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에너지

[중앙일보] 카자흐스탄의 광물자원

FERRIMAN 2015. 5. 16. 10:01

입력 2015.05.15 01:33 / 수정 2015.05.15 10:05

“주기율표 모든 광물 가진 땅 … 한국, 카자흐 유전 선점을”

중국 ‘일대일로’ 현장 가다 <하> 에너지 실크로드
중앙아 5국에 파이프 깔아
중국, 원유·천연가스 싹쓸이
한국, 카자흐 7개 광구 확보
대전 하루 쓸 원유 매일 생산

‘서기동수(西氣東輸·서부 천연가스를 동부 지역에 공급)’ 프로젝트에 투입된 중국 근로자들. 중국은 2007년 대륙을 횡단하는 ‘서기동수 가스관’을 건설함으로써 중앙아시아 천연가스를 원활하게 들여올 수 있게 됐다. [사진 이매진 차이나]

카자흐스탄의 경제 도시 알마티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석유공사 카자흐스탄 법인의 신석우 법인장. 그는 최근 중국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점심 식사 초대를 받았다. 시내 한 중국 식당에서다. 식사 중 그들의 어투가 진지하게 바뀌는가 싶더니 용건을 꺼냈다. ‘돈은 잘 쳐줄 테니 광구를 팔라’는 것이었다. 석유공사가 카자흐스탄에서 운영하고 있는 광구는 7개. ‘그중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팔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다.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오히려 중국인들의 카자흐스탄 광구 매입 움직임은 더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매물이 나오는 지금을 투자 적기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거의 ‘묻지마 쇼핑’ 수준입니다.”

 신 법인장의 말이다. 국가뿐 아니라 중국 민간기업도 중앙아시아 자원에 촉수를 뻗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중국의 거대한 자금력 앞에 로컬(카자흐스탄) 기업들이 속속 넘어가고 있다”며 “그런 모든 일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전략은 치밀하다. 투르크메니스탄~중국 동부를 잇는 천연가스관은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을 거쳐 가도록 깔았다. 건설 중인 또 다른 가스관(D선)은 타지키스탄을 거치게 된다. 중앙아시아 5개국을 모두 자국 에너지망에 끌어들인 셈이다. D선이 완공될 2020년, 중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들여올 수 있는 가스는 연간 850억㎥에 달한다. 이들 지역에 ‘경협 자금’ 명목의 천문학적 자금이 뿌려지는 이유다.


  중국의 ‘자원 쇼핑’은 우리에게 이 시장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답을 준다. 정외영 KOTRA 알마티 무역관장은 “카자흐스탄에 한류 바람이 일면서 가전·자동차 등의 한국 상품이 인기를 끄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중앙아시아 5국 인구를 다 합쳐봐도 약 6700만 명에 불과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공산품 수출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지난해 수출액 33억4000만 달러). 그는 “우리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주창하고, 중앙아시아와의 협력을 늘려나가려는 보다 큰 뜻은 자원에 있다”며 “멘델레예프 주기율표(물질을 구성하는 원소의 배열표)의 모든 광물이 매장돼 있는 곳이 바로 카자흐스탄”이라고 강조했다. 카자흐스탄은 확인된 석유 매장량만 300억 배럴로 세계 11위, 천연가스는 15위다. 이 밖에 우라늄·크롬·아연·구리·각종 희토류 등도 풍부하다.

 그럼에도 중앙아시아 에너지는 우리와 멀리 있는 게 현실이다. 알마티에서 대기업 상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정부의 확고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은 장기 전략에 따라 치밀하게 움직이는 반면 우리는 정책의 연속성 부족 등으로 투자에 애를 먹고 있다”며 “그들과 경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터진 자원외교 비리 사건 등으로 분위기는 더 위축된 상태다.

 중앙아시아의 자원 개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선점’이다. 오영일 포스코경영연구원(POSRI) 수석 연구위원은 “중앙아 5개국의 GDP를 다 합쳐도 고작 3400억 달러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작은 규모의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에게 기회가 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직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선점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는 얘기다. 그는 또 “원유·천연가스 및 일반 광물 이외에도 스칸듐·테르븀·디스프로슘 등 희토류 개발 사업도 대외에 서서히 개방되고 있다”며 “투자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다국개발은행(MDB)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석유공사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아직 기회가 열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석유공사가 카자흐스탄의 7개 육상 광구에서 뽑아내고 있는 원유는 하루 약 2만1000배럴로 대전시가 쓰는 양과 비슷한 규모다. 유사시 우리나라로 직접 가져올 수 있지만 물류비 등을 감안해 러시아와 중국으로 전량 수출하고 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회사가 카자흐스탄 유전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05년. 탐사·개발·매입 등을 거쳐 광구를 7개로 확대했고, 지난해 유가 하락 충격 속에서도 약 3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약 22%, 약 6570만 달러의 배당도 했다. 신 법인장은 “해양 개발을 장악하고 있는 국제 메이저 석유업체를 피해 육상에서 틈새를 찾아낸 케이스”라며 “한국 기업에 대한 이 지역의 평가가 좋아 사업 확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으로 조성된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개발 붐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한우덕 기자·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이봉걸 무역협회 연구위원 woody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