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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삼식이 증후군

FERRIMAN 2012. 1. 10. 14:22

입력 2012.01.10 05:09
 

[우재룡의 행복한 은퇴 설계] ‘삼식이 증후군’ 막을 현명한 부부들의 3가지 전략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
남편이 은퇴하고 나면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달갑지 않은 변화가 찾아온다. 먼저 은퇴 후 많은 남성들이 ‘탈진증후군(burnout syndrome)’을 겪는다. 무리한 이상과 목표를 향해 돌진하던 사람이 어느 날 손에서 일을 놓게 되면, 무기력감을 느끼다 못해 우울상태에 빠지는 증상이다. 둘째로 ‘퇴직증후군(Layoff Syndrome)’이 있다. 남성들의 네트워크는 일로 맺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면 삶의 전부를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아내도 은퇴한 남편에 대한 증후군을 앓는다. 은퇴 후 부부관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주범이 ‘퇴직남편재가증후군(Retired husband syndrome)’, 일명 ‘삼식(三食)이 증후군’이다. 1991년 일본인 의사 노부오 구로카와가 처음 만들어 낸 말로, 남편이 은퇴 후 집에만 있게 되면서 부인이 심리적 압박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눈뜨면 회사에 나갔다가 밤늦게나 돌아오던 남편과 24시간을 붙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 아내는 불편하다.

게다가 회사 다닐 적 습관을 못 버린 남편이 부하 직원에게 하듯 이래라저래라 잔소리까지 늘어놓으니, 황혼이혼으로 이어지는 부부간의 갈등은 남편의 은퇴 이후부터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을 사전에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남편이 회사에서 은퇴하듯이 아내를 집안일에서 은퇴시켜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외식을 한다’‘식사를 부인이 차리면 설거지는 남편이 한다’ 등 집안일을 구체적으로 분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부간에 정한 작은 규칙 하나만으로도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

둘째, 가족끼리일수록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가장 큰 상처는 늘 가까운 사람이 주기 마련이다. 직장에서 쓰던 권위적인 말투를 가정으로 옮겨오면 아내나 자녀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대화를 피하게 된다. ‘가족에 대한 잔소리는 사랑을 갉아먹는다’라는 말을 명심하고 부드럽게 바꿔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셋째, 부부가 함께 부인만을 위한 은퇴계획을 세워야 한다.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7년 정도 길고 보통 2~3살 차이로 결혼하기 때문에 남편보다는 부인이 오래 살기 마련이다. 따라서 남편은 부인의 간병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부인은 남편이 떠나면 10년 이상을 홀로 살아야 한다. ‘2008년 노인실태보고서’에 따르면 남성노인의 84%가 부인에게 간병을 받지만, 남편의 간병을 받는 여성노인은 29%에 불과하다. 남편을 간병하느라 얼마 남지 않은 노후자금마저 써버린 상태에서 큰 병이라도 얻게 되면, 부인의 삶은 어떻게 될까. 아무 준비 없이 맞는 이 10년은 부인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부인 홀로 살아가게 될 노후에 대해 함께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