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에너지

[중앙일보] 플라스틱, 산업폐기물, 리사이클링, 재활용, 쓰레기

FERRIMAN 2021. 6. 27. 14:45

 

면이불서 잘 때 빼곤···생후 200일 아기도 플라스틱 포위됐다

입력 2021-06-25 05:00:01









서울의 1인가구 김지목(30)씨가 일주일동안 쓴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들. 재택근무를 하며 먹은 배달음식, 일주일간 마신 물, 간식과 마스크 등 포장재를 모으니 김씨의 자취방 바닥 1/3을 차지했다. 특별취재팀

"그냥 일주일을 살았는데, 이게 다 플라스틱이라고요? 이건 다 피할 수가 없는 것들인데…."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김지목(30)씨는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재택근무를 하는 코로나19 시대의 전형적인 1인 가구 직장인이다. 그가 지난달 24일부터 30일까지 사용한 생수통과 배달음식 용기, 간식, 마스크 포장지, 택배로 배송받은 물건의 포장지 등 일주일간 쌓인 플라스틱과 비닐을 모아보니 7평 원룸 바닥의 3분의 1을 덮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플라스틱을 많이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 한명에게서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양이 엄청나다는 걸 새삼 느꼈다"며 "코로나19 영향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마스크 때문에 나오는 비닐 등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일 아기도 잘 때 빼곤 '플라스틱 라이프'

각종 아기용품에는 특히 플라스틱이 많이 사용된다. 식기류 등은 실리콘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지만, 장난감과 화학섬유, 공기청정기와 유모차 등 각종 기기들에도 플라스틱이 빠짐없이 쓰인다. 김정연 기자

플라스틱에 둘러싸여 사는 건 김 씨의 경우만이 아니다. 일회용품뿐 아니라 일상에서 쓰는 물건들도 많은 부분이 플라스틱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흔히 보는 백팩이나 구김이 잘 가지 않는 옷 등도 플라스틱의 일종인 화학섬유로 만든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플라스틱은 어떤 첨가제를 넣느냐에 따라 다양한 성질을 띠고 다루기가 편리해서 나무·돌·철 등 다른 소재를 빠르게 대체했다"며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만들기 때문에 값도 싸서 더 빠르게 시장을 점령했다"고 설명했다. 



취재팀은 세대별로 플라스틱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사용 실태를 파악하고자 태어난 지 200일 된 아기와 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등의 일상을 추적했다. 계속해서 접촉할 수밖에 없는 기저귀·마스크는 시간 표기에서 제외했다.



태어난 지 200일이 갓 넘은 유이서양은 면 이불에서 잠자는 시간을 빼곤 종일 플라스틱에 둘러싸여 산다. 유양이 자주 앉는 아기 의자, 쥐고 노는 장난감, 목욕하는 욕조, 우유를 마시는 젖병 모두 플라스틱 소재다.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금속과 달리 지나치게 단단하지 않고 알록달록한 색을 자유자재로 넣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쓰였다.  

2020년생 유이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양이 머무는 방의 공기를 걸러주는 공기청정기도, 온도를 조절하는 에어컨 외피 모두 플라스틱이었다. 기저귀를 갈 때 쓰는 물티슈도 쪼개지면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 

엄마인 조윤정(31)씨는 "아기용품은 최대한 면이나 천연물질로 쓰려고 노력하는데도 워낙에 플라스틱 제품이 많아서 아예 안 쓸 수가 없다"며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아기가 쓰는 물건 하나하나, 이불(화학섬유)까지 유심히 뜯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안 쓰려 했지만…플라스틱 피하기 어려워"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이예교씨가 하루종일 접촉한 각종 물건들. 플라스틱이 포함되지 않은 물건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용품은 플라스틱 투성이었다. 김정연 기자

  

고등학생인 이예교(16)양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거의 내내 플라스틱이 포함된 물건을 사용하며 지냈다. 종일 끼고 있는 마스크와 교복, 가방 등 화학섬유는 물론이고 교실에서 사용하는 필기구와 필통 등 손에 닿는 물건은 전부 플라스틱 소재다. 귀갓길에 사용한 교통카드와 버스 손잡이, 방 의자와 선풍기까지 이씨가 종일 쓰고 만진 물품 대부분이 플라스틱이었다. 

10대 고등학생 이예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커피와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를 운영하는 안옥경(59)씨도 일하는 내내 거의 쉴 틈 없이 플라스틱과 닿았다. 오전 9시 출근하자마자 펼친 가게 앞 천막, 빗자루와 쓰레받기, 음식 재료를 담는 통과 봉투, 샌드위치를 담아내는 포장 용기, 얼음 담는 기구, 커피 컵 등 안 씨의 손길이 닿는 어디에나 플라스틱이 있었다. 손님이 내민 신용카드와 결제를 하는 기계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50대 자영업자 안옥경.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들은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이 없는 시간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플라스틱을 피할 수 있던 시간은 한살 아기에겐 이불 위에서 낮잠 자던 시간, 직장인에겐 나무‧돌 소재를 사용한 식당에서 식사한 시간뿐이었다. 

이예교양은 "일회용품은 나름 안 쓴다고 생각했는데 생활 속에서 늘 사용하는 플라스틱이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다"며 "물건이 만들어질 때부터 플라스틱을 포함한 채 나온다면, 내 의지만으로 플라스틱을 피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자영업자는 출근하는 순간부터 쉴새없이 플라스틱 제품들을 사용하게 된다. 간단한 도구부터 재료 봉투, 재료를 보관하는 용기, 계산과 주문을 하는 모니터 등 가게 안은 일회용과 다회용 플라스틱으로 가득 차있다. 김정연 기자

  

코로나가 불러온 '플라스틱 중독'









플라스틱 쓰레기. 왕준열PD

이렇게 플라스틱 사용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폐플라스틱 발생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2019년에 배출된 생활폐기물 중 폐합성수지류(플라스틱·비닐 등 총칭)는 하루 1만 1015t이다. 한 명이 1년에 약 77㎏의 폐플라스틱을 배출하는 꼴이다.



특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활동이 잦아지면서 플라스틱 중독 현상은 더 심각해졌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택배와 음식배달 건수는 전년보다 각각 19.8%·75.1% 급증했고, 폐플라스틱 발생량도 14.6%가량 늘었다. 

안옥경씨도 "(플라스틱을 대체할) 다른 방법이 없나 고민을 하지만 플라스틱을 안 쓰기가 어렵다"며 "물건을 만드는 기업들이 플라스틱이 아닌 물품을 더 많이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원순환연대 김미화 이사장은 "소비자들도 플라스틱을 덜 쓰는 기업,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을 원한다"며 "정부가 플라스틱 사용량 감축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기업들과 함께 초기 단계부터 감축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

70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탄생-사용-투기-재활용 등 플라스틱의 일생을 추적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천권필·정종훈·김정연 기자, 왕준열PD, 곽민재 인턴, 장민순 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