술에만 신경을 쓰고, 과학정신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이에 대해 “그러한 태도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며 “서구의 과학기술문명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고 아직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므로 동양의 고전으로부터 대안을 마련하자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또한 “일본은 재빨리 과학기술을 습득해서 표면상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고, 한국과 중국도 갈 길을 재촉하고 있지만 관심은 여전히 예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학기술에만 신경을 쓰고, 지금의 과학기술을 가능하게 한 과학정신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과학정신은 무엇이고, 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과학정신이 가지고 있는 네 가지 특성

과학정신은 오직 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어낸 자료를 근거로 해서 논증이란 방식에 의해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려는 탐구의 정신이다. 이는 인류가 진보하기 위해 갖춰야 할 네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엄 교수에 따르면 그 중 첫 번째는 합리적 태도이다. 과학정신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감각적 지각과 이성적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직관과 상상력, 때로는 영감 같은 것에 의존할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반드시 경험적 증거와 합리적 논증을 거쳐야한다는 점에서 합리성을 지닌다.

둘째, 과학정신은 비판적 입장을 지닌다. 과학자의 세계에는 영원한 진리나 절대적 권위는 존재하지 않고 어떠한 이론도 항상 새롭게 검토된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이고 좀 더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태도를 지니지 않는다면 과학적 탐구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과학정신은 개방적 자세를 지닌다. 과학은 탐구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실수와 오류를 범하지만 그것이 검증되거나 반증되면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개방적이다. 과학적 진리가 다른 종류의 진리와 달리 끊임없이 개선되고 그 축적의 과정을 통해서 오늘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넷째, 과학정신은 보편적 성격을 지닌다. 과학적 탐구의 성과는 어느 시대나 지역, 혹은 특정한 국가나 민족 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삼라만상에 골고루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또한 그것을 적용한 기술이 어느 특정한 부류의 개인이나 집단에만 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보편성을 지닌다.

과학정신 구현이 인류 문명 상승의 열쇠

▲ 과학정신은 인류 진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지금까지 과학정신의 네 가지 특징에 대해 알아봤다. 엄 교수는 이어 “그렇다면 이것들이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는 질문을 던지며 강연의 막바지로 다가갔다.

철학자 칼 포퍼에 의하면 과학자들이야말로 과학정신의 특징을 가장 잘 터득하고 있다. 과학자는 합리적이고 비판적일 뿐 아니라 개방적이며 보편적인,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엄 교수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그 예로 들었다.

“내가 과학의 분야에서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상 관 없이 증거만을 매우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서술하는 것이다. 어떤 이론을 만들었다면 그 이론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설명해야 한다. 과학을 함으로써 순수와 정직이라는 규범을 저절로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은 과학자들이 과학정신의 네 가지 특성을 터득하고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준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은 과학자들의 집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엄 교수는 “바로 그러한 정신을 구현해야 상업문화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로 확대될 수 있고 봉건적인 폐쇄사회가 자유민주주의로, 그리고 독점적인 제국주의적 문화가 개방적인 다원적 문화로 발전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체제나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 다원적 문화형태 등이 과학정신의 구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 교수는 “칼 포퍼가 ‘개방사회’의 전형을 과학자 집단에서 찾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마지막으로 “새 정부의 과학과 교육을 연관시켜서 발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책은 환영할만하다”라며 “그러나 과학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과 과학정신을 구현하는 교육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엄 교수는 “단순히 선진국 대열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인류문명을 한 단계 더 상승시키는 데 공헌하기 위해서도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김청한 기자 | chkim@kofac.or.kr

저작권자 2010.11.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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