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과 경제
[중앙일보] 기업환경, 망하는 기업
FERRIMAN
2019. 7. 26. 16:04
초원 줄며 설 땅 잃은 치타처럼, 적응 못 하는 기업 ‘멸종위기’
입력 2019-07-13 00:20:14
수정 2019-07-13 01:22:59
수정 2019-07-13 01:22:59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환경 변화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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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1
치타는 200만 년 전쯤 사자나 표범이 쉽게 잡을 수 없는 가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출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젤은 날렵한 몸 덕분에 순식간에 시속 80㎞ 이상으로 뛸 수 있어 덩치가 있는 사자나 표범으로서는 쉽게 잡기 힘든 먹잇감이다. 그래서 사자는 몇 시간씩 조용히 다가가 기습을 하거나 협동 사냥을 하고, 표범 역시 끈질긴 매복을 통해 사냥한다. 다른 방법은 거의 없다.
치타는 어떨까? 그냥 달리면 된다. 최고 속도 구현을 위해 온몸을 ‘구조조정’했기에 최대 시속 120㎞까지 낼 수 있다. 뛰었다 하면 세 달음 만에 시속 64㎞ 이상으로 달릴 수 있고, 3초 만에 시속 90㎞를 돌파한다. 여기까지는 웬만한 전투기보다 빠르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한 번에 6~7m씩, 그야말로 바람처럼 뛰는 ‘바람의 파이터’다.
구조조정은 힘들었겠지만 결과는 좋았다. 육지 최고의 속도를 구현한 덕분에 녀석들은 덩치가 큰 사자들보다 훨씬 쉽게 사냥할 수 있다. 사자들은 먹이에 접근할 때, 25m 정도까지 조심조심 접근해야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만, 녀석들은 두 배 거리인 50m 정도에서 스타트를 해도 성공률이 더 높다. 사자는 열에 한두 번 성공하는 데 반해, 녀석들은 두세 번에 한 번 꼴로 성공한다. 엄청난 성공률이다. 덕분에 밤 사냥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사자는 덩치가 크니 어둠 속에 몸을 숨길 수 있는 밤 사냥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지만, 치타는 그럴 필요가 없다. 훤한 대낮에 사냥한다. 달리기에는 자신 있다는 얘기다.
녀석들의 스피드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데 왜 멸종 위기를 맞고 있을까? 아프리카 초원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사람들이 초원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늘어난 인구로 경작지가 필요해진 사람들이 초원을 밭으로 만들거나 목축지로 사용하다 보니 치타의 활동공간이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다. 최고 속도의 전투기에게 넓은 공간이 필요하듯, 빠르게 달리는 녀석에게도 마찬가지인데, 갈수록 이런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타격은 역시 초원이 줄면서 가젤의 숫자가 주는 것이다. 가젤 하나에만 전문화한 상황이라 가젤이 줄면 타격은 예정된 미래다. 더구나 공간이 좁아지다 보니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자나 하이에나들과 자주 만나는 것도 골칫거리다. 애써 먹잇감을 사냥해 놓으면 녀석들이 와서 빼앗아 가버리기 때문이다. 무거운 중량에서 최고 속도가 나올 수 없기에 덩치를 최대한 줄였는데 그러다 보니 사자나 하이에나들과 대적할 수 없게 됐다. 사자는 보통 150㎏이 넘고, 하이에나는 60~70㎏쯤 되지만 치타는 40㎏ 정도에 불과하다. 덩치로는 대적이 안 된다. 최대 강점을 만들어 주던 게 환경이 바뀌자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 변화가 워낙 빨라 신체 진화를 시킬 시간이 없어 현재로선 뾰족한 수조차 없다. 멸종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수밖에.

삽화 2
살아있다는 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현재의 나,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적응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살아있음이라는 게 여기서 생겨나는 까닭이다. 장점이란 게 뭘까? 어떤 환경에 잘 적응했기에 가지게 되는 삶의 장치, 더 잘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그 환경에 기반한 장점이니 환경이 변하면 당연히 장점도 사라지게 마련, 상황이 이런데도 장점만 붙들고 있으면 스스로 불행을 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변화가 가파르면 치타나 참고래처럼 멸종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수도 있다.
삶에서 적응은 완료 개념이 아니다. 완료될 수도 없다. 적응은 항상 진행형이어야 한다. 위기는 ‘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시작된다. 그 순간부터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에 환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게 되는 까닭이다. ‘안다’라고 하는 순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적응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적응을 멈추는 것이다. 멈추지 말아야 하는데 멈추니 삶도 거기서 멈춘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