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과 경제

[중앙일보] 망해가는 회사의 특징

FERRIMAN 2012. 6. 8. 20:31

[분수대] 고만고만, 비슷비슷 … 망해가는 회사의 특징 연세대 ‘창의 전형’에서 배우길

[중앙일보] 입력 2012.06.07 00:00 / 수정 2012.06.07 00:00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감식안 뛰어난 애널리스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잘될 회사는 공기부터 다르다”는 거다. 내 생각도 같다. 기업 취재를 많이 하다 보니 어설프나마 감 같은 것이 생겼다. 예를 들어 보자. 요즘 많이 어렵다고 알려진 모 기업. 임직원들의 보안 의식이 전보다 떨어졌다. 안 그런 척하며 회사 흠을 잡는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아졌다. 일상적·통상적 업무에 구멍이 생긴다. 특정인에게 일이 몰린다. 잡다한 자화자찬형 보도자료를 많이 낸다. 피드백이 느리다.

 그중 가장 결정적인 게 ‘지나친 균질화’다. 사람들 말투와 표정, 옷차림부터 일처리 방식까지 비슷비슷하다. 그만큼 경직되고 관료화됐다는 뜻인데 정작 본인들은 모른다. 이를 문제로 느낄 만한 이들은 아예 받지 않거나 이미 튕겨 나갔기 때문이다. 이런 공기를 유난히 못 견디는 이들이 있다. 흔히 우리가 창의적 인재, 통섭형 인재라 부르는 사람들이다.

 2년 전쯤 맘먹고 그런 이들 예닐곱을 연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구글의 데니스 황 총괄 웹마스터,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여운승 교수, 관동대 융합의학과 정지훈 교수, 엔씨소프트의 신훈 디렉터, 도시환경연구센터 전영옥 소장…. 성장 과정부터 직업 선택까지 유사점이 많았다. 모두 10대 시절 한 분야에 미친 적이 있다. 음악, 미술, 컴퓨터, 만화…. 대학 생활은 열정적이었다. 프로의 세계에 일찌감치 뛰어들거나, 타 분야에서 전문가급 기량을 닦았다. 중간에 전공을 바꾼 이도 여럿이다. 선택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재미’. 새로운 것에 집착하며 계산보다 행동이 앞선다.

 한데 날 진짜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대부분 이른바 명문대에 합격한 점이었다. 학창시절 그토록 딴짓을 하고도 입시에 성공하다니. 대개 40대 안팎이니 지금과 시대 상황이 다르긴 했다. 그렇더라도 이 정도면 진정 ‘선택받은 자들’이 아닐 수 없다. 재능이 탁월함에도 대학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해 좌절하는 인재가 한둘인가.

 그런 점에서 올해 처음 시행한 연세대 ‘창의 인재 전형’의 성공적 안착은 주목할 만하다. 성적은 전혀 안 보고 우수성 입증 자료와 심층 인터뷰, 에세이만으로 30명을 뽑았다. 교수 성향에 따라 평가결과가 다를 줄 알았는데 신기하리만큼 일치했단다. 한 교수는 “아이를 개성껏 키운 부모들에게 뿌듯함을 드린 게 가장 기쁘다”고 했다. 지난해 입학처장으로 이 전형을 이끈 김동노 교수는 “학생들이 갈수록 균질화·표준화되는 데 위기의식을 느꼈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잠자는 천재’를 찾아내 ‘세상을 바꾸는 인재’로 키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답은 내도 문제는 못 만드는 게 요즘 학생들인데 이 친구들은 다르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타 대학은 물론 기업들도 참고할 만하지 않은가. 특히 회사 문을 들어서는 순간 무기력한 분위기에 숨이 턱 막히는 상황이라면.

이나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