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 없이 MRI 영상 찍는다
[인터뷰] 김기웅 표준연 생체신호센터장
병원에서 흔히 사용되는 MRI(자기공명영상, magnetic resonance imaging)는 자기장을 발생하는 커다란 자석통 속에 사람이 들어간 후 고주파를 발생시키는 원리로 작동된다. 자석통에서 나오는 고주파가 수소원자핵을 공명시켜 각 조직에서 나오는 신호 차이를 측정한 후 영상화하는 것이다.
결국 MRI란 인체 조직에 자성을 부여함으로써 영상을 얻는 것인데, 이 때 인체를 자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초전도 자석 및 영구자석이다. 자기장의 세기가 강할수록 인체조직은 크게 자화돼 고해상도 영상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강한 자기장이 과연 인체에 안전한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더군다나 자기장 세기와 비례하는 높은 주파수의 전자기파가 신체에 화상을 일으킬 위험도 있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높은 자기장 없어도 MRI 구현
김기웅 한국표준연구원(KRISS) 생체신호센터장 박사팀은 최근 높은 자기장이 없어도 MRI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고가의 초전도자석 혹은 영구자석이 없이도 영상을 획득할 수 있는 새로운 MRI 기술을 만든 것이다. 자석은 MRI 가격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만큼 이 기술이 통용될 경우 경제성을 높일 수 있음은 물론, 새로운 원리에 기반한 자기공명영상 기술을 획득해 MRI 활용분야를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박사팀은 기존 수소원자핵 대신 전자를 공명시켰다. ‘동적핵자화’로 불리는 자화 증폭방식을 활용, 전자의 자화를 원자핵 쪽으로 옮겨 핵자화를 생성시킨 것이다. 이는 기존의 핵자기공명에서도 활용된 바 있지만 여러 위험 요소로 인해 널리 활용되지 못했다.
“동적핵자화 방식은 전자의 공명주파수가 원자핵에 비해 600배 이상 큽니다. 일반적인 MRI에서 동적핵자화를 사용하려면 전자레인지 등에서 발생하는, 매우 높은 주파수의 마이크로파를 가해야 해요. 화상의 위험성도 높기 때문에 고가의 장치에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 팀은 지구자기장 수준에서 동적핵자화를 이용해 자화를 생성케 했습니다. FM 라디오 주파수 정도를 발생시키는 간단한 장치로 자석 없이 MRI를 얻을 수 있게 한 거죠.”
외부자석의 강한 자기장과 공명 전자기파를 쏘이는 대신 원자 내부 아주 미세한 구조의 자연적 자기장을 활용, 여기서 공명되는 전자를 이용해 동적핵자화를 구현한 것이다. 김기웅 박사는 “지구 자기장 수준에서의 동적핵자화는 외부 자기장보다 원자내부 초미세구조에 의해 공명주파수가 결정된다. 때문에 원리적으로 무자기장 자화가 가능하다”며 “이러한 새로운 영역에서의 자기공명신호는 극저자장 스퀴드(SQUID) MRI 기술에 의해 측정 가능했다”고 말했다. 미세한 자기장을 측정하기 위해 민감한 센서인 스퀴드 MRI 기술이 필요했던 셈이다. 스퀴드 MRI는 국내에서는 표준연에서 독보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병원의 MRI 장비가 만들어내는 자기장의 세기는 3 테슬라(Tesla) 정도입니다. 매우 큰 자기장이죠. 지구자기장의 10만배 정도라고 할까요. 하지만 스퀴드를 이용하면 이것의 10만 분의 1 수준인, 30 마이크로 테슬라의 자기장으로도 측정이 가능합니다. 스퀴드 센서는 지구자기장의 10억분의 1 크기까지 측정할 만큼 아주 민감한 센서입니다. 인류가 개발한 센서 중 가장 민감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스퀴드 센서가 자성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어요. 다만 그 크기가 매우 작은 거죠.”
김 박사팀의 연구는 새로운 물리적 원리를 활용해 자기장이 없는 상태에서도 MRI 영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높은 자기장이 필요없는 만큼, 새로운 물리현상을 이용해 기존 MRI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도 더욱 다양하게 파악할 수 있다. 신체 내부의 염증을 그대로 영상화하거나, 위험한 조영제 주사 없이도 암을 바로 영상화 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도 소수의 선도그룹에서만 진행되는 매우 까다롭고 높은 수준의 연구다. 스퀴드 센서가 워낙 민감하기도 하거니와 구동이 쉽지 않아서다. 김 박사는 “MRI 영상을 얻으려면 여러 복잡한 자기장 간섭이 들어가야 한다. 시끄러운 상황에서 민감한 센서를 구동시키는 것은 상당한 난이도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스퀴드 연구그룹들 중에서도 선도 그룹만이 MRI 영상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상을 얻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대신 스퀴드로 MRI 신호를 얻음으로써 극저자기장에서의 새로운 물리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런 물리 현상 중에는 신의료기기 개발에 응용할만한 여러 특성들이 있습니다. 차세대 MRI 기술은 조영제가 필요없는 암조직을 영상화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술 중 실시간 MRI, 보안용 폭발물 검출, 새로운 화학구조분석 등에 활용할 수 있어요.”
현재 MRI 연구는 자기장을 무조건 높이는 방향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김 박사팀의 이번 연구는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MRI에 관련된 많은 연구자들이 극저자장 MRI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는 김 박사. 실제로 국내에서 극저자장 MRI 연구는 김 박사팀이 가장 최초로 시작했다. 지난 2009년 첫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지난 6년의 시간 동안 세계적인 선도연구그룹으로 성장한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영역에서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하는 재미가 바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에요. 결과가 좋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더욱 힘이 납니다.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은 분야에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5.07.0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