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노키아가 마지막으로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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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키워드는 ‘노키아’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를 약 8조원에 인수했다는 발표 때문이다. 이로부터 국내 매체들도 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한때 휴대전화 업계의 골리앗 노키아의 쇠퇴에 대한 분석 기사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이번 M&A(기업 인수합병)가 삼성전자에 미칠 영향, 삼성전자에 노키아를 반면교사로 삼으라며 채근하는 내용이었다. 삼성 휴대전화가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지라 당연한 반응이긴 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노키아는 좀 다르다. 10여 년 전 중국 경제 특별기획을 위해 중국 장기 취재를 할 당시 현지에서 샀던 휴대전화가 노키아였다. 당시 중국인들은 휴대전화를 그냥 노키아라고 불렀을 정도로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고, 싸고 튼튼했다. 말 설고 길 선 중국의 도시에서 도시를 전전하며 거리에서 취재원을 섭외하고, 길 찾아다니던 여정에서 유일하게 믿는 구석이 그 휴대전화였다. 그래서 그 취재여행을 떠올릴 때면 늘 노키아 휴대전화도 기억의 한 자락을 차지했다.
또 하나의 기억은 노키아라는 이름만으로 느껴지는 ‘굉장함’이다. 전자업계에 출입했던 2000년대 초·중반, 노키아는 휴대전화 세계시장 점유율 70%를 넘나드는 족탈불급(足脫不及), 요샛말로 하자면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과 같은 막막한 이름이었다. 그런 기업을 어느 순간 한국 기업이 따라잡고 또 넘어서는 것을 보면서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먼 북유럽 핀란드 기업 노키아는 내게도 추억을 남겼을 만큼 그 ‘그늘이 구만리’였다. 한데 이제 노키아는 지난해 파산신청을 했던 코닥과 함께 ‘1등의 저주’에 빠져 몰락한 기업의 경영학 케이스 스터디 소재가 될 거다. 필름의 제왕 코닥도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먼저 개발하고도 필름 시장을 지키려다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망했고, 노키아도 많은 모바일 특허를 갖고도 피처폰을 지키려다 시대에 뒤처져 몰락했다. 두 회사 모두 경영에서 진취적이고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심리적 실패’ 때문에 몰락으로 내몰린 것이다.
누구나 지금의 성공이 너무 크면 ‘우주의 질서’를 망각하고 현재를 지키려는 ‘심리적 실패’를 하게 될 거다. 한데 우주 질서는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것이어서 현실을 움켜쥔다고 쥘 수도 없고 오히려 자신을 망치게 된다는 것은 고래(古來)로부터의 가르침이다. 언제나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게 성공의 이치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갖고서 지금 내 것을 지키려 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이번 노키아의 말로를 보며 다시 한번 그가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에 각성하게 된다. 현실에 안주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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