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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중성미자의 검출

FERRIMAN 2010. 9. 15. 20:36

‘유령입자’ 밝힐 마지막 비밀 찾는다 국내 최초로 탄생하는 중성미자 검출시설 2010년 09월 15일(수)
사이언스타임즈는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기반과에서 제공하는‘S&T FOCUS’를 게재한다. S&T FOCUS는 국내외 과학기술 관련 정책 및 연구개발 동향 분석결과를 제공하고, 다양한 과학담론을 이끌어 내어 과학문화 확산을 유도하기 위해 매월 발행되고 있다. [편집자 註]

S&T FOCUS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우는 존재가 있다. 우주를 빛의 속도로 떠돌면서 물질과 아무런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 ‘유령입자’라고도 부른다. 마치 유령처럼 1초에 100조(兆) 개가 넘는 무리들이 우주에서 날아와 우리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친다. 이런 특성으로 측정이 힘들고, 그 존재를 파악하기도 매우 어렵다. 물리학에서는 이 입자를 ‘중성미자(뉴트리노)’라고 부른다.

중성미자 변환, 우주 비밀 밝힐 열쇠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은 중성미자의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중성미자는 우주의 탄생과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소립자(素粒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성미자가 질량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는 물리학계의 오랜 숙제였다.

입자물리학의 대표적인 이론인 ‘표준모형’은 중성미자가 질량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표준모형은 전자기력·약력·강력·중력 등 우주와 물질을 이루는 4가지 기본 힘을 함께 기술하면서 소립자들의 존재와 질서를 설명해주는 이론이다.

하지만 1998년 일본 ‘슈퍼가미오칸데’라는 중성미자 검출기가 중성미자도 질량이 있음을 처음으로 밝히면서 물리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굳건하게 자리 잡았던 표준모형이 처음으로 수정돼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중성미자는 ‘전자뉴트리노’, ‘뮤온뉴트리노’, ‘타우뉴트리노’ 등 모두 3종류다. 일본의 슈퍼가미오칸데 실험은 이 세 중성미자 간에 서로 변환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한국, 일본, 미국의 공동연구진이 1999년부터 시작한 K2K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일본 츠쿠바시 고에너지연구소의 입자가속기로 뮤온뉴트리노를 만든 뒤 이 중성미자를 250km 떨어진 가미오카광산 내부의 슈퍼가미오칸데 검출기까지 땅속으로 관통시키는 실험이었다. 뮤온뉴트리노가 정말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바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6년 간 수집한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슈퍼가미오칸데에서 156개가 예상됐는데, 실제로는 112개가 관측됐다. 사라진 중성미자 44개는 다른 형태의 중성미자로 변환돼 관측되지 않은 것이다. 입자가 질량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이 같은 변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중성미자의 변환은 중성미자가 질량을 갖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마지막 변환상수를 찾는 여정, 이제 시작이다

중성미자가 본래 상태에서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측정한 산술값을 ‘변환상수’라고 한다. 중성미자의 종류가 3가지이므로, 이 변환상수의 종류도 3가지다. 물리학계는 이 중 2가지 변환상수를 측정하는 데 이미 성공했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일본은 이 마지막 변환상수를 측정하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약 2조원대의 입자가속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무렵 세계 100여 명의 물리학자들은 보다 효율적인 변환상수 측정을 위해 머리를 맞대 논의하고 그 결론을 2004년 백서로 만들었다. 중성미자 검출기를 원자력발전소 인근에 또 하나 설치하자는 내용이었다. 즉 원전 가까이에 한 대, 멀리 떨어진 곳에 또 한 대를 설치하면 중성미자 측정의 오차가 크게 줄어 입자가속기 실험만큼의 정밀 관측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에 한국 물리학자들이 분주해졌다. 원자로를 이용한 중성미자 검출시설은 100억원 규모면 건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전남대 등 국내 10개 대학 교수들과 함께 팀을 이뤄 타당성 조사를 마친 뒤 정부를 설득한 끝에 마침내 116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그동안 한국 과학자들은 입자물리학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뒀지만, 대형가속기나 검출기가 없어 주로 외국의 실험시설에서 진행하는 공동연구에 참여해 왔다. 원자로 인근에 중성미자 검출기를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도 이제 자체 실험시설로 독자적인 연구성과를 내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학자들이 선택한 곳은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 인근이다. 원자로에서 초당 1021개의 엄청난 중성미자가 우라늄의 핵분열 과정으로 방출되기 때문에 원전 인근은 중성미자를 관측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특히 영광원전의 전력생산량은 일본 가시와자키 원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발전량이 많을수록 중성미자가 많이 배출돼 그 만큼 실험결과를 얻기가 수월해진다. 또한 산악지형인 영광원전 인근은 지형적인 여건에서도 유리하다.

보통 원전 근처의 검출기는 지하에 설치하는데, 지상에서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다른 입자들이 너무 많아 중성미자를 검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에 산이 있어 터널을 뚫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굳이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이에 따라 공사비용이나 기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공사가 있기 전, 우리 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일은 예상보다 많았다. 실험시설이 들어설 곳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소유여서 여러 차례 부지사용에 관해 설득을 해야 했고, 터널 공사를 위한 군청의 인허가도 얻어야 했다. 행정기관은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응도 고려해야 하는 입장임을 감안해 물리학자들이 직접 나서서 주민설명회를 열고 인근 환경단체들을 찾아 1년 가까이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결국 이러한 노력 끝에 2006년 3월 마침내 중성미자 검출시설을 위한 공사가 시작됐다.

이후 지질조사, 터널설계를 거쳐 2008년 12월 터널굴착 공사가 완공되고, 지난해부터는 터널 속에 연구 관련 부대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검출기 제작과 설치도 진행되고 있다. 2008년에는 실제 크기보다 10분의 1로 축소한 중성미자 검출기를 만들어 성능 검증까지 완료했으며, 현재는 광센서를 설치하는 단계에 있다. 광센서는 원자로에서 나온 중성미자가 검출기의 원자와 반응할 때 새로운 입자가 만들어지는데, 그 입자가 내는 빛을 잡아내는 센서다. 이제 데이터 수집을 위한 장치와 전원공급 장치까지 설치하면, 드디어 올해 12월 경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 6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중성미자 국제학회’와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고에너지물리 국제학회’에서는 우리 학자들이 만들 중성미자 검출시설과 향후 얻게 될 연구결과에 주목한 바 있다. 우리 연구진은 향후 3년간 중성미자에 관한 데이터가 축적되면, 중성미자의 마지막 변환상수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영광원전 인근에 설치하는 중성미자 검출장비는 그동안의 축척된 경험을 바탕으로 순수 국내기술로 설계, 제작, 설치, 운영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도 과학기술력에 걸맞은 거대 물리학 실험을 국내에서 시작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갖는다. 이번 실험이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선점하는 출발점이 되고, 이를 계기로 그동안의 추격형 연구에서 탈피해 직접 장비를 만들고 연구하는 ‘개척형’ 연구에도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제공: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기반과 |

글·사진 김수봉(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저작권자 2010.09.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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