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과학] 돌돌 말리는 '롤러블 TV' 어떻게 만들었지?
맹하경 입력 2019.01.26 13:02유리 대신 OLED 보호, 휘어지는 ‘박막봉지’ 기술의 진화
소비자가전박람회(CES)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LG전자는 돌돌 말아 넣을 수 있는 ‘롤러블(rollable) TV’를 공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해 11월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접었다 펼 수 있는 ‘폴더블(foldable) 스마트폰’의 기능을 조명이 꺼진 어둠 속에서 살짝 공개했던 삼성전자는 다음달 20일 갤럭시S10 신제품 공개행사 때 완제품을 소개할 것으로 보인다.
“파괴적 혁신”(삼성 폴더블 스마트폰-블룸버그), “가장 말도 안되고 멋지면서도 중요한 신기술”(LG 롤러블 TV-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들의 찬사를 받은 두 제품의 공통점은 직사각형으로 고정돼 있던 디스플레이의 틀을 완전히 깼다는 점이다. 2019년은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즉, ‘플렉서블(flexibleㆍ구부러지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상용 제품에 채택되는 원년이 된다는 의미다.
◇유연하고 강한 플라스틱이 핵심
OLED가 액정표시장치(LCD)와 구분되는 건 ‘자체발광’이다. 뒤에서 빛을 쏴주는 백라이트가 필요한 LCD와 달리 OLED는 소자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얇은 두께와 가벼운 무게가 강점이다. 더 큰 매력은 높은 ‘유연성’다. 이미 프리미엄 스마트폰에는 OLED 탑재가 공식처럼 자리잡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평평하고 딱딱한 화면을 쓰고 있다. 그 이유는 △패널을 밑에서 받쳐주면서 전체 구조를 지지하는 하부 기판과 △보호 역할을 위해 소자를 감싸는 봉지(封止ㆍencapsulation)의 재료가 유리이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신뢰도가 높지만 구부러지는 것에는 취약한 유리를 대신할 소재를 찾는 것이 플렉서블 OLED의 최대 과제였다.
기판의 경우 고온에서 진행되는 제조 공정을 버티려면 열이 가해져도 팽창하거나 수축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는 안정성이 중요하다. 열에 강하면서도 유연성을 갖춘 가장 강력한 후보는 플라스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망한 소재는 ‘폴리이미드’(PI)로 복원력이 우수하고 충격에 강한 고분자소재다. 다른 플라스틱보다 화학과 열 변화에 대한 안정성도 뛰어나 플렉서블 OLED를 제조할 때는 PI가 유리 기판 대신 쓰이고 있다. 유연한 화면을 위한 첫 단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다음으로 봉지층 역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구현의 핵심 기술이다. 평평한 일반 OLED가 봉지층에 유리를 쓰는 이유는 OLED의 자체 발광하는 유기물질이 수분과 산소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유리는 수분과 산소를 완벽 차단할 수는 있지만 쉽게 깨지기 때문에, 화면을 말거나 접는 등 패널 모양을 바꿀 수 있으면서도 수분과 산소의 침투를 막는 방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현재 가장 대표적으로 쓰이는 방식은 무기막과 유기막을 아주 얇게 번갈아 쌓는 ‘박막봉지’(Thin Film Encapsulation)다. 무기막은 외부로부터 오염물질 침투를 막아주지만 ‘핀홀’ 등 아주 미세한 구멍이 있어 그 사이로 수분과 산소가 들어올 위험이 있다. 또 무기물의 특성상 표면도 고르지 않아, 사이 사이에 유기막을 삽입해 안정적으로 쌓이도록 한다. 수분과 산소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려면 박막을 두껍게 쌓는 게 이상적이지만, 증착이 너무 반복되면 생산성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에 관련 기업들은 한번에 복합 박막을 구성해 쌓는 기술을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있다.
◇폴더블은 시작…늘어나는 화면도 나온다
이렇게 완성된 플렉서블 OLED는 이미 일부 제품에 채택돼 있다. 플렉서블 OLED의 진화는 △커브드(curved)ㆍ벤디드(bended) △폴더블ㆍ롤러블 △스트레처블(stretchable) 등 3단계를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정 부위만 한 방향으로 변형한 후 고정하는 1단계 중 디스플레이를 완만하게 구부린 커브드의 경우 커브드 TV, 커브드 모니터 등에 적용됐다. ‘갤럭시 라운드’ ‘G 플렉스’ 등 삼성전자와 LG전자 스마트폰에 채택된 적도 있다. 양쪽 끝만 살짝 구부리는 벤디드는 ‘엣지’ 형태의 갤럭시S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1단계 제품들은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화면의 몰입감을 높여주고 손에 쥐었을 때의 그립감을 개선하는 게 제품 출시 목적이었지만, 직사각형 형태의 평평한 디스플레이로도 사용자들은 큰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단계 제품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폼팩터 혁신’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폼팩터(form factor)는 하드웨어의 크기ㆍ구성ㆍ물리적 배열 등 제품의 구조화된 형태를 가리킨다. LG의 롤러블 TV가 보여준 것처럼, 거실 한가운데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직사각형을 둘둘 말아 집어넣거나, 작은 영역의 화면만 노출시켜 날씨 등 정보를 표시하는 변화는 폼팩터 혁신이다. 폴더블 스마트폰은 펼쳤을 때 나오는 넓은 화면으로 다양한 멀티 태스킹이 가능하고, 이동할 때는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세로로 길쭉한 화면만 봐야 하는 틀을 깨는 것이다.
스트레처블은 한 방향으로 둥글게 말리고 안쪽 혹은 바깥쪽으로 접었다 펴는 롤러블ㆍ폴더블과 달리, 방향에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한 단계다. 굴곡진 표면에도 맞춤형 디스플레이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전자피부, 스마트 의복 등 완벽하게 신체와 밀착하는 기기에 적용할 수 있다. 기존 목걸이, 시계 등이 수행하던 기능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간단한 원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각 제조 공정이 까다롭고 원가 상승도 불가피하다.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폴더블폰을 공개한 로욜은 구부러지는 폰을 만들긴 했어도 곡률반경이 커 접어도 두껍고, 접히는 부분이 우그러지는 한계를 드러냈다.
폴더블폰 공개를 앞두고 있는 삼성전자의 김학상 디스플레이 개발담당 전무는 “삼성의 폴더블폰은 작은 화면을 큰 화면으로 펼쳤을 때 사용하던 앱이 끊김 없이 이어질 수 있는 직관적 UX(사용자경험)를 위해 노력했다”며 “롤러블과 스트레처블 기기 역시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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