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월 2차 발사 때까지 문제점 개선 어렵지 않아"
입력 2021-10-23 00:02:03
수정 2021-10-23 00:32:39
[SUNDAY 인터뷰] ‘누리호’ 개발 주역 고정환 항우연 본부장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이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에 전시된 75t 액체로켓 앞에 섰다. 고 본부장은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첫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 개발의 주역이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인터뷰 시작부터 울먹였다. 애써 돌린 고개 너머로 눈물이 비치는 듯했다. 21일 오후 9시, 누리호가 우주로 떠난 지 4시간이 흘렀다. 늦은 오후의 전율과 흥분이 잦아들고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 깊은 어둠이 내린 시각이었지만, 낮부터 스며든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은 온몸에 남아 수시로 올라왔다. 순수 국내기술로 만든 첫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주역 고정환(54)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 얘기다.
그는 2015년 발사체개발본부장을 맡은 이래 7년째 누리호 개발을 이끌어 왔다. 미국 텍사스A&M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 본부장은, 2000년 항우연 입사 이후로 발사체 개발에 참여해 왔다. 중앙SUNDAY가 누리호 발사 전인 18일과 발사 직후인 21일 두 차례 고 본부장을 만났다.
외국서 기술전수 안 해줘 책·전시물 참고
왜 울먹이나. "잘 모르겠다. 전날까진 평정심을 지켜왔는데, 누리호 발사 예정시간을 5시간 앞둔 오전 11시에 발사대 아래 밸브 이상이 발견되면서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 지난 10여 년간 쏟아온 노력을 단 16분으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하니 그런 것 같다."(3단으로 구성된 누리호의 발사 후 총 비행시간은 967초. 16분하고도 7초다.)
누리호가 목표 고도인 700㎞까지 올라가고도 마지막에 위성 모사체의 궤도진입에 실패했다. "너무 아쉽고 억울하다. 마지막 성공에 너무 가깝게 다가갔는데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사실 2,3단이 잘 분리되고 3단 점화가 되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발사 전까지만 하더라도 3단부가 고도 261㎞의 우주에서 점화가 될까 걱정했는데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문제없겠구나 생각했는데 3단 연소 종료가 될 때 보니 시간이 조금 모자랐다. 3단에 달린 7t 엔진은 목표 연소시간이 521초인데, 다 타지 못하고 427초에 종료됐다. 이 때문에 목표 속도인 초속 7.5㎞까지 오르지 못하고 6.4㎞에 그쳤다. 위성 더미가 우주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이유다. 내년 5월 2차 발사 땐 반드시 개선해서 최종적으로 꼭 성공을 이뤄내겠다."
원인이 뭐로 추정되나. "조사위원회에서 데이터를 받아 조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원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추정하기에는 3단 추진체 탱크의 내부 가압 장치에 이상이 생겼거나, 탑재된 컴퓨터가 연소 종료 신호를 일찍 보냈을 수도 있다. 7t 엔진 자체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 점화가 되고 나서 400초 이상 문제없이 연소하고 폭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원인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1,2단부용 75t 엔진 개발에 주력하느라 7t에 다소 소홀했던 건 아닌가. "그건 아니다. 7t엔진의 추력이 75t의 10분의1이라 쉽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공에서 500초 이상 가장 긴 시간을 연소해야 하고, 대기압이 매우 낮은 탓에 노즐 팽창비가 75t보다 훨씬 커 개발에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더 많다. 그래서 그간 다양한 시험을 많이 해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2차 발사가 예정된 내년 5월까지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겠나. "3단이 400초 이상 비행했으니 기본적인 기능은 거의 다했다고 본다.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최종 성공에 이르기까지 있을 수 있는 소중한 정보를 얻게 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간 나로우주센터에는 자주 내려왔나. "최근 2주간은 계속 나로우주센터에 머물렀다. 저녁엔 예전 예내리 포구였던 자리에 지은 기숙사에서 잠을 잤다. 인적 없는 캄캄한 밤에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려고 하면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새벽에 수시로 깨기도 했는데, 그러고 나면 잠을 못 이루고 새벽을 맞을 때도 많았다. 내가 예정대로 이걸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어깨를 짓눌렀다."
누리호 개발계획이 애초 예정보다 좀 늦어졌다. "원래는 작년에 누리호를 첫 발사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간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초기엔 예산 지원이 늦어지면서 설비와 장비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엔 다들 아는 얘기지만 액체로켓 엔진 연소 불안정과 추진제 탱크 개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정이 또 늦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거꾸로 애초 계획을 대폭 당기면서 진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사실 우주로켓 엔진기술은 우주강국들에선 1950년대부터 시작한 오래된 기술이다. 이걸 자력 개발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인공위성을 쏘려면 누리호와 같은 운송수단, 즉 발사체 기술이 필요하다. 이 기술을 보유해야 우리나라 땅에서 마음껏 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교과서에 정확히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들여올 수 있는 기술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도 있는 대표적 이중용도 기술이다 보니 미국과 같은 선진 외국에서 기술전수를 해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우리 스스로 개발하는 방법 밖에 없다."
러시아 엔지니어들 원포인트 레슨 덕 봐
로켓엔진을 개발해오면서 어려웠던 건 없나. "일정을 맞추는 게 가장 어려웠다. 우주발사체 개발은 어느 정도 연구개발을 통해 선행기술을 확보한 뒤 시스템 개발에 들어가야 한다. 엔진만 해도 보통 7~8년 정도를 보고 해야 한다. 누리호의 경우는 모든 걸 처음부터 한꺼번에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전에 나로호의 B플랜으로 진행한 30t 액체엔진 부품 개발 기술이 있긴 했지만, 예산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완성을 하지 못했다. 당시엔 설비조차 없어 러시아에 가서 시험을 하기도 했는데, 도중에 폭발사고 등 문제가 생기면서 더 이상 시험을 할 수 없었다."
국내에선 지식이 부족하고, 외국에선 기술전수도 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나. 기본 설계도 같은 건 공개된 게 있나. "설계도 같은 건 없었다. 굉장히 오래된 60년대 러시아 책 같은 걸 보면 개념도 정도는 나온다. 이걸 바탕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기술자들을 비공식으로 만나 힌트를 얻고 자문계약을 통해 도움을 얻는 정도였다. 설계는 우리가 직접 해야 했다."
그게 가능한가. "미국이나 우주 강대국의 박물관에 가보면 로켓엔진이 전시돼 있다. 그런 전시물의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힌트를 얻기도 했다. 나로호 때 발사체 1단 부분을 러시아에서 통째로 들여오긴 했지만, 이후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러시아 엔지니어들을 통해서도 비공식적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다."
나로호 개발 당시 기관단총을 든 러시아 요원들이 나로우주센터에 상주하면서 기술유출 감시를 엄격히 하지 않았나. "그러긴 했다. 러시아 기술자들과 회의할 때도 보안요원들이 모든 대화를 다 받아 적을 정도였다. 러시아의 1단 로켓엔진이 보관된 조립동에는 접근도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라 퇴근 후 숙소까지 쫓아다닐 수는 없었다. 저녁에 좋은 일이 있을 땐 러시아 엔지니어들을 초대해 고기 굽고 소주 한 잔 하면서 친해졌다. 그러고 나서 궁금한 걸 물어보면 가르쳐주기도 했다. 결국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내년 5월에 2차 발사 계획이 돼 있다. 이번 1차 발사에서 생긴 문제의 원인을 찾고 고치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면 5월이 아니라 조금 더 뒤로 갈 수도 있다. 2차 발사용 기체는 우리 팀에서 이미 투트랙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땐 국내 기업 AP위성이 만든 소형 성능검증 위성을 쏘아 올린다. 3차 발사에선 KAIST 인공위성연구소가 만드는 차세대 소형위성 2호를 발사하기로 돼 있다. 그 다음 4차, 5차, 6차에서는 군집위성을 쏘아올릴 계획이다."
정부나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간 우주 프로젝트가 덩어리 단위로 내려오다 보니 중간에 연구개발이 끊어지는 예가 많았다. 이렇게 되면 예산 문제로 계속 힘들어진다. 참여 기업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국가 프로젝트를 하면 연구원 차원에서 다른 기술을 개발하려고 해도 여유나 기회가 없다. 예산의 융통성이 필요하다. 연구원을 믿고 맡겨주시면 좋겠다." ■ 고정환「 1967년 2월생으로 부산 중앙고를 나와 서울대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했다. 서울대에서 석사를 하고 미국 텍사스A&M대에서 1996년 항공우주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 남아 연구원으로 일하던 고 본부장은 2000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입사해 선임·책임연구원, 발세체품질보증팀장 등을 거친 뒤 2015년부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
고흥=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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