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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일본 트레킹 패키지

FERRIMAN 2012. 4. 7. 09:58

호텔도, 골프장도 없다 … 시간이 멈춘 동화 속 마을

[중앙일보] 입력 2012년 04월 06일

1 유후다케는 온천마을 유후다케를 지키는 정령과 같은 산이다. 화산이 폭발해 생긴 산이지만 사람을 받지 않는 산은 아니다. 산행이지만 산보마냥 편안하다.





국립공원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기 위해 두른 최소한의 울타리다. 이렇게 울타리라도 치지 않았더라면 세상의 모든 자연은 개발이나 이용이란 미명 아래 진작에 희생되었을지 모른다.



하여 국립공원 울타리 언저리에 터를 닦은 인간의 삶은, 번잡한 대도시의 삶과 다를 수밖에 없다. 국립공원 울타리에 기대어 사는 삶은, 자연의 위대함을 이해하는 혹은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가장 자연스러운 삶이다. 일본 규슈(九州)의 작은 온천마을 유후인(由布院)의 삶이 바로 그러하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온천 관광지이지만, 유후인은 사실 아소큐슈 국립공원을 이루는 봉우리 유후다케(由布丘·1584m)의 정기를 머금은 두메산골이다. 유후인이 되바라진 온천 관광지가 아닌 까닭은, 자연을 배려하는 인간의 진심이 마을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2 유후인 마을을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재미가 가득한 가게와 수없이 만나게 된다. 일본 고로케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고로케 가게. 모든 재료를 유후인에서 나오는 것으로 만들었단다.
3 유후다케에 올라 내려다본 유후인. 아소구주 국립공원을 이루는 마루금 사이에 쏙 들어가 앉은 전형적인 산악 분지 마을의 모습이다.
4 유후인의 대표적인 풍경인 긴린코.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호수라는 뜻이다.

#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 유후인



유후인은 규슈 오이타(大分)현의 외진 산촌이다. 인구도 1만10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관광객은 지난해 340만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발길이 줄어 이 정도다. 이태 전에는 연 400만 명을 웃돌았다.



 유후인은 온천 마을이다. 유후인 온천은 835개 원천(源泉)에서 1분에 4만2000L가 쏟아져 나온다. 일본에서 용출량이 둘째로 많지만, 온천의 역사는 의외로 미미하다. 일본 천황이 머물렀다거나 에도 시대 누가 병을 치료했다거나 하는, 흔한 이야기 하나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이유는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유후인은 오이타현 가운데 있다. 동서 8㎞ 남북 22㎞의 타원형 분지로, 유후다케를 비롯한 1000m가 넘는 산줄기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유후인 마을의 평균 고도는 해발 470m다.



 그래서 온천 개발이 어려웠다. 수량은 일본에서 손꼽힐 정도로 풍부했지만, 유후인은 워낙 깊은 산속에 있었다. 유후인에서 한 시간 거리밖에 안 되는 벳푸(別府)만 해도 해안에 있어 개발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벳푸는 1911년 이미 증기선을 띄워 미국인도 받아들였지만 유후인은 그저 허다한 오지마을 중 하나였다.



 그랬던 유후인이 지금은 일본 제일의 여행지로 거듭났다. 일본인에게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를 물었을 때도 유후인은 해마다 1위를 차지한다. 특히 여성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유후인 기차역을 나와 정면에 보이는 유후다케를 바라보면, 유후다케에 올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면, 유후다케 기슭 아래 은빛 물결 반짝이는 긴린코(金鱗湖) 곁을 걷다 보면, 동화책처럼 아기자기한 마을을 거닐다 보면 왜 여성들이 이곳에 매료되는지를 알 수 있다.



# 5월엔 영화제, 7월엔 음악제 열려



1955년 오이타현은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유후인 분지 안에 흩어져 있던 마을을 통합했다. 그때 지금의 유후인이 형성됐다. 당시 유후인 초대 정장(町長, 우리나라의 면장)으로 36세 이와오 히데카즈(岩男額一)가 당선됐는데, 그가 유후인 성공 신화를 이끈 주인공이다.



 1975년 규슈 대지진이 일어났다. 유후인도 큰 피해를 보았다. 이와오 히데카즈 정장 중심으로 마을재건위원회가 결성됐고, 본격적인 온천 개발이 시작됐다. 이때 유후인 주민의 선택은 ‘개발 아닌 개발’이었다. 유후인 주민자치위원회가 제정한 ‘정감 있는 마을 만들기 조례’가 통과되면서 마을에 들어서는 건물은 고도와 규모의 제한을 받았다. 단체 관광객은 받지 않았고, 유후인 마을에서 생산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도록 했다. 호텔·골프장 같은 대형 레저시설은 애초부터 불허되었고, 60실 이하의 료칸(旅館)만 허가했다. 유후인에 들어선 모든 건물이 높이 11m를 넘지 못하게 한 건, 마을 어디에서나 유후다케가 보이게끔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래서 지금의 유후인이 되었다. 지금 유후인에는 30개가 넘는 미술관이 있고, 해마다 5월엔 영화제가, 7월엔 음악제가 열리는 문화 예술의 마을이 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작품을 유후인을 배경으로 제작한 것도 이곳에만 흐르는 정서 때문이다. 유후인 음악제는 75년에, 그리고 영화제는 76년에 처음 개최됐다.



 유후인에는 메이지 시대 양식의 가옥이 들어서 있고, 특색 있고 예쁜 상점이 늘어서 있다. 테디베어만 파는 가게, 잼만 파는 잼 공방, 요괴만화 캐릭터 상품만 파는 가게, 66세 어르신이 40년 가까이 비엔나 커피를 내리고 있는 작은 카페도 있다.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풍경, 유후인이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은 마을인 이유다. 유후인은 ‘오래된 마을’처럼 꾸민 새 마을이다.



 유후인에는 료칸이 140여 개 있다. 유후인 료칸 중에서 30여 개가 온천탕을 별도로 운영한다. 료칸이 숙박과 온천, 그리고 가이사키(會石)라 불리는 일본식 만찬을 즐기는 고급 온천여행이라면, 온천탕은 온천욕만 하고 나올 수 있는 대중목욕탕이다. 유후인에서 료칸이 보통 1박에 2만 엔(약 28만원) 안팎이면 온천탕은 500∼770엔(약 7000∼1만원)이다.



# 해발 1584m 유후다케의 정기를 받다





유후다케는 유후인 뒷산이다. 해발 1584m로, 동네 뒷산치고는 높은 편이다. 지리산 노고단(1507m)보다 80m쯤 높다. 등산로 들머리에서부터 정상까지 3시간이면 충분해 그리 힘들지 않다. 그러나 엄연한 국립공원이다. 유후인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아소구쥬 국립공원이 시작한다.



 유후다케는 독립한 봉우리가 아니라 다른 봉우리를 잇는 마루금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후다케가 속한 아소구쥬 국립공원의 명성 때문이다. 아소구쥬 국립공원은 규슈를 대표하는 두 봉우리, 아소산(阿蘇山·1592m)과 구쥬산(九重山·1791m)을 포함한 고산지대다. 유후다케도 이 고산지대를 이루는 봉우리 중 하나다. 아소구쥬 국립공원은 ‘규슈의 지붕’으로 불린다.



 아소구쥬 국립공원에 있는 봉우리 대부분이 활화산이다. 일본 영화 ‘일본 침몰’에서 일본 총리가 탄 비행기가 화산 폭발로 추락하는데, 그 화산이 아소산이다. 유후다케도 전형적인 화산의 모습이다. 화산 특유의 원뿔 모양이다. 유후다케는 분고후지(豊後富士)라고도 불리는데, 분고는 오이타의 옛 이름이다. 즉 분고후지는 오이타현 후지산이란 뜻이다.



 유후다케 초입은 제주도 성산 일출봉처럼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옛날 화산 폭발 당시 용암이 흘러내리며 형성된 지형이다. 대신 고도가 올라갈수록 경사가 가팔라진다. 정상에는 백록담 같은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를 가운데 두고 동봉과 서봉이 있다. 서봉은 암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난코스여서, 등산객 대부분이 동봉을 오른다. 정상에 오르면 한눈에 유후인이 분지 마을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멀리 아소산과 구쥬산이 보이고, 끊길 듯 이어진 산줄기가 작은 산촌을 포근하게 감싼다. 유후인이 왜 사랑스러운 마을인지, 유후다케에 오르면 알 수 있다.



 하나 유후인을 찾는 한국인 대부분이 마을에서 유후다케를 올려다보다 돌아오고 만다. 아직도 한국인의 일본 여행법은 이렇게 수박 겉핥기 식이다. 유후다케는 어려운 산이 아니다. 대신 물은 챙겨야 한다. 산행을 시작하면 물이 없다.



●여행정보 유후인은 일본에서도 손에 꼽히는 온천 관광지다. 하여 교통편이 다양하고 편리하다. 한국인 여행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규슈 레일패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레일패스는 일본을 여행 중인 외국인에게만 판매하는 열차표로 정해진 기한 내에 모든 종류의 열차를 탈 수 있다. 규슈 전 지역 3일권 1만3300엔(약 16만원).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유후인까지 운행하는 직행 열차를 타면 2시간20분쯤 걸린다. 당일 여행일 경우 짐을 유후인 역에 맡길 수 있다. 자전거 대여소에서도 짐을 맡아주는데 가방 1개에 150엔(약 2000원)을 받는다. 1시간에 200엔(약 3000원)을 주고 자전거를 빌려 유후인을 돌아다닐 수 있고, 1시간에 3900엔(4인 기준, 약 5만6000원)을 주고 택시를 대절해 관광할 수도 있다. 국내 여행사 대부분이 유후인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여행박사(tourbaksa.com)엔 유후다케 트레킹 패키지 상품이 있다. 2박3일. 59만9000원(세금 별도). 유후인 료칸에서 1박을 하는 자유여행 상품(2박3일)은 25만9000원(세금 별도). 070-7017-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