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상희 교수가 바라본 '인류의 기원'
인류의 조상을 찾는 일은 여전히 흥미로운 일이다. 찰스 다윈은 인류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큰 두뇌, 작은 치아, 직립보행, 도구 사용’이다.
하지만 인류의 조상을 찾는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고인류학자 이상희 교수는 “인류 진화의 역사가 수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는 30일(목)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창의스카이라운지에서 진행된 저자초청특별강연 ‘인류의 기원’에서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인간의 ‘진화’에 대해 큰 물음표를 던졌다.
모두가 알고 싶은 비밀, 인류의 기원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인류의 조상이 ‘큰 두뇌’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큰 두뇌는 인류가 가진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두뇌는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도 ‘알고 있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지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20세기 초 영국에서 발견된 ‘필트다운인(Piltdown man)’은 인류의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모범 답안이었다. 큰 두뇌와 사나운 송곳니를 가진 필트다운인은 유력한 인류 최초의 조상 후보였다.
하지만 1950년대 들어 필트다운인이 사실은 중세시대인의 머리뼈와 유인원의 이빨과 턱뼈를 조합해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며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60년대 과학자들은 인류의 조상이 1000만 년 전 이전 시대에 살았던 유인원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콘술(Proconsul)’과 ‘라마피테쿠스(Ramapithecus)’가 이 연대에서 발견된 화석 유인원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인류의 조상이 아니었다. 생화학적, 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인류의 조상이 아닌 먼 친척 유인원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제 인류의 조상은 우리가 그동안 교과서에서 배웠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Australopithecus)’로 넘어온다. 1970년대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화석은 1920년대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ustralopithecus africanus)’였다. 하지만 생존 시기를 추정해보니 200만~300만 년 전으로 너무 짧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1970년대에 이르러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 300만~35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를 발견하기 이른다. 과학자들은 이들을 인류의 조상으로 지목했다. ‘인류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루시(Lucy)’가 바로 이 종에 속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견은 고인류학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여겼던 큰 두뇌가 이들에게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는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여겨졌던 큰 두뇌도, 작은 치아도, 도구를 사용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두뇌 용량은 450cc정도로 침팬지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두 발로 걷는다는 점은 뚜렷한 증거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이제 인류 조상의 근거로 큰 두뇌보다 직립보행을 했는가를 먼저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루시는 작은 뇌에 직립보행을 한다는 점 외에는 유인원과 큰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인류 진화의 과정, 계속 되는 논쟁 속으로
여기에 또 다른 가설이 있다. 이제까지 인류 진화의 정설은 몸과 머리가 작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일부가 진화를 거치며 호모속이 되었고 이들은 아프리카 바깥 다른 대륙으로 이동해왔다고 본다. ‘아프리카 기원설’이다.
하지만 지난 2003년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신종 화석(호모 플로레시엔시스, Homo floresiensis·플로레스인)이 발견되면서 아프리카 기원설에 의문이 제기됐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400cc의 작은 두뇌 용량에 키는 1m 정도로 작고 직립보행을 했다는 증거가 있다. ‘루시’와 비슷하다.
만약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속한다면 호모속 이전에 아프리카를 탈출한 인류의 조상이 있으며, 플로레스인은 이들의 후손이라는 말이 된다. 결국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아시아에서 호모속으로 진화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교수는 “이건 병리학적으로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고 흥분했다. 그는 “학계에서는 새로 나온 ‘종’이다, 아니다로 10년을 싸웠다. 지금은 새로 나온 종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플로레스인의 계통 분류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이 교수는 “가설이 검증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최근 발견된 ‘날레디(Naledi)’도 흥미롭다. 지난 2013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발견된 호모 날레디는 원래 약 250~300만 년 전 살았던 고인류 초기 종으로 분류됐다.
그러다 지난해 추가 발굴을 통해 20~30만 년 전에 생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호모 날레디는 키가 1.5m에 뇌는 작고 직립보행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호모 날레디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들에게 장례 의식이 있었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인간이 죽음을 애도하는 행위를 통해 사회적 활동을 한다는 점을 볼 때, 이들의 장의 의식은 ‘죽음’에 대한 추상적인 관념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이라며 “죽음이나 매장이라는 의식은 1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에게서나 발견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과거 인류의 특징이라고 단정지었던 많은 것들이 새로운 연구와 발견이 거듭되면서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제까지 발견된 다양한 화석들을 보면 인류는 직선으로 하나의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 꼬불꼬불한 발자취를 남기며 걸어왔다.
이 교수는 “인류는 한꺼번에 하나의 ‘패키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은 한꺼번에 나타나 같은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 점차 만들어져 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인류의 조상을 찾는 일은 계속될 것이고, 여기에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과 상상력”이라고 강조했다.
- 김은영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8.08.31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