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교육과 정책

[사이언스타임즈] 마리 퀴리의 위대한 유산(하)

FERRIMAN 2012. 4. 13. 11:41


마리 퀴리의 위대한 유산(하)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다 2012년 04월 13일(금)

▲ 1920년도 마리 퀴리의 모습. 위키피디아 
파리 국립박물관에는 마리 퀴리가 직접 쓴 연구기록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만약 이 박물관을 찾은 방문객이 그녀의 연구기록들을 직접 보고 싶다면 서명을 해야 한다. 무슨 서명이냐고? 연구기록 자료들에서 나오는 방사능으로 인해 어떤 손상을 받더라도 도서관을 고소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명이다.

방사능 속에 파묻혀 연구에 몰두하다.

이처럼 마리 퀴리는 방사능 속에서 파묻혀서 연구를 수행했다. 마리 퀴리는 왜 방사능으로 손에 화상을 입고 결국 백혈병으로 죽게 될 만큼 위험한 연구를 수행했을까? 노벨상에 눈이 멀어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일까?

그것은 마리 퀴리가 아스피린 3분의1 정도 분량의 라듐을 추출하기 위해 원광석을 1천 번 이상 끓이고 식히는 일을 45개월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할 정도로 자연의 비밀을 밝히고 싶은 순수한 열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실험대상으로까지 삼으면서 말이다.

“나의 전 생애 동안(내내), 자연의 새로운 모습들은 나를 어린이처럼 기쁘게 했다. 보고 배운 모든 것은 새로운 기쁨이었다. 과학의 세계, 그것은 나에게 열린 새로운 세상이었고 나는 결국 모든 자유 속에서 그것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과학의 세계, 그것은 나에게 기쁨이었다”

1900년 마리가 원광석을 끓이고 남편 삐에르가 라듐을 측정하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은 인간 체에 대한 방사능의 효과와 관련된 독일 과학자의 보고서를 읽게 됐다. 방사성물질이 어떤 식으로든 인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핵분열 시에 나오는 방사선이 인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말을 들은 삐에르는 즉시 라듐 결정을 테이프로 자기 팔에 붙였다. 그는 열 시간 동안 그렇게 내버려 두었는데 곧 우표 크기 만한 상처가 생겼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상처에서 고름이 흘러 나왔다. 방사능이 인체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스스로 생체실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두 사람은 라듐이 피에르의 팔에 어떻게 화상을 입혔는지 관찰하고 기록해 두었다. 52일 후에야 상처가 아물고 피부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1평방 센티미터 정도되는 회색상처가 생겼다.

퀴리 부부는 수년간 그것을 가지고 작업하면서 라듐이 그들의 두 손에 화상을 입힌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비록 상처가 남긴 했지만 피부가 항상 원상회복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두 사람은 의문을 가졌다. 만약 종양과 같이 병든 조직을 라듐 광선으로 불태우면 병을 물리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 남편 삐에르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마리 퀴리. 퀴리 부부는 방사능 연구에 파묻혀 일생을 보냈다. 가운데는 훗날 역시 노벨 수상자가 된 딸 이렌. 위키피디아 

방사선 진단과 치료의 기틀을 마련하다

두 사람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쥐, 토끼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이 연구를 통해 퀴리 부부는 동물 피부에 있는 암조직에 방사선을 쐬어 태웠을 때 비록 상처는 남지만 암조직은 사라지고 피부는 재생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암세포가 파괴된 것이다. 의사들은 라듐을 환자들의 암치료에 쓰기 시작했다. 결과는 똑 같았다. 암조직은 사라졌고 정상적인 조직이 자라났다. 라듐은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또한 치료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퀴리 치료법’의 발견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오늘날 라듐은 모든 암환자의 절반 가량에게 사용된다. 우리는 암조직을 다시 일반조직으로 회복시키는 방법은 모른다. 방사선치료는 단지 그것들을 죽일 뿐이다. 물론 정상세포도 죽인다. 이러한 방사선 치료가 바로 라듐을 발견한 퀴리 부부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퀴리 부부는 라듐과 인체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이번에는 주위에 라듐기체가 있어 공기와 더불어 단순히 이를 들여 마셨을 때 나타나는 효과에 대한 연구였다.

쥐를 라듐 결정을 넣은 플라스크에 가뒀다. 그들은 9시간을 전후해 모두 죽었다. 죽은 후 쥐들의 폐 속에서 아주 많은 방사능이 검출됐고 백혈구 조직이 파괴됐다. 따라서 라듐이 방사선을 퍼뜨리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방사능 물질의 해로움을 알리다

1906년 남편 삐에르가 마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대담한 마리 퀴리는 슬픔을 접고 라듐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나 방사능은 그녀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쇠약해져서 기력을 잃기 시작했다.

1차 대전을 치르면서 방사성물질의 해로움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납을 방패로 이용하던가 연구실에서 입는 가운을 자주 교체하는 등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리는 여전히 맨손으로 라듐을 만졌다. 그녀는 연구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장갑을 끼라고 충고하면서도 자신은 끼지 않았다.
▲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방사선 치료와 진단기술은 마리 퀴리의 라듐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이미지 클릭 


물론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해에 대해 과소평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상 누구보다도 많은 라듐을 다룬 마리는 방사능 물질의 해로움에 대해 직접 실험하고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다.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남편처럼 자기 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했는지도 모른다.

죽음으로써 인류의 삶을 진화시킨 과학자

1934년 햇살이 화사한 5월 어느 날 ‘라듐여인’ 마리는 4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딸 이브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열이 좀 있어서 집에 가야 할 것 같다”. 그녀는 이후 다시 연구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실 그 동안 마리 퀴리는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기진맥진한 채 하루하루를 견뎌왔다. 백내장으로 눈은 거의 실명상태였다. 그 후 2개월이 지난 7월 그녀는 자신의 평생을 바쳤던 방사능 때문에 세상과 하직했다.

하등동물이지만 세상에는 자기복제를 통해 영원한 삶을 유지하는 동물이 있다. 또한 자손을 남기기 위해 자신은 죽음으로써 자신이 속한 종이 진화해 나가는 경우도 있다. 결국 영원한 삶을 위해서 진화를 포기한 경우와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종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두 가지 경우다.

마리 퀴리는 분명 죽음으로써 자연에 대한 이해와 인류의 삶을 진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과 꿈, 그리고 따뜻한 휴머니티가 있었으며 아름다운 희생이 있었다. 마리 퀴리가 남기 위대한 유산을 되돌아보게 하는 지금이다.

참고서적
<시대를 뛰어 넘은 여성과학자들>: 달렌 스틸 저, 양문
<마리 퀴리와 이렌 퀴리>: 시모나 체로토 저, 비룡소
<기니피그 사이언티스트>: 레슬리 덴디, 멜 보링 저, 다른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04.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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