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1위 일본, 소비 1위 중국, 활용도 1위 한국.’
한·중·일 3국 사이엔 일종의 로봇산업 삼국지가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각각 뚜렷한 장점을 갖고 있는 3국은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극복해 다른 두 나라를 제치고 로봇 강국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먼저 일본은 압도적인 로봇 생산 대국이다. 2017년에 전 세계에서 산업용 로봇이 38만1000대 팔렸는데 이 가운데 56%를 일본 업체들이 생산했다. 일본 특허청 분석에 따르면 세계 10대 산업용 로봇 특허 출원 기업 중에 7곳이 일본 기업이다. 사람의 눈에 해당하는 이미지 센서, 접촉의 강도를 감지하는 입력 센서, 로봇 관절에 들어가는 모터 기술 등에서 일본은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에서 확보한 핵심 기술과 운영 노하우가 쌓여 있어 이들 기술을 서비스 로봇에 이식하는데도 가장 유리한 입장이다.
일본 "생산에선 이기고 비즈니스는 질까" 불안감
이런 일본도 불안한 구석이 있다. 로봇 산업의 핵심 역량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나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전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관계자는 "일본 산업계에는 ‘로봇 제조에서 이기고 로봇 비즈니스에서는 미국에 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전했다. 마치 스마트폰 시장에서 제조 대국인 한국이 운영체제(OS) 같은 핵심 작동 기술을 미국 기업들에 내준 것과 유사하다.
이런 조급증은 일본 아베 정부가 2015년 발표한 '로봇 신전략'에 그대로 담겨 있다. 신전략에는 2020년까지 산업용 로봇의 시장 규모를 두배, 서비스 로봇은 스무배로 키운다는 계획이 담겼다. 이를 위해 5년간 1000억엔(약 9600억원)을 관련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아베 정부는 로봇 산업 제2 도약의 발판으로 내년 도쿄 올림픽을 활용할 계획이다. 올림픽은 산업용 로봇 보다 서비스용 로봇의 활용도가 높은 행사다. 제조 대국을 넘어 활용도에서도 세계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은 로봇을 가장 ‘애용’하는 국가다. 노동자 1만명당 적용된 제조 로봇의 수를 나타내는 ‘로봇 밀도’가 710대로 전세계 평균(85대)의 8배를 웃돈다(2017년 말 기준). 한국은 이 통계에서 2011년에 일본을 추월한 뒤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2위인 싱가포르(658대)과 3·4위인 독일(322대), 일본(308대)을 멀찌감치 앞서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은 로봇 소비에선 '외형상' 대국의 위치에 올라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이 발표한 '월드 로보틱스 2018'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2017년 한해 동안 약 4만대의 산업용 로봇이 판매됐다. 중국(13만8000대), 일본(4만6000대)에 이어 세계 3위의 시장 규모다. 판매액 기준으로도 중국(45억 달러), 북미(25억 달러), 독일(18억 달러), 일본(16억 달러)에 이어 세계 5위권(6억6000만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박상수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전기·전자 산업 분야에서 제어가 간단하고 가격이 저렴한 로봇의 판매가 많아 판매량에 비해 판매 액수로 보면 순위가 다소 낮다"고 설명했다.
로봇 활용에서 압도적 1위 국가이지만 제조 기술로 눈을 돌리면 한국이 갈 길은 아직 멀다. 산업 생태계가 취약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만한 로봇 전문기업이 없다. 전문기업이 없으니 핵심 부품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다. 우리나라의 로봇 부품 수입액은 수출액의 4배를 넘는다(2017년 기준). 부품 기술력이 떨어지니 완제품을 만들어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어린 중국 영재들 클 때쯤엔 격차 더 벌어질듯"
무엇보다 인력난이 심각하다. 일부 고급 인력들은 대부분 대기업 내지 정부 연구소로 편중되어 있어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우수 인력 확보가 어렵다. 실제 2017년 로봇 실태조사에서 전체 로봇업체 기업의 26.8%가 "전문인력 부족으로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로봇 산업은 향후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과 결합해야 발전할 수 있어서 융합분야 고급 인력을 육성할 대책이 시급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인력 양성에서도 중국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고 조언한다. 중국은 로봇 인재 육성을 위해 국제로봇올림피아드(IRO)를 개최하고, 전국에 약 120개의 로봇 전문학교를 설립해 로봇 전문 기술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IRO 참석자의 연령별 비중을 보면, 한국은 중·고등학생의 비중이 높지만 중국은 초등생들의 비중이 높다. 조기 교육의 효과다.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일찌감치 로봇 분야에 뛰어든 중국 영재들이 융합 기술로 눈을 돌릴 때 쯤이면 국내 인력으로는 쫒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관련 창업과 성장을 지원할 정책 마련도 시급하다. 박 연구원은 "로봇 산업은 원천기술 개발 지원과 제품 상용화 지원이 동시에 진행돼야 효과가 큰 분야"라며 "이같은 특성을 고려해 지원해야 한국이 로봇 활용 1위를 넘어 생산대국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베이징·선전·충칭·항저우·텐진=장정훈·박태희·강기헌·문희철·김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