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그린 달 탐사계획 아르테미스 계획의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2024년 달의 남극지역에 내린 우주인들의 탐사 모습. [사진 미국 항공우주국]
아르테미스. 그리스 신화 속 사냥과 달의 여신이 미국의 21세기 유인(有人) 달 탐사로 환생한다.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지 50년 만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반세기 만에 다시 달 탐사에 나서는 프로젝트의 이름을 고민하다 아폴로의 쌍둥이 누이 아르테미스를 선택했다.
NASA는 지난달 23일 달 탐사 ‘아르테미스’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 아르테미스 1호를 발사해 달 궤도 무인비행을 하고, 2022년 2호로 우주인을 싣고 달 궤도 비행을 한 뒤, 2024년 아르테미스 3호로 유인 달 착륙까지 이뤄낸다는 계획이다. NASA는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첫 유인 달 탐사 우주인으로 여성을 보내기로 했다. 아르테미스 계획은 달 궤도 우주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 건설과 함께 추진된다. 2024년 발사될 아르테미스 3호의 경우 루나 게이트웨이를 거쳐 달에 착륙하게 된다.
달 표면에 내린 착륙선. [사진 미국 항공우주국]
50년 전 이미 달을 정복했는데 왜 또 달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르다. 아폴로 계획이 소련과 우주경쟁에서 달에 최초로 다녀오는 것이었다면, 아르테미스 계획의 최종 목적은 달에 인류가 머무르는 것이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1단계는 달에 인류를 다시 보내는 것이지만, 2단계는 2028년까지 달에 인류가 머무를 수 있는 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지가 들어설 곳은 달의 남극. 지금껏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지역이었던 이곳은 얼음이 발견돼 달 기지의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고 있다. NASA는 달 남극의 얼음을 이용해 지구로부터의 공급 없이 물과 산소·에너지를 모두 해결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50년 전과 차이점은 또 있다. 아폴로 계획이 미국 NASA만의 기술력으로 달에 인류를 보냈다면, 아르테미스는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은 물론, 세계 주요국들도 참여하는 민-관 합동 글로벌 계획이다. 50년의 세월이 흐르고 기술이 퍼지고 쌓이면서, 창업한 지 10년 미만의 스타트업들도 달 탐사에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이 된 때문이다.
NASA는 지난 1일 아르테미스 미션의 일환으로 달에 과학 및 기술 장비 등 화물을 실어나를 민간 무인 착륙선 업체 ‘오빗 비욘드’와 ‘인투이티브 머신스’‘아스트로보틱 테크놀로지’ 세 곳을 선정,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민간 우주개발 지원 프로그램 ‘상업적인 달 화물 서비스(CLPS)’에 참가해 경쟁을 벌인 9곳 중에서 선발된 기업들이다. 크리스 컬버트 CLPS 매니저는 "이번 선정 발표는 NASA가 민간 파트너들과 협업을 통해 달 탐사를 해나간다는 중요한 첫걸음을 떼는 것"이라고 밝혔다.
달 궤도를 돌고 있는 우주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와 만나는 아르테미스호. [사진 미국 항공우주국]
이들은 내년부터 달 탐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들 무인 착륙선은 싣고간 과학 장비로 달 표면에서 방사선이나 자기장, 토양 환경 등을 측정하고, 유인 달 착륙선을 위한 착륙 기술 시연과 착륙지 선정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오빗 비욘드는 내년 9월 가장 먼저 착륙선을 발사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있다. 달 북동부의 용암지역인 ‘비의 바다(Mare Imbrium)’에 최대 4개의 장비를 실어나르겠다는 제안서를 내 9700만 달러의 계약을 따냈다. 아스트로보틱 테크놀로지는 2021년에 달 운석구 중 하나인 ‘죽음의 호수(Lacus Mortis)’에 14개의 장비를 실어나르는 계획으로 7950만 달러를 수주했다. 인투이티브 머신스는 ‘폭풍우의 바다(Oceanus Procellarum)’에 5개 장비를 수송하는 안을 제안해 7700만 달러를 NASA로로부터 받아냈다.
NASA는 유인 달 탐사와 게이트웨이를 발판 삼아 오는 2033년을 목표로 화성 유인 탐사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브라이든스틴 NASA 국장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달에서 끝나는 것만 아니라 화성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미국의 달 탐사 재도전 계획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20년까지 ‘달 귀환’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달이 아닌 화성으로 ‘직행’하는 쪽으로 목표를 바꿨다. 미국도 정권에 따라 우주 계획이 춤을 추는 건 매한가지일까. 2017년 취임한 트럼프 정부는 같은 공화당 정부였던 부시 정권의 달 탐사를 다시 살려냈다. 탐사의 의미를 달을 우주탐사의 전진기지로 삼아, 이를 바탕으로 화성 등 더 먼 우주로 탐험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결국 우주탐사는 국가 지도자의 정치적 결정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 예산이 들어가지만, 당장 국민의 삶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미국-소련간 우주경쟁이 그랬다. 이태식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아폴로 계획을 세웠던 케네디 대통령이 당시 미·소 간 경쟁 속 국제정치의 도구로서 달 탐사를 선언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임기와 상관없는 먼 계획인 화성 탐사보다는 손에 잡히는 달 탐사를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비즈니스를 잘 아는 트럼프로서는 달 탐사를 더 빠른 시간 안에 우주산업을 일으킬 수단으로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NASA는 애초 2024년까지 달 궤도에 우주 정거장 ‘게이트웨이’를 설치한 뒤 2028년까지 달에 유인 우주선을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국가우주위원회 회의에서 "2028년에 달로 우주비행사를 보내는 것은 충분치 않다"며 유인 달 탐사 계획을 4년 단축하겠다고 선언했다. 펜스 부통령은 "누군가는 어렵고 위험하며 비싼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1962년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며 아폴로 계획 당시의 케네디를 연상케 하는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14일 트위터를 통해 "나의 행정부 하에서는 NASA의 위대함을 회복하고 달, 그 다음은 화성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돈과 기술이다. 일정을 갑자기 4년이나 앞당기면서, 추가 예산 확보와 관련 기술개발이 절실해졌다. 미 행정부는 곧바로 내년 NASA 예산을 16억 달러(약 1조9000억원) 증액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지만, 하원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민주당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NASA는 기술개발을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민간 우주기업과 협업 통해 풀겠다는 방침이다. 아르테미스 1~3호는 현재 미국 항공우주업체 보잉의 주도로 개발 중인 대형로켓 ‘우주발사시스템’(SLS)에 실려 발사된다. SLS는 역대 최대 로켓이었던 아폴로의 새턴Ⅴ를 넘어서는 역대 최대의 발사체가 될 예정이다.
주광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융합연구부장은 "‘화성 직행’을 계획했던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달 탐사를 얘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산 증액을 들어줄 마음이 없겠지만, 올해가 미국의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지라 민주당으로서도 마냥 거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세기 전 아폴로 계획이 우리에겐 ‘달나라 얘기’였지만, 아르테미스는 달라질 전망이다. 비록, 달 착륙선 개발에 한국이 참여하지는 않지만, 아르테미스 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무인 로봇 달 탐사와 게이트웨이에는 가능한 참여한다는 게 우리 정부의 방침이다.
조낙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거대공공연구정책과장은 "지난달에는 한국천문연구원이 NASA와 달 탐사용 탑재체를 공동 개발하기 위한 실무협약을 맺었고, 앞으로도 항공우주연구원이나 KIST 등도 달 궤도 우주정거장인 게이트웨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