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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시와의 동행, 저린 사랑-정끝별

FERRIMAN 2008. 11. 1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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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와의 동행] 저린 사랑 - 정끝별

당신 오른팔을 베고 자는 내내

내 몸을 지탱하려는 내 왼팔이 저리다

딸 머리를 오른팔에 누이고 자는 내내

딸 몸을 받아내는 내 오른팔이 저리다

제 몸을 지탱하려는 딸의 왼팔도 저렸을까



몸 위에 몸을 내리고

내린 몸을 몸으로 지탱하며

팔베개 돌이 되어

소스라치며 떨어지는 당신 잠에

내 비명이 닿지 않도록

내 숨소리를 죽이며

저린 두 몸이

서로에게 밑간이 되도록

잠들기까지 그렇게

절여지는 두 몸

저런, 저릴 팔이 없는



사랑은 받아주는 이가 있을 때 아름답다.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줄 때 아내는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팔을 베어주는 내 마음이 갸륵해서 불편을 참아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랑의 현실이자 힘이다. 시인은 이 순간을 기가 막히게 포착해냈다. '당신 잠에 내 비명이 닿지 않도록 내 숨소리를 죽이는 게' 사랑이다. 훌륭한 시다.

[허연 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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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2 17:54:2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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