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세상

[중앙일보] 남북협력, 남북한, 의료협력

FERRIMAN 2020. 4. 24. 09:36


[이희옥의 한반도평화워치] 남·북·중 의료 협력, 남북 관계 돌파구 될 수 있어

입력 2020-04-21 00:17:00
  에서 제공
글자크기 선택 SNS로 공유하기
코로나 이후 남북 관계 사용설명서
북한은 북·중 국경을 폐쇄하는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의료 수준이 열악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평양 대성구역 미장원에서 비닐 작업복을 입고 방역하는 모습. 노동신문이 지난 18일 게재했다. [뉴스1]

북한은 북·중 국경을 폐쇄하는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의료 수준이 열악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평양 대성구역 미장원에서 비닐 작업복을 입고 방역하는 모습. 노동신문이 지난 18일 게재했다. [뉴스1]

지난해 6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북한 자신의 안보와 발전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이 닿는 한" 돕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과 12월에는 북한 접경지역인 중국 랴오닝성과 지린성 당서기가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 관광·농업·위생·문화 분야에서 협력의 틀을 만들었다. 특히 신의주시와 단둥시는 ‘전염병 예방 통제 교류협력 메커니즘 합의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또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자 이달 중순부터는 중국이 2억2000만 위안(약 380억원)을 투자하고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신압록강대교의 북한 측 도로 공사가 재개됐다. 

코로나 사태 후폭풍으로 관광·농업 협력을 재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위생 의료협력이 탄력을 받고 있다. 호(户) 담당구역제를 통해 밀착 감시하는 방법 이외에 뾰족한 수단이 없었던 북한으로서도 절박한 처지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속 공사 서두르는 평양종합병원 

북한은 3월 1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종합병원을 서둘러 착공했다. 군 정예 건설부대인 근위영웅여단까지 동원하는 등 노동당 창당 75주년 기념일인 10월 10일 완공을 목표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이는 보건위생 분야에 대해 국가급 긴급 메커니즘을 건설해야 한다는 기존 정책의 연장선에 있지만, 팬데믹에 따른 북한 지도부의 강한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실제로 북한은 올해를 ‘정면돌파전’의 해로 선포하고 계획했던 중요한 건설 공사를 대부분 연기하고, 짧은 기간에 부지 선정·설계·건설 인력 배치·자재 보급을 확보해 평양종합병원 건설에 전념하고 있다. 홍수와 가뭄, 돼지열병, 광견병에 이어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대유행을 일으킨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더해 김정은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의 의료현대화 사업은 북한의 ‘자력갱생 대진군’이라는 호언과 달리 중국의 자본과 기술 지원 없이 달성하기 어렵다. 중국의 북한 소식통들은 평양종합병원을 시진핑 주석의 방북 선물이라고 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동안 중국은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의약품을 지원해 왔다. 또 북·중 간 첨단 의료장비의 호환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의료 협력 사업을 모색해왔다. 이것은 대북 제재의 사각지대를 찾아야 하므로 안정적 북·중 관계는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중국은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왔고, 북한도 중국과 ‘하나의 참모부’에서 움직인다고 호응해 왔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북한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의로 ‘친혈육이 본 피해로 여긴다’는 위로 편지와 함께 지원금을 전달했다. 중국도 자체 방역을 수습한 이후 지방정부와 국제 민간단체를 통해 다양한 통로로 방역 정보, 진단 시약과 장비, 개인 위생용품 등을 비공개적으로 지원해 왔다. 

향후 미·중 양국의 탈동조화 현상이 심해지고 북·미 관계 교착이 지속하면서 상대적으로 북한의 대중국 의존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은 북한·러시아 등과 함께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제재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는 공동서한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다만 북한으로서도 중국에 깊이 연동된 종속구조로는 ‘단번도약’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교류 다변화의 정책 유인은 남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5일 "문재인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며 마음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전문을 보내면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진솔한 소회와 입장을 밝혀 남북 대화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압승하면서 남북 관계에 대한 돌파전략을 시도할 경우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인식 차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북한의 신중한 대화 모드, 한국을 ‘애태우는’ 전략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의료와 방역만으로는 남북 관계의 모멘텀을 만들기는 역부족이다. 



대북 접근은 대전략과 섬세함 함께 갖춰야 

이런 점에서 북·중 접경지역에서 남·북·중 의료 협력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있고, 북한도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계기로 한·중 방역 경험의 학습, 필수의약품과 의료 장비의 표준화, 의료지식 공유를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이 ‘독이 묻은 돈은 결코 받지 않겠다’는 명분을 고수하는 한, 현실적으로는 앞으로 있을 한·중 정상회담에서 추진 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상회담이 개최되면 양국은 사드 보복 조치의 철회, 방역공동체 논의, 공급사슬 변화에 따른 신경제협력 방안, 한반도 비핵화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이러한 의제를 관통하는 것 중 하나는 접경지역에서의 남·북·중 의료 협력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 정세는 유동성이 강하고 미국 변수도 여전히 살아있다. 천하를 다루는 방식은 작은 생선을 찌는 것처럼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대전략과 섬세함을 함께 갖춘 팬데믹 이후 남북 관계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움직여야 한다. 

■ 중국산 공산품 사라지며 북한 주민 불만 커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7일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서 삽을 뜨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7일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서 삽을 뜨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코로나19 대처는 철저히 중국발 정보에 의존했다. 1월 21일 중국이 코로나19의 사람 간 감염 가능성을 발표하자, 북한은 몇 시간 만에 ‘전국적 범위에서 적극적인 방역 공작을 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1월 말 국가비상방역체계로 전환해 ‘국가 봉쇄’에 준하는 특단의 조처를 했다. 

이에 따라 제72회 건군절 행사와 동계 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시설 소독 활동, 마스크와 소독제 생산 독려, 의료기자재 생산을 위한 자재 확보, 군을 동원한 방역, 식당을 비롯한 공공장소 활동 금지 등 감시국가 자산을 총동원했다. 북한 주민의 불만과 ‘냉소적 태도’가 나타나자, ‘보건사업을 등한시하는 그릇된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기율과 복종을 강화하는 조처를 하기도 했다. 

북한은 ‘사회주의 예방의학에 기반한 방역체계의 우월성’ 속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고,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에 제출한 내각의 사업보고에서도 이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북한의 열악한 위생 상황, 진단 시약과 진단 장비의 부족, 진단 역량에 비춰 확진자를 정확하게 발견하기 어렵다. 또 발견한다 해도 치료와 격리시설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독감이나 폐렴 등으로 보고했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첫 공식 보고를 하기 두 달 전부터 중국에서 높은 감염과 확산 추세가 있었고,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에 따라 5만 명 이상의 중국 체류 노동자들이 북한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북한 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접경지역 밀무역 행위를 통제하기 어렵고, 북한 당국의 다급한 조치와 보도량에 비춰볼 때 북한의 발표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다만 대유행으로 인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북한 주민 80% 정도가 활용하는 장마당에 중국산 공산품이 사라진 상황에서 주민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만 쳐다보지 말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참고 고난을 이겨나가는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다"는 것이 지침이다. 강력한 통제와 격리 민간요법과 고려의학이 대책인 상황이다. 평양종합병원 건설은 바로 이러한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