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O 홍보대사로 뛰는 두 국민배우…최불암&안성기
[중앙일보] 입력 2016.03.30 18:01 수정 2016.03.30 19:04
최불암(76)과 안성기(64)는 대표 '국민배우'라는 것 말고도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비영리단체(NPO)를 통해 사회 공헌 활동을 해왔다는 점이다. 최불암은 32년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회장직을 맡고 있다. 안성기는 23년 동안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활동해왔다. 두 사람의 NPO 경력을 합하면 총 55년이다. 그들이 속한 단체는 공통적으로 어린이 보호에 앞장서는 곳이다.
두 배우가 지난 18일 만나 그동안의 봉사 활동에 얽힌 이야기를 나눴다. 1987년에 만들어진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연기했던 두 배우는 이후 간간이 시상식 등의 행사에서 마주치기는 했지만 긴 대화를 한 적은 없었다.
인사를 나눈 뒤 잠시 머쓱해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활동에 대한 얘기로 접어들자 이심전심의 눈빛을 교환하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최불암(이하 최)="오랜만이네, 안선생. 이런 자리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지?"
안성기(이하 안)="네, 선배님. 그런데 왠지 꼭 자주 뵌 것 같네요. 활동하시는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가…."
최="나도 마찬가지야. 비행기 탈 때마다 유니세프 홍보 영상이 나와서 '이 친구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구나' 싶었어. 그나저나 요새는 무슨 일을 하나?"
안="2월에 동티모르에 다녀왔어요. 저희가 거기서 '아동 친화 학교' 사업을 진행 중이거든요. 그것말고도 후원자들과의 토크콘서트, 홍보영상 내레이션 작업 등을 했죠."
최="난 지난해에 케냐에 갔다왔어. 이 나이에 스물네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니까 아주 죽겠더만. 케냐는 몇 년째 가뭄이 극심해서 사람들이 물을 못 마시고 있더라고. 가슴이 아팠어. 올해도 국내외로 열심히 돌아다닐 계획이야."
안="진짜 대단하세요. 저도 저지만 선배님은 정말 오래 되셨잖아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최="난 드라마 '전원일기' 덕분에 어린이재단에 처음 들어갔어. 1981년도였나? 드라마에서 내가 업둥이로 금동이를 데리고 온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날부터 나한테 시청자 팬레터가 쏟아지기 시작한 거야. 다 작가의 펜 끝에서 나온 얘긴데 시청자들이 그런 걸 구분 못할 때였거든."
안="고민이 깊어지셨을 것 같네요."
최="정말 그랬어. 내 고민을 알게 된 지인이 '그럼 진짜 어린이들을 도와 보라'고 하더군. 그때 어린이재단을 처음 알았고 재단에서 서울시 후원회장직을 내게 제안했지.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네."
안="선배님이 모든 연예인 홍보대사의 원조네요.(웃음) 저는 전쟁 중에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유니세프 로고가 굉장히 익숙했어요."
최="안 선생도 수혜를 좀 받았나?"
안="그럼요. 밀가루·분유·헌옷…. 그러다 80년대 후반에 제가 배우 활동을 할 때 불우이웃돕기 단체 행사 섭외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믿을만한 단체가 거의 없었죠."
최="맞아, 그때 단체들이 참 많았지"
안="네 비슷한 시기에 유니세프에서도 홍보대사 제안이 들어왔어요. 한국이 유니세프가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바뀔 때쯤인 1993년이었어요. 옛날에 도움 받았던 생각이 나더라고요, 당연히 해야겠다 싶었죠."
최="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 내가 말이지, 1984년도에 어린이재단 본부가 있는 미국 리치몬드에서 한국 아이를 입양한 미국인 부부를 만난 적이 있어. 아이가 뇌전증 증세가 있어 일주일에 두세 번 발작을 하는데 정말 극진히 돌보더라고. 내가 물었지. '당신들의 정신은 신앙에서 오는 겁니까, 교육에서 오는 겁니까.' 이런 답이 돌아왔어. '이 아이를 만나게 해준 당신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가 아직도 이 일을 못 끊어."
안="전 지금까지 소말리아·코트디부아르, 그리고 동티모르까지 15개 나라를 방문했어요. 그때마다 느끼는 게 나라가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아이들은 다 똑같이 천진하고 예쁘다는 거예요. 그 눈망울이 정말…."
최="그래, 정서를 적셔주지."
안="갔다오면 그 눈망울이 자꾸 생각나요. 그래서 끊질 못하겠어요. 우리가 도우러 가는 건데 되려 더 많은 걸 느끼고 돌아오곤 해요. 힘든 것도 모르겠어요."
최="내가 케냐에 갔다고 했잖아? 도착하기 전까지 '내가 무슨 용기로 노구를 끌고 아프리카에 온 건가' 싶었어. 갔더니 큰 강줄기에 물이 하나도 없더라고. 사람들이 한 7~8m 파니까 물이 조금 고이는데 허연 물도 아니고 벌건 진흙물이야. 그걸 겨우 사람들이 나눠마셔. 아이들은 내가 들고 다니는 생수통을 보며 '그게 진짜 마시는 물이냐'고 묻더라. 그런 물을 본 적이 없는 거지. 죄스럽고 목이 메었어. 그때 하늘을 쳐다봤어. 신이 정말 있긴 한 걸까, 생각하면서."
안="저도 에티오피아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열 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커다란 웅덩이가 있더라고요. 누런 물이 고여있는. 그런데 꼬마들이 전부 양동이를 이고 그 물을 떠 가는 거예요.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보니 웅덩이에서 세 시간 떨어진 곳에서 왔대요. 그대로 또 세 시간 걸려 집에 돌아가는 게 이 아이들의 일상이에요. NPO 활동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건 아이들이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최="아이들은 미래의 주인공이잖아. 이들의 꿈이 좌절되는 건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야. 요새는 전파 매체가 발달하면서 재해·전쟁 등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잖아?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침묵한다는 것은 잘못 같아."
안="좋은 말씀입니다. 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선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한국이 여러 국제 구호단체의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소 팔고 논 팔아 자식들 교육시킨 부모들 덕분이잖아요."
최="나도 안 선생 생각에 정말 공감해. 삶의 지혜란 결국 제대로 된 교육에서 오는 거니까. 대중과 친숙한 우리같은 문화예술인이 더욱 앞장서서 이런 생각들을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겠지."
안="그래서 요새 후배들이 NPO 홍보대사도 많이 하잖아요. 혹자는 '보여주기'식이라면서 비판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순히 인기를 노리고 '보여주기 위한' 활동을 한다면 이 일 오래 못하죠. 표정에서도 다 드러나게 돼 있어요."
최="맞는 말이야. 홍보대사 활동하는 친구들은 내게 다 예뻐 보여. 그 뜻을 의심하고 싶지 않아."
안="이렇게 선배님과 말씀 나누는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선배님, 우리가 하고 있는 '봉사'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최="봉사는 희생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똑같이 살기 위한 '서비스'지. 기아·질병·전쟁 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구하면 그게 결국 우리도 사는 길 아닐까? 그렇게 나도 살고 그들도 사는 거야."
안="네. 말로 표현할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나눔'이 아닐까 싶습니다. 힘든 것도 나눠서 하고 좋은 것도 함께 나누는 거죠."
최="우리가 비슷한 부분이 꽤 많은 것 같네. 내 소원이 하나 있다면 죽기 전에 북한 아이들을 꼭 돕고 싶어. 남북관계 좋을 때는 재단서 빵 공장 지어 아이들에게 빵도 주고 그랬는데 이제 그게 안 돼. 정말 가슴 아픈 일이야. 안 선생은 어떤가?"
안="전 넓게 보다는 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목표는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아이들과 만나고 소통해 나가는 일을 더 열심히 해 나가고 싶어요."
최="이하 동문일세."
두 배우가 지난 18일 만나 그동안의 봉사 활동에 얽힌 이야기를 나눴다. 1987년에 만들어진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연기했던 두 배우는 이후 간간이 시상식 등의 행사에서 마주치기는 했지만 긴 대화를 한 적은 없었다.
인사를 나눈 뒤 잠시 머쓱해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활동에 대한 얘기로 접어들자 이심전심의 눈빛을 교환하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최불암(이하 최)="오랜만이네, 안선생. 이런 자리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지?"
안성기(이하 안)="네, 선배님. 그런데 왠지 꼭 자주 뵌 것 같네요. 활동하시는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가…."
최="나도 마찬가지야. 비행기 탈 때마다 유니세프 홍보 영상이 나와서 '이 친구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구나' 싶었어. 그나저나 요새는 무슨 일을 하나?"
안="2월에 동티모르에 다녀왔어요. 저희가 거기서 '아동 친화 학교' 사업을 진행 중이거든요. 그것말고도 후원자들과의 토크콘서트, 홍보영상 내레이션 작업 등을 했죠."
최="난 지난해에 케냐에 갔다왔어. 이 나이에 스물네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니까 아주 죽겠더만. 케냐는 몇 년째 가뭄이 극심해서 사람들이 물을 못 마시고 있더라고. 가슴이 아팠어. 올해도 국내외로 열심히 돌아다닐 계획이야."
안="진짜 대단하세요. 저도 저지만 선배님은 정말 오래 되셨잖아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최="난 드라마 '전원일기' 덕분에 어린이재단에 처음 들어갔어. 1981년도였나? 드라마에서 내가 업둥이로 금동이를 데리고 온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날부터 나한테 시청자 팬레터가 쏟아지기 시작한 거야. 다 작가의 펜 끝에서 나온 얘긴데 시청자들이 그런 걸 구분 못할 때였거든."
안="고민이 깊어지셨을 것 같네요."
최="정말 그랬어. 내 고민을 알게 된 지인이 '그럼 진짜 어린이들을 도와 보라'고 하더군. 그때 어린이재단을 처음 알았고 재단에서 서울시 후원회장직을 내게 제안했지.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네."
안="선배님이 모든 연예인 홍보대사의 원조네요.(웃음) 저는 전쟁 중에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유니세프 로고가 굉장히 익숙했어요."
최="안 선생도 수혜를 좀 받았나?"
안="그럼요. 밀가루·분유·헌옷…. 그러다 80년대 후반에 제가 배우 활동을 할 때 불우이웃돕기 단체 행사 섭외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믿을만한 단체가 거의 없었죠."
최="맞아, 그때 단체들이 참 많았지"
안="네 비슷한 시기에 유니세프에서도 홍보대사 제안이 들어왔어요. 한국이 유니세프가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바뀔 때쯤인 1993년이었어요. 옛날에 도움 받았던 생각이 나더라고요, 당연히 해야겠다 싶었죠."
최="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 내가 말이지, 1984년도에 어린이재단 본부가 있는 미국 리치몬드에서 한국 아이를 입양한 미국인 부부를 만난 적이 있어. 아이가 뇌전증 증세가 있어 일주일에 두세 번 발작을 하는데 정말 극진히 돌보더라고. 내가 물었지. '당신들의 정신은 신앙에서 오는 겁니까, 교육에서 오는 겁니까.' 이런 답이 돌아왔어. '이 아이를 만나게 해준 당신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가 아직도 이 일을 못 끊어."
안="전 지금까지 소말리아·코트디부아르, 그리고 동티모르까지 15개 나라를 방문했어요. 그때마다 느끼는 게 나라가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아이들은 다 똑같이 천진하고 예쁘다는 거예요. 그 눈망울이 정말…."
최="그래, 정서를 적셔주지."
안="갔다오면 그 눈망울이 자꾸 생각나요. 그래서 끊질 못하겠어요. 우리가 도우러 가는 건데 되려 더 많은 걸 느끼고 돌아오곤 해요. 힘든 것도 모르겠어요."
최="내가 케냐에 갔다고 했잖아? 도착하기 전까지 '내가 무슨 용기로 노구를 끌고 아프리카에 온 건가' 싶었어. 갔더니 큰 강줄기에 물이 하나도 없더라고. 사람들이 한 7~8m 파니까 물이 조금 고이는데 허연 물도 아니고 벌건 진흙물이야. 그걸 겨우 사람들이 나눠마셔. 아이들은 내가 들고 다니는 생수통을 보며 '그게 진짜 마시는 물이냐'고 묻더라. 그런 물을 본 적이 없는 거지. 죄스럽고 목이 메었어. 그때 하늘을 쳐다봤어. 신이 정말 있긴 한 걸까, 생각하면서."
안="저도 에티오피아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열 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커다란 웅덩이가 있더라고요. 누런 물이 고여있는. 그런데 꼬마들이 전부 양동이를 이고 그 물을 떠 가는 거예요.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보니 웅덩이에서 세 시간 떨어진 곳에서 왔대요. 그대로 또 세 시간 걸려 집에 돌아가는 게 이 아이들의 일상이에요. NPO 활동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건 아이들이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최="아이들은 미래의 주인공이잖아. 이들의 꿈이 좌절되는 건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야. 요새는 전파 매체가 발달하면서 재해·전쟁 등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잖아?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침묵한다는 것은 잘못 같아."
안="좋은 말씀입니다. 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선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한국이 여러 국제 구호단체의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소 팔고 논 팔아 자식들 교육시킨 부모들 덕분이잖아요."
최="나도 안 선생 생각에 정말 공감해. 삶의 지혜란 결국 제대로 된 교육에서 오는 거니까. 대중과 친숙한 우리같은 문화예술인이 더욱 앞장서서 이런 생각들을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겠지."
안="그래서 요새 후배들이 NPO 홍보대사도 많이 하잖아요. 혹자는 '보여주기'식이라면서 비판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순히 인기를 노리고 '보여주기 위한' 활동을 한다면 이 일 오래 못하죠. 표정에서도 다 드러나게 돼 있어요."
최="맞는 말이야. 홍보대사 활동하는 친구들은 내게 다 예뻐 보여. 그 뜻을 의심하고 싶지 않아."
안="이렇게 선배님과 말씀 나누는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선배님, 우리가 하고 있는 '봉사'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최="봉사는 희생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똑같이 살기 위한 '서비스'지. 기아·질병·전쟁 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구하면 그게 결국 우리도 사는 길 아닐까? 그렇게 나도 살고 그들도 사는 거야."
안="네. 말로 표현할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나눔'이 아닐까 싶습니다. 힘든 것도 나눠서 하고 좋은 것도 함께 나누는 거죠."
최="우리가 비슷한 부분이 꽤 많은 것 같네. 내 소원이 하나 있다면 죽기 전에 북한 아이들을 꼭 돕고 싶어. 남북관계 좋을 때는 재단서 빵 공장 지어 아이들에게 빵도 주고 그랬는데 이제 그게 안 돼. 정말 가슴 아픈 일이야. 안 선생은 어떤가?"
안="전 넓게 보다는 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목표는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아이들과 만나고 소통해 나가는 일을 더 열심히 해 나가고 싶어요."
최="이하 동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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