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투덜이 인공지능"
입력 2019-07-17 00:32:12
어릴 적 보던 스머프 만화에는 투덜이 스머프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투덜이 스머프는 매사에 불만인지라 다른 스머프들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꼭 불평을 한다. 이것도 맘에 안 들고 저것도 맘에 안 든다. 투덜이 스머프가 항상 투덜거려도 다른 스머프들이 싫어하지는 않는다. 스머프는 다들 마음씨가 착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판을 들으면 괴롭게 마련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도 어렵다. 원래 사람은 천성적으로 비판을 싫어하는 것도 같다.
그러면 인공지능에게 이러한 비판자의 역할을 맡겨 보면 어떨까? 이름하여 ‘투덜이 인공지능’이다. 투덜이 인공지능은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하든지 그 결정에 불만을 갖고 이의를 제기한다. 예를 들어 주식 투자 조언을 하는 인공지능을 한 번 상상해 보자. 투덜이 인공지능은 이용자에게 주식 종목을 추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용자가 어떤 주식을 사려고 하면 일부러 반대한다. 혹시 지금 투자하려는 회사의 경영진이 최근에 교체되었는데 경영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보았나요? 주가가 고평가되어 있는 상황인데 투자 시점이 적정한가요? 투덜이 인공지능은 빅 데이터를 학습하여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인공지능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투자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미 그런 요소들을 다 고려해서 판단을 내린 것이니 자신이 인공지능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마를 탁 치면서 자신의 투자 결정에 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투덜이 인공지능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한 셈이다. 만약 이런 인공지능이 있다면 투자자가 섣불리 주식 투자를 해서 큰 손실을 입는 것을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투덜이 인공지능처럼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이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경우를 영어식 표현으로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라고 한다. 그 이름과 달리 악마의 대변인은 매우 유용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반론에 대한 답변을 찾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체면도 고려해야 하고, 잘못하면 감정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 게다가 상대방의 직책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비판이 더욱 어렵다. 이처럼 사람은 비판을 어려워하지만, 인공지능에게는 충분히 시켜봄 직하다.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은 금융·의료·경영·법률 등 많은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의사가 진단을 내리면 다른 병의 가능성을 알려줄 수도 있고, 변호사가 작성한 소송 서류를 살펴보고 예상되는 반대 주장을 알려 줄 수도 있겠다.
아직 이러한 인공지능이 실제로 개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니, 이는 일종의 ‘사고 실험’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은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에 도전한다. 흔히들 인공지능이란 인간을 대신해서 의사 결정을 자동화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나은 판단을 하도록 돕는 인공지능은 어떨까? 사람은 원래 실수를 한다. 수요 예측을 잘못하여 재고가 쌓이기도 하고, 잘못된 투자로 손실을 입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여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것보다, 사람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인공지능을 만들면 좋겠다. 투덜이 인공지능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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