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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명예, 품위, 품격, 존경, 배려, 박원순, 서울시장, 백선엽 장군

FERRIMAN 2020. 8. 2. 09:56

[선데이 칼럼] ‘명예’를 생각할 시간

입력 2020-07-18 00:30:01

 

껌뻑이던 전구가 켜진 느낌이었다. 사람에겐 결국 이름만 남는다는 것. 죽음까지 함께 가는 것은 ‘명예’뿐이라는, 이렇게나 간명하고도 당연한 이치가 새삼 머릿속을 밝혔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고 백선엽 장군. 두 거물급 인사의 부고를 동시에 접하고서다. 한 사람은 인권변호사에서 서울시장이 된 정치인으로, 또 한 사람은 6·25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았던 그들. 살았을 때 영예로웠고, 현대사에 남긴 족적도 확실한 인물들이다. 

하나 지난 주말, 약간의 시차를 두고 전해진 두 분의 부고 앞에서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쫙 갈라졌다. 사연이야 많지만 결국은 ‘명예’ 논란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관 뚜껑이 닫힌 뒤에야 시작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 두 분을 놓고는 입관도 끝나기 전부터 뒤숭숭한 공과(功過) 논란이 일었다. 

두 분과의 생전 인연은 인상론만 말할 수 있는 짧게 스친 정도이지만, 나는 생전의 두 분 모습을 기억한다. 

고 박 시장은 웃음을 머금지 않은 모습을 기억하기 어렵다. "여자들은 가장 좋은 남자사람친구를 잃었다"는 모 인사의 애도사엔 찬성할 수 없어도, 그가 아이디어와 의욕이 넘치고 상대에게 ‘좋은 사람’(good man)으로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인상은 갖고 있다. 실제로 그는 좋은 사람의 따뜻한 언어를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였을 거다. 그가 성추행 피고소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에 거의 분열적인 느낌을 받게 된 것은 말이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자’는 일각의 외침이 초라하게 들리는 것은 이런 분열성 때문일 거다. 여기서 그의 공과 과를 평하고 싶진 않다. 

다만 명예로웠던 서울 시장의 불명예스러운 죽음 앞에서 ‘명예’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 ‘델리케이트한 물건’인지를 알게 됐을 뿐이다. 명예는 도덕성·윤리의식·신뢰와 짝을 이룬다. 명예의 반대는 악명이 아니다. 어차피 악인에겐 명예가 없기 때문이다. 명예의 반대는 위선이다. 인권변호사 출신, 지난 미투 운동 당시 2차 가해에 시달리던 피해자들을 편들던 그의 모습이 생생한데 어떻게 이럴 수가….  물론 그에겐 공도 있고 과도 있지만, 뭉개져버린 ‘명예’는 어떻게 될까. 

반면에 고 백 장군은 웃는 얼굴을 기억할 수 없다. 지난해 신문사에 들렀던 백 장군을 본 게 마지막 모습이다. 당시 백 장군은 귀가 들리지 않아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지만, 6·25 당시의 전투 상황을 섬세하게 회고했었다. 그 이전 두어번 스쳤던 당시에도 그분은 전쟁 당시의 전투를 묘사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저 인정하게 되는 게 있다. 

군인으로서의 정체성만은 투철한 한 인물을 보고 있다는 것. 그에 관한 친일 논란과 빨치산 토벌 당시 민간 학살 관련성 문제도 그의 군인 정체성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외곬의 정신’에서 오는 집중력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을 것이고, 민간이 상하더라도 적을 소탕하려는 집념으로 발현됐으리라는 것 말이다. 

하나 우리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외곬의 삶. 타자의 존엄과 그들의 삶에 무관심한 채 자신의 신념만으로 밀어붙이는,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무지를 향한 열정’은 도덕적·윤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타자의 실존적 삶에 많은 고통을 안긴다는 것도 안다. 명예란 ‘존엄’과 ‘품위’의 문제다. 고 백 장군을 둘러싼 공과의 논란은 ‘타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에 연루되면 자신의 존엄도 챙기기 어렵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엄연하고, 그분들은 논란을 남기고 떠났다. 이제는 그들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시간이다. 어쨌든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두 인물이 남기고 간 숙제와 메시지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챙겨야 할 시간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 있는 것일까. 장례절차와 예우를 놓고 정치적 공방을 벌이고, 과는 덮고 공만 앞세우거나 공은 덮고 과만 떠벌이는 것은 제대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일까. 

이 불행한 시간은 우리에게 ‘명예’에 대해 숙고하도록 주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우리는 명예를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 전리품처럼 챙기는 ‘명성’ 정도로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부와 권력이 커지면 명예도 저절로 높아질 거라는 착각. 그러다 이번에 분명히 알게 됐다. 명예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는 걸 말이다. 달콤한 명성과 권력에 취하다 보면 위선자로 전락해 순식간에 명예는 달아나고, 타인의 존엄을 지켜주지 못하는 강퍅함은 명예를 ‘의문투성이’로 만든다는 것도 말이다. 

지금 죽은 사람을 욕하거나 편들기 위해 자신의 품위를 저버리고, 특히 지금 가장 고통스러울 한 여성을 둘러싸고 악다구니를 벌이는 인간 군상을 본다. 타자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는 자신의 존엄마저도 내팽개치는 것이라는 생생한 현장을 보면서도 왜 똑같은 행태는 반복되는 것일까. 명예란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 마지막까지 인내하고 진정성을 지키는 고단함을 기꺼이 감수할 때 비로소 내 곁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명예롭게 살 것인지 학습할 기회를 얻었다. 그 시간이 낭비되지 않기를…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