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서의 종횡고금 <19>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팔공산 갓바위 돌부처의 비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정시한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돼 천여 년을 호젓이 산속에서 좌정해온 석불을 본 감동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 석불이 바로 오늘날 한국불교 최고의 기도처로 유명한 팔공산 갓바위의 이른바 ‘갓바위 부처님’이다. 갓바위 석불은 다시 19세기 무렵 사지(寺誌)나 읍지(邑誌) 등에 등장하여 점차 알려진 후 1965년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이 석불은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는 속설과 함께 일 년에 수백만 명이 참배하는 성물로 많은 매체의 주목을 받아왔다. 인근 가톨릭 교구의 한 신부는 이 석불을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 등록해야 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갓바위 석불은 요즘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대중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왔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는 속설은 정말 도움이 절실한 힘없는 민초들의 입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그러나 이 석불이 광범한 신앙의 대상이 된 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팔공산은 신라 때 중악(中岳)이라 하여 토착신앙의 근거지였다. 나중에 불교가 전래돼 그 자리에 절과 석불이 들어선 것이다. 이 과정은 배타적이지 않고 조화로웠다. 『삼국유사』를 보면 진표율사(眞表律師)의 제자 심지(心地) 화상이 동화사(桐華寺)를 창건할 때 팔공산의 산신이 나와 함께 협력하여 길지(吉地)를 찾아 절을 짓는다는 이야기가 있다.(『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 오늘날까지 절에 남아있는 산신각, 칠성각 등의 전각과 공양간에서 조왕신을 모시는 일 등은 불교와 토착신앙이 사이좋게 공존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갓바위 석불이 높은 대중성을 얻은 보다 깊은 이유는 바로 이 포용성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백만 기도객의 귀의처라는 사실에 비하여 산 정상에 있는 석불로 가는 길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길게 이어진 가파른 계단 길을 남녀노소, 심지어 노약자도 힘겹게 걸어 올라가야만 한다. 길옆과 사찰 경내에는 화려한 상가나 건물도 없다. 중국이나 일본의 이름 있는 사찰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지극히 간소하다.
이처럼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한국불교 예술의 특징이기도 한데 바로 여기에서 갓바위 기도객들의 신심(信心)이 더욱 우러나오는 듯하다. 최근 갓바위 인근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던 논의가 무산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편의성과 상업주의가 결합된 개발 논리가 제발 이곳에서는 펼쳐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천년 석불 ‘갓바위 부처님’의 신화와 숭엄한 아우라를 지켜내는 길일 것이다.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내가 보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앙일보] 고령화 (0) | 2014.08.13 |
---|---|
[중앙일보] 경기도 이국의 맛집 (0) | 2014.08.03 |
남자 화장실의 벽화 (0) | 2014.08.03 |
[중앙일보] 이슬람 여성들의 복장 (0) | 2014.07.14 |
[중앙일보] 남자의 불편 (0) | 2014.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