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의 눈물, 100만 곳은 월 100만원 못 벌어
입력 2016-12-23 01:00:00
수정 2016-12-23 09:18:43
대형 빌딩 지하에서 일식당을 하는 이선주(55·여)씨는 최근 2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올 여름 콜레라 여파와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까지 겹치면서 매출액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매출 하락에도 불구 월세(800만원)와 인건비(600만원)는 계속 지급해야 했던 이씨는 결국 은행 문을 두드렸다. 이씨는 “직원을 내보내는 등 비용을 줄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25년째 장사를 하면서 요즘처럼 힘든 때는 없었다”고 말했다.
자영업은 흔히 ‘최후의 보루’로 불린다. 저성장 국면의 장기화로 일자리가 줄면서 취업이나 재취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뛰어들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영업을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통계청이 22일 발표한 ‘자영업 현황분석’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 자영업 사업체는 479만221개로 1년 전보다 1만1504개 감소했다. 새로 개업한 업체보다 문을 닫은 업체가 더 많다는 얘기다. 너도 나도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심해지는데 소비자들은 갈수록 지갑을 닫고 있어서다.
지난 2010년부터 서울 신천동에서 생선구이집을 운영하는 김선식(62)씨는 부인과 함께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 대비 40%나 줄었다. 그는 “지난해에만 해도 주변 사무실 직원들이나 공사 현장 직원들이 단체로 와서 저녁 회식을 했는데 올해는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그는 “매달 월세 250만원을 내는데 실제 수입은 그 반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런 상황에서 장사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변변치 못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자영업체 중 51.8%의 연 매출액이 4600만원 미만이었다. 연매출 1200만원 미만인 자영업체도 전체의 21.2%에 달했다. 월매출액이 100만원 미만이라는 얘기인데 창업비용과 원가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손실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김씨는 장사를 시작하면서 상가 보증금 2500만원, 권리금 2500만원, 인테리어와 집기류 3000만원 등 모두 8000만원을 투자했다. 그 중 5000만원을 대출로 충당했는데 원금은 갚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이자만 한 달에 30만원씩 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어획량이 줄면서 생선 가격이 계속 올라 원가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김씨는 함께 일하던 직원 2명도 올 여름 모두 내보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김씨처럼 직원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고 업체를 운영하는 곳이 지난해 기준 396만 개를 넘었다. 전체 등록 자영업체의 82%에 달한다.
자영업자들이 ‘레드오션’에 몰려있다는 점도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등록 자영업체들의 산업별 분포를 보면 도·소매업(23.6%), 부동산·임대업(21.5%), 숙박·음식점업(14.6%) 등 전형적인 영세 자영업종들이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권인 서울·경기·인천에 전체의 절반(50.8%), 경상권에 나머지 중 절반(25.5%)이 몰려있다는 점도 경쟁 심화 요인으로 지목된다.
자영업자 대부분이 중장년층이라는 점은 자영업의 ‘블루오션’ 발굴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전체 등록 자영업자 중 50대가 32.4%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27.7%, 60대 이상이 24.7%였다. 30대 이하 젊은 층의 비중은 15.1%에 불과했다. 심지어 지난해 60대 이상 자영업자 수는 전년보다 2% 늘어나기까지 했다. 결국 자영업의 영세성과 경쟁심화, 경기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자영업자들의 환경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자영업 전용 바우처 지급,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 중 일부 과도한 조항의 손질,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지원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뾰족한 묘수가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해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자영업자 대책은 은행 대출 만기 연장 정도가 전부일 것”라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 다른 사안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진석 기자, 성화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