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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교육효과 배가시키는 칭찬의 힘

FERRIMAN 2008. 10. 11. 20:33

 

  매경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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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진단] 교육효과 배가시키는 칭찬의 힘

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도 벌써 5년이 되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대학에서 꽤나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유치원 교사가 될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교육방식과 생활지도를 무척 엄격히 했다.

유치원 교사는 아이가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기에 여러 면에서 훌륭해야 한다. 그래서 수업태도가 바르지 않거나 발표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야단쳤다. 적지 않은 학생이 눈물을 흘렸고, 가슴에 상처도 받았으리라. 교직에 대한 강한 사명감을 심어주어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술대학에서 예술가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부터는 야단치지 않는다. 처음 예술대학에 왔을 때 수업태도가 바르지 못한 한 학생을 크게 꾸짖은 적이 있었다. 꾸중을 들은 그 학생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더니 그 다음 수업부터는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수업태도와 발표내용이 설령 마음에 안 들더라도 칭찬을 많이 해주기로 결심했다.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칭찬과 꾸중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다른 전공 학생들에 비해 수업에 대한 반응이 무척 빠르게 나타난다. 수업이 재미있는지, 내용을 아는지가 얼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열심히 가르쳤을 때 학생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교육자로서 작은 보람을 느끼곤 한다.

맹자는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君子三樂)'고 했다. 그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천하의 영재를 모아 가르치는 즐거움이다.

바로 필자가 가르치는 예술대학 학생들은 예술적 끼와 기(氣)가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즐거움이란 다른 대학 교수들은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어느 때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배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분명 학생에게는 배우는 즐거움이 있고, 교수에게는 가르치는 즐거움이 있는데 역설적으로 교수에게 학생으로부터 배우는 즐거움이 있고, 학생은 교수를 가르치는 즐거움이 있다.

옛사람들은 이를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 불렀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커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교학상장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배우는 것을 게을리해서도 안 되고, 가르치는 것을 싫어해서도 결코 안 된다(學不倦 敎不厭)'는 원칙이다. 쉬운 이야기 같지만 이를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수개월 전의 일이다.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어떤 여학생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들어섰다. 낯은 익은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히 필자의 수업을 들은 학생임에 틀림없었다.

가르치는 사람은 이럴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자신을 기억해 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본 그 학생은 스스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얼굴과 이름이 맞아떨어지며 기억이 떠올랐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저를 칭찬해주셨고, 저서에 직접 훌륭한 예술가가 되라고 격려의 글까지 써주셨습니다. 정말 힘들게 소설을 쓰면서 교수님의 격려 말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상을 받았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가르친 선생은 학생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데 학생은 그 선생을 기억해 고마움을 전하러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교수의 칭찬이 그 힘든 문학상을 받는 데 힘이 되었기에 고마워서 그 책을 들고 달려온 것이다.

마치 마라톤 전투에서 이겼다는 승전보를 들고 먼 거리를 달려온 그리스의 전사처럼. 필자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웠다. 동시에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과 보람을 소름 끼칠 정도로 느꼈다.

교육의 결과가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나타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졸업생은 정성스럽게 포장한 작은 선물 하나를 책상 위에 공손히 올려놓고는 연구실을 떠났다. 교학상장의 즐거움이 '팡팡' 터지는 교육이 바로 예술교육이 아닌가 싶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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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0 17:44:3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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