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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멘토링 자료, 진화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진화

FERRIMAN 2020. 5. 13. 11:02

[알고리즘여행] 저마다의 진화 알고리즘

입력 2020-05-08 00:13:05
수정 2020-05-08 14: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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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진화의 핵심은 교미다. 우수한 개체도 교미의 기회를 갖지 못하면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 없다. 인간의 역사도 교미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수컷의 경쟁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장 강한 수컷은 이런 방향의 강화를 위해 평균적인 수컷을 ‘소모’한다. 

다윈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을 통한 적자생존이다. 자연은 생존의 문맥을 제공하면서 강한 자에게 점수를 더 준다. 환경이 혹독할수록 평가는 더 혹독해진다. 이 혹독함의 정도를 선택압이라 하고 진화의 속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다. 높은 선택압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진화의 다양성을 떨어뜨려 환경이 급변하면 멸종할 수도 있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한 후 강한 자의 생존과 자연선택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로 어려워했다. 대표적인 것이 수컷 공작의 긴 꼬리다. 긴 꼬리는 포식자의 눈에 잘 띌뿐더러 도망가기에도 불편하다. 생존의 관점에서는 매력이 없는 장치다. 다윈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작의 꼬리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할 정도로 고민했다. 『종의 기원』 발표 12년 후 다윈은 이를 설명하는 후속작을 발표했다. 바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다. 

힘은 번식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힘이 곧 번식인 것은 아니다. 사자나 침팬지 같은 소규모 집단생활을 하는 영장류는 우두머리가 모든 암컷을 지배한다. 즉, 교미의 기회를 독점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힘이 곧 번식과 직결된다. 

영장류들은 땅이라는 2차원 공간을 무대로 하므로 우두머리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집단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런데 3차원 공간을 무대로 하는 조류의 경우 공간의 크기로 인해 영장류보다는 독보적인 지배가 어렵다. 힘과 번식의 기회가 직결되지 않을 수 있다. 암컷이 싫어하면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는 한 번식이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류는 암컷을 움켜잡을 수 있는 기관을 갖고 있다. 연못에서 유유자적 노니는 것 같은 오리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처참한 강간이 난무한다. 교미는 흔히 어느 정도의 강제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움켜잡을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공간으로 접근하도록 하려면 뭔가 유인력이 있어야 한다. 

공작의 꼬리는 생존에는 불리하지만 암컷의 관심을 끄는데 유리한 탓에 점점 더 길게 진화한 것이다. 수컷 마나킨새는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집단으로 공연을 한다. 암컷이 만족하면 그중의 한 마리와 교미를 한다. 수컷 바우어새는 움막을 짓고 넓은 마당을 만들고 컬러풀한 장식물 더미들을 만든다. 암컷의 관심을 끌어 암컷이 한계 거리로 들어오면 덮친다. 암컷은 색깔이 우중충하고 수컷은 생존에 불리할 정도로 화려하다. 이런 방식의 진화를 성선택이라 한다. 생존력과 상관없이 암컷의 관심을 끄는 능력에 의해 교미의 기회가 생기는 프로세스가 형성되면 이 방향으로 ‘퇴폐적인’ 거품 수준까지 진화가 일어난다. 

먼 옛날 수렵채집 시대에 인간 집단에서는 먹는 것이 생존에 직결되었다. 따라서 사냥을 잘하는 수컷이 암컷들의 관심을 더 끌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유전자를 남겼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특이한 스타일의 수컷을 상상해본다. 운동 신경도 없고 허약해 사냥을 나가면 뒤처지고 방해만 되는 수컷은 점점 사냥에서 배제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수컷들이 사냥을 나갈 때 동네에 남아서 암컷들이랑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수컷이 용모가 뛰어나고 여성의 관심을 끄는 어떤 매력을 가진다면 번식의 틈새시장이 형성된다. 상당히 불리했겠지만 이런 성향의 DNA도 내려왔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연선택은 번식을 위한 간접 진화다. 반면 성선택은 번식 그 자체다. 효율성으로 따지면 성선택이 더 유리하다. 그렇지만 일단 생존을 하지 못하면 유전자를 퍼뜨릴 수 없으니 혹독한 환경일수록 자연선택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좀 덜 혹독한 환경에서는 성선택이 나름의 시장을 형성했을 것이다. 

교미는 두 개체가 가진 DNA를 대충 잘라서 뒤섞는 것이다. 미약하나마 돌연변이도 포함된다. 돌연변이는 대부분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모의실험을 해보면 나쁜 쪽으로 더 영향을 미친다. 가끔 좋은 영향을 미치는 변이가 일어난다. 이런 개체는 강해지고 교미의 기회를 더 갖는다. 이것이 진화 메커니즘의 핵심이고 이 프로세스를 문제 해결에 차용한 것이 인공지능의 한 갈래인 유전 알고리즘이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