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세상

[월간 곽로컬] 명강사, 명강의

FERRIMAN 2019. 4. 10. 19:25
[월간 곽로컬]

명강사, 명강의

Apr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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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빨려들어간달까. 그런 강의를 듣거나, 본인이 그런 강의를 직접 해 봤다거나 하는 분이 있다면 손들어 보시라. 일단 부럽고 대단하고 축하드린다. 불행히도 나는 이제까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꼬꼬마 유치원 시절부터 초중고, 대학, 대학원, 입시학원, 과외, EBS 수능 강의뿐만 아니라 사회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외국어학원, 전화영어, 인터넷 강의, 각종 직업·자격훈련, 특강, 세미나, 설교, 법문, 훈화말씀 등등 셀 수도 없을 만큼 강의를 듣거나 또는 간간히 직접 강의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어째 무릎을 탁 치게 했던 그런 기억이 없었는지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것은 일단 뭐든 한번 꼬아서 보는 나의 건방진 성향 때문인가 싶기도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 천국에, 신박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거나 무언가 세상 만물의 이치를 되새겨 보게 된다거나 하면 급흥분 활활 타오르고 감동하기도 잘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나의 탓으로만 돌리기도 뭐하다. 반면 정말 지루하다 못해 몸이 꼬여 꽈배기가 된 경험은 꽤 있다. 아무리 공부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곤 하지만 해도 너무한 강의가 분명 있었다. 또 그런 강의일수록 길기는 또 왜 그렇게 긴지 몸은 앉아 있지만 정신과 마음은 이미 무의식의 경계에 가 있곤 했었다. 심연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차라리 명상 선생님이나 수면장애 클리닉을 여셨으면 강사도, 나도, 모두가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는 그런 수업. 아마 나만 겪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한다.

한편 내가 이런저런 기회로 직접 강단에 서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직업체험 강의를 했었는데 애초에 관심 없는 애들을 억지로 모아 앉혀 놓은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졸고, 이탈하고, 떠들고, 장난치고, 딴 짓하고 정말 이런 야단법석이 없었고 수업은 말 그래도 망했다. 악몽 같은 2시간이 그저 빨리 흘러가기만을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중2학년이 그렇게 무섭다더니 과연 그랬던 것이다. ㄷㄷㄷ 그러나 난이도로 보자면 성인이 훨씬 더 어렵다. 그럭저럭 강의를 마쳤다 싶었더니 주섬주섬 정리를 하고 있는 나에게 수강생분이 조용히 와서 말씀하신다. “선생님 강의 내용은 좋은 것 같은데, 말씀하실 때 호흡을 더 길게 하세요. 그리고 강약을 주면 더 전달이 잘 될 거고요” 나는 얼굴이 또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뉘앙스를 보건데 강의를 꽤 많이 하신 분 같았다. 성인 대상 강의는 그래서 어렵다. 고수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식이나 정보의 전달이 각자의 경험 필터로 한차례 걸러져 호응이나 반응이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강사를 만나기도, 명강의를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지식이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훌륭한 강사가 되거나 훌륭한 강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깊이 있는 지식과 알찬 정보를 재구성하고, 그것을 잘 전달하고, 수강생과 함께 호흡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강의다운 강의를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잘 준비된 강사라 하더라도 수강생들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면 모양이 어그러지고, 수강생들이 열의를 갖고 참여해도 강사가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또 모양이 어그러진다. 드물긴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강사도 수강생도 다 준비가 되어 있지만 강의 장소가 안 맞는다든지, 기기가 고장 난다든지, 소음이 발생한다든지 하는 등의 환경이 뒷받침 되지 못해서 어그러질 때도 있다. 강사나 수강생, 환경의 삼박자가 맞아야 명강사, 명강의가 탄생하는 조건이 갖춰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중 명강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력 있고 유능한 강사를 확보하는 일이 선행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전국의 교육기관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학습관에서도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강사님을 어렵게 섭외하여 모셔 와도 명성이나 기대만큼 강의가 안 이루어질 때가 많다. 내용은 좋은데 수강생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렵거나, 자기 주제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수강생들이 기대하는 바하고는 다를 때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강의는 대부분 일회성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끔 단기로 오신 강사분이 수강생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반응도 당연히 좋아서, 이럴 땐 좀 더 큰 규모의 특강이나 정기 강좌로 편성하기도 한다. 또 내용도 좋고, 반응도 좋은 강의이지만 강사 분 스스로 고사해서 더 오래 함께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강사진들이 교육기관들 간 겹치는 경우가 꽤 있다. 만족스러운 조건을 갖춘 강사와 강의가 적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물론 여기엔 예산 제약도 한 몫 한다.

성인의 평생학습은 학교 교육과는 달리 강제적인 것이 아니다. 필요에 의해서 오고 경험에 의해서 판단한다. 또 생업이 따로 있어 공부할 시간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여 시험보고 과목을 패스하는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학습자 스스로 익히고 깨닫고 변화하는 과정이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큼, 어쩌면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강의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이끌 수 있는 노련한 강사가 평생학습계에 더 많아져야 하고 양성되어야 한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나는 학생으로서도 별로고 강사로서도 별로인 것 같다. 그러면 교육기획자로서 명강사, 명강의를 위한 판이라도 깔아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우니 이를 어쩔까 싶다. 내가 하는 일 중에 강사를 선정하는 것이 제일 어렵게 느껴지니 말이다. 대게 강사가 지식이 없으면 강의에 깊이가 없었고, 경험이 없으면 강의에 박력이 없었다. 깊이와 박력을 고루 갖춘 선생님을 찾는 혜안을 부지런히 길러야 하겠다는 생각 역시 해본다. 미스터 초밥왕이란 유명한 만화의 캐치프레이즈는 이렇다.

‘행복을 주는 초밥과 그를 초월한 최강의 생명을 주는 초밥.’

인생 초밥을 찾고, 맛보고, 만들기 위해 주인공은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다. 언젠가 나도 행복을 주는, 그것을 초월한 최강의 생명력을 지닌 명강사, 명강의를 맛보는 날이 있었으면 한다. 아니면 만들어보거나.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야 할까? 그것에 대한 감상을 적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