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인형, 낙서된 노트가 아이 책상에 있다면 …
[꿈꾸는 목요일] 학교폭력 피해 엄마의 조언
줄어든 바디로션, 끝없는 SNS 채팅 … 학교폭력 피해 아이들의 징후
사진·녹취
등 증거자료 확보 중요, 가해자 가족 만나는 건 도움 안 돼
아픔 겪은 학부모들 동병상련 위로
180명 연말부터 상담사로
활동
이송화(50·여)씨는 2008년 중학생이던 자녀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아이가 피해를 당한 뒤 학교에서 소개해 준 기관에 함께 갔는데 상담사가 “어머니도 뭘 잘못했는지
아시죠?”라는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이가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을 엄마로서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했고, 훈육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들리는 얘기를 하더라”고 했다. 거기까진 참을 수 있었다. 상담사는 아이도 함께 책망하다시피 했다. 아이에게 “네가 여기 왜 왔는지
생각해 보라”는 투였다. “마치 내가 전염병 환자가 된 것 같다”며 풀 죽은 아이 모습에 이씨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이씨는 아이를 직접
치유하기 위해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고 사회복지사·평생교육사 자격증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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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모(50·여)씨는 4년 전 중학생 아들 팔뚝에서 볼펜으로 찔린 자국을 발견했다. 교복 바지에 구멍이 뚫리고 체육복을 잃어버린 채 귀가하기도 했다. 아들은 “친구들과 장난하다 일어난 일”이라고 했지만 알고 보니 학교폭력을 당해 온 거였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던 그는 사이버대학의 사회복지학과 수업을 들으며 직접 음악치료법을 배웠다. 아이와 집에서 가수 임재범의 ‘비상’이란 노래를 함께 불렀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 줄 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라는 노랫말을 되뇌기 위해서였다. 한씨는 “아이가 지금은 대학에 잘 다니고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치유 중”이라고 말했다.
자녀가
학교폭력의 고통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던 이씨와 한씨는 현재 학교폭력 피해 자녀를 둔 다른 학부모들을 돕고 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임원으로 5년째 활동 중인 이씨는 매일 10건 이상 피해 학생 부모들과 전화·대면상담을 한다. 상담을 할 때면
이씨는 우선 “힘들지요? 아이가 많이 다치지는 않았나요?”라고 묻는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 볼 때 피해 학생의 가정형편을 탓하거나 원인을
캐묻기보다 얘기부터 들어주는 게 첫 번째 도움이라고 생각해서다.
이들처럼 학교폭력 상담사로 나서는 ‘학폭’ 피해 학부모가 올해 180명으로 늘어난다. 학가협과 교육부는 지난해 9월 ‘위로상담가 양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론·실습 등 교육 과정을 거쳐 올해 말부터 서울·대구·대전에서 법률가·경찰·전문상담사 등과 조를 짜 상담활동을 한다.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로서 학가협 회장을 맡고 있는 조정실(56·여)씨는 “전문가라도 절망에 빠진 학부모를 속속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같은 처지를 겪은 학부모가 ‘울지 마세요. 나도 피해자입니다’라고 다가가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서울 동작구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상담사 활동 준비를 위해 모인 피해 학부모들은 자녀가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공유했다. 이날 발표를 한 조순옥(53·여)씨는 “많은 부모가 학교와 교사를 탓하지만 학교와 등을 지면 사태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진다”며 “아무리 화가 나도 학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증거 사진이나 녹취 등을 확보한 뒤 교사에게 ‘육하원칙’에 따라 자녀의 피해 상황을 상세히 밝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피해 부모의 정확한 진술과 가해 부모의 인정, 담임교사의 발 빠른 대처가 있다면 3일 안에 사안을 해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피해 학부모들은 “감정 조절이 힘들기 때문에 가해 학생과 부모를 섣불리 만나는 건 피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대신 교사를 통해 가해 학부모의 사과를 받아내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학가협 조정실 회장은 “경찰서나 법원까지 가지 않도록 사안을 빨리 마무리하는 게 피해 자녀를 위해서도 좋다”며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를 찾기도 어렵고 여러 차례 진술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이중으로 상처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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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전국 초4~고2 학생 6153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학교폭력 피해 학생 중 49.2%가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면 피해가 심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송화씨는 “자녀가 인형을 찢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며 “교복이나 체육복이 찢기고 더럽혀진 채 집에 오거나 밤새 스마트폰을 쥐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의심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갑자기 지나치게 자주 샤워를 하거나 평소 읽지 않던 책을 종일 들고 다니며 집착하는 경우도 신경 써야 한다. 왕따나 성추행을 당해 청결에 집착하거나 두려움과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보이는 행동일 수 있어서다.
피해 학부모들은 “‘사내 녀석이 왜 맞고 다니냐’며 다그치는 아빠들이 있는데 ‘친구들을 때리지 않는 착한 아들이 자랑스럽구나. 앞으론 반드시 지켜줄게’라고 보듬어 줘야 아이의 자존감이 회복된다”고 말했다. 집에 마구 때릴 수 있는 샌드백을 두고 아이가 분노를 풀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폭력 피해 부모들이 상담가로 나서면 짧은 시간에 피해 학부모와 공감대를 형성해 분노를 잠재우고 일 처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인턴십 과정이나 심화 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한모(50·여)씨는 4년 전 중학생 아들 팔뚝에서 볼펜으로 찔린 자국을 발견했다. 교복 바지에 구멍이 뚫리고 체육복을 잃어버린 채 귀가하기도 했다. 아들은 “친구들과 장난하다 일어난 일”이라고 했지만 알고 보니 학교폭력을 당해 온 거였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던 그는 사이버대학의 사회복지학과 수업을 들으며 직접 음악치료법을 배웠다. 아이와 집에서 가수 임재범의 ‘비상’이란 노래를 함께 불렀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 줄 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라는 노랫말을 되뇌기 위해서였다. 한씨는 “아이가 지금은 대학에 잘 다니고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치유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처럼 학교폭력 상담사로 나서는 ‘학폭’ 피해 학부모가 올해 180명으로 늘어난다. 학가협과 교육부는 지난해 9월 ‘위로상담가 양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론·실습 등 교육 과정을 거쳐 올해 말부터 서울·대구·대전에서 법률가·경찰·전문상담사 등과 조를 짜 상담활동을 한다.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로서 학가협 회장을 맡고 있는 조정실(56·여)씨는 “전문가라도 절망에 빠진 학부모를 속속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같은 처지를 겪은 학부모가 ‘울지 마세요. 나도 피해자입니다’라고 다가가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서울 동작구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상담사 활동 준비를 위해 모인 피해 학부모들은 자녀가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공유했다. 이날 발표를 한 조순옥(53·여)씨는 “많은 부모가 학교와 교사를 탓하지만 학교와 등을 지면 사태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진다”며 “아무리 화가 나도 학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증거 사진이나 녹취 등을 확보한 뒤 교사에게 ‘육하원칙’에 따라 자녀의 피해 상황을 상세히 밝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피해 부모의 정확한 진술과 가해 부모의 인정, 담임교사의 발 빠른 대처가 있다면 3일 안에 사안을 해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피해 학부모들은 “감정 조절이 힘들기 때문에 가해 학생과 부모를 섣불리 만나는 건 피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대신 교사를 통해 가해 학부모의 사과를 받아내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학가협 조정실 회장은 “경찰서나 법원까지 가지 않도록 사안을 빨리 마무리하는 게 피해 자녀를 위해서도 좋다”며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를 찾기도 어렵고 여러 차례 진술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이중으로 상처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전국 초4~고2 학생 6153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학교폭력 피해 학생 중 49.2%가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면 피해가 심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송화씨는 “자녀가 인형을 찢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며 “교복이나 체육복이 찢기고 더럽혀진 채 집에 오거나 밤새 스마트폰을 쥐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의심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갑자기 지나치게 자주 샤워를 하거나 평소 읽지 않던 책을 종일 들고 다니며 집착하는 경우도 신경 써야 한다. 왕따나 성추행을 당해 청결에 집착하거나 두려움과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보이는 행동일 수 있어서다.
피해 학부모들은 “‘사내 녀석이 왜 맞고 다니냐’며 다그치는 아빠들이 있는데 ‘친구들을 때리지 않는 착한 아들이 자랑스럽구나. 앞으론 반드시 지켜줄게’라고 보듬어 줘야 아이의 자존감이 회복된다”고 말했다. 집에 마구 때릴 수 있는 샌드백을 두고 아이가 분노를 풀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폭력 피해 부모들이 상담가로 나서면 짧은 시간에 피해 학부모와 공감대를 형성해 분노를 잠재우고 일 처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인턴십 과정이나 심화 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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