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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메모리반도체, D램, 낸드플래시, 용도 구분

FERRIMAN 2018. 12. 29. 18:14
입력 2015.11.16 03:06

[경제교실] 메모리 반도체 A부터 Z

스마트폰·태블릿, 고도의 연산보다는 검색·사진·동영상 보여주기 중심…
메모리 반도체 역할이 더 중요해져
PC수요 줄어든 '메모리 원조' 인텔, 석유보다 메모리 많이 수입하는 中
한국이 주도하는 메모리 시장 진출

황철성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재료공학부 교수) 사진
황철성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재료공학부 교수)

우리 제조업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하는 등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만은 세계 메모리 시장의 60~70%를 석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단일 품목으로 우리 수출의 11%(2014년 기준)를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우리 역사상 최고 수출품 반열에 올랐다. 이는 1990년대 후반부터 약 20년간 미국·유럽·일본의 메모리 업계와 처절한 '치킨게임'(죽기살기식 경쟁)을 벌여 살아남은 결과다. 그런데 이제 그 단맛을 즐기려는 시점에 중국 반도체 업계가 압도적인 국가 지원을 등에 업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려 하고 있다. 30년 전 메모리 사업을 접었던 미국 인텔마저 내년부터 새 개념의 메모리를 양산한다.

이처럼 중국과 미국의 협공에 국내 반도체 업계만 아니라 전체 산업계가 긴장하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에서 이처럼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는 얼마나 다양한 종류가 있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일까.

◇10년이 지나도 정보 안 지워지는 낸드플래시

스마트폰과 태블릿 같은 '손안의 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 현대인들은 저마다 수십~수백 기가바이트씩의 데이터를 갖고 있다. 한 대의 스마트폰에도 전화번호·사진·동영상·음악·문서 등 엄청난 양의 정보가 담겨 있다. 이런 정보들을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바꿔 저장해주는 것이 메모리 반도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낸드플래시 메모리다.

낸드플래시의 가장 큰 특성은 한 번 저장된 정보는 전원이 끊겨도 지워지지 않고 10년을 버틴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낸드플래시는 데이터를 쓰고 지우는 데 약 20볼트의 전압이 필요하다. 그보다 낮은 전압에서 데이터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전기가 끊어진 상태(0볼트)에서도 데이터가 안 지워지는 것이다. 낸드플래시는 크기를 작게 만들기도 쉬워서, 엄지손톱만 한 크기에 영화 수십편 분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를 넣고 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1초에 수십억번의 데이터 연산작업을 처리하는 컴퓨터 CPU(중앙연산장치) 스마트폰의 AP(응용프로세서)에 비해 속도가 10만분의 1~100만분의 1 정도로 느리다.

대표적인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제품 비교 표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CPU가 연산작업을 할 때는 데이터를 빨리 쓰고 지우는 고속 메모리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D램이다. 비유하자면 낸드플래시가 자료를 보관해둔 책장이라면, D램은 자료를 책장에서 꺼내서 펼쳐놓은 책상이다. D램은 컴퓨터의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속도 빠른 메모리 D램

D램은 CPU보다 100배 정도 느리지만 낸드플래시보다는 1만배 빠르다. 여러 개를 병렬로 연결하면 CPU가 처리하는 대량의 데이터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D램은 낸드플래시와 달리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이 단점이다. 전원을 끄면 약 0.1초 만에 방전이 되면서 그때까지 담아둔 데이터가 모두 사라진다. 데이터를 지키려면 낸드플래시에 저장을 하거나 계속 전원을 켜둬야 한다.

현재 세계 메모리 시장은 한국이 지배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합쳐서 D램 시장의 70%, 낸드플래시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를 맨 처음 만든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었다. D램은 1970년 인텔이, 낸드플래시는 1984년 일본 도시바가 개발했다. 한국은 어떻게 이런 원조(元祖) 업체들을 제치고 지금의 자리에 온 것일까.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 그래프
메모리 반도체는 CPU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값이 싸다. 비메모리 시장 규모는 메모리 시장의 3~4배다. 두 사업을 다 하던 인텔이 1980년 메모리 시장에서 철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죽자사자 만들어봤자 하나에 겨우 2~3달러 받는 메모리 시장에서 치고받느니, 그 10배를 받는 CPU에 집중하는 게 당시로선 현명한 선택이었다.

D램의 원조인 인텔이 떠난 시장에서 한국은 가격 싸움에서 다른 미국 업체들과 일본·유럽 메이커를 압도했다. 그 원동력이 미세공정 기술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트랜지스터와 그에 연결되는 전자회로의 선폭(線幅)을 더 세밀하고 작게 만드는 것이다.

◇세계 1위 한국의 비결은 미세공정

미세공정이 거듭되면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어 메모리 성능이 좋아진다. 덕분에 1969년 '아폴로 11호'를 달까지 보내는 데에 사용한 거대한 컴퓨터보다 현재의 조그만 스마트폰 안에 들어 있는 컴퓨터의 성능이 훨씬 우수해졌다.

같은 재료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수록 제조원가는 떨어진다. 제조업체로선 수익성이 좋아지는 것이다. 메모리 가격이 떨어져도 메모리 업계가 막대한 수익을 내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미세공정에는 많은 돈이 든다. 생산라인 하나 건설에 6조~8조원이 드는 새 공장을 계속 지어야 한다. 오너 체제 아래 과감한 투자에 나선 한국 반도체 업계는 이 싸움에서 이겼다. 한국이 주도한 미세공정 경쟁을 견디지 못한 업체들이 나가떨어지면서 세계 메모리 시장은 5~6개 안팎의 메이커만 살아남은 과점(寡占)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인텔과 중국은 왜 지금 메모리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한마디로 '메모리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태블릿은 고도의 연산보다는 주로 검색과 사진·동영상을 감상하는 것이 주된 업무여서 메모리의 역할이 PC보다 클 수밖에 없다. '메모리 원조'인 인텔도 예상 못한 반전이었다.

◇인텔도 예상 못한 '메모리 시대'의 도래

모바일 기기의 폭발적인 성장은 PC 시장의 성장을 억제할 정도에 이르렀다. 미국과 중국으로선 치킨게임이 끝나고 메모리 수요 폭증이라는 날개까지 단 한국 업체들의 독주를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다. PC의 강자인 인텔로서는 '먹고 살기 위해' 다시 메모리로 눈을 돌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소비 국가인 중국은 1년에 수입하는 메모리 반도체 총액이 석유 수입액보다 크다. 따라서 자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칩의 구조가 간단하고, 설계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후발 주자였던 우리가 빠른 속도로 격차를 줄이고 세계 최고가 될 수가 있었다. 우리보다 수십배의 덩치를 지닌 거인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리 는 미국·일본에 비해 장비, 소재 등 후방 산업의 기술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미세공정을 비롯한 메모리 기술의 격차를 어떻게든 더 벌릴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반도체 분야에 가장 우수한 인력이 계속 유입되어야 하고,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깊이 있고 폭넓은 연구 개발이 학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한 정부와 기업의 지원도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