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창조와 인문학은 어디 갔을까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이화여대 교수·미학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 문화화·예술화된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옷의 스타일이나 브랜드가 있고, 전자제품도 그렇고 물이나 커피까지도 선호하는 게 있다. TV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뉴스와 다큐멘터리의 정보나 드라마도 문화적 산물이 되어야 하고, 문화적 산물로 소비되고 있다. 입는 것, 먹는 것, 사용하는 것, 보는 것 등 어느 것 하나 문화 아닌 게 없는 현실 속에 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미지와 스타일 같은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상품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예술과 문화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안목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산되기만 하면 소비되던 시대는 지나갔고, 다양한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생산이 되어야 하며, 상품의 디자인이나 스타일, 심지어 기업의 이미지까지 생각하고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와 예술이 가득한 세상이니 독창성 있는 창조가 필요하고, 아이디어를 위한 인문학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창조경제를 말하고, 인문학 진흥을 말하는 것 같다. 새롭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하며, 포괄적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폭넓은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거다. 이렇게 본다면, 창조와 인문학은 기업에만 필요한 게 아닌 것 같다. 지금처럼 여와 야,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대립하고 반목하면서 우리를 지치게 할 때가 바로 이런 창조적 마인드와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한 때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이들의 강변과 살기 어린 대립과 극단적인 감정의 토로만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현실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후, 우리 모두의 잘못이고 오랫동안 깊이 반성하자는 말들은 헛된 것이었을까. 그저 자기 이익만을 앞세우면서 대립하고,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는 일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주검으로 나타난 우리 아이들이 바라는 것일까.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대리기사를 폭행한 사건에 깊숙이 관련되고도 아는 바 없다고 발뺌하는 국회의원의 비겁함과 후안무치까지 끌어안아야 하는지. 살 만한 세상 만들기의 주역은 못 될지언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바로 이런 곳에 창조적 마인드와 인문학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나 주변 사람들을 넓고 깊게 보려고 하고 새롭게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그들과 그저 올려다보기만 해야 하는 우리가 있는 세상이 아니라, 상생과 화합과 관용이 삶의 지혜가 되고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게 창조와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각자가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할 거고, 정부의 노력부터 있어야 할 것 같다. 열풍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말고, 구들장을 덥히는 군불처럼 은근하고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사회 전체에 열기가 가득하게 하는 창조와 인문학. 그런데 한동안 열을 올리던 창조경제에서 창조는 없어지고 경제만 말하고 있다. 인문학 얘기도 쏙 들어갔다. 창조경제가 무언지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만 말하다가 시들해졌다. 그래서 지금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은? 그런 건 들을 수가 없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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