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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백열등이 LED로 바뀐다

FERRIMAN 2008. 2. 4. 09:20
기사 입력시간 : 2008-02-04 오전 4:44:39
[Save Earth Save Us] 서울의 밤 ‘불빛 주인공’ 이 바뀐다
거리 조명 ‘효율’ 높이자
130년간 불 밝힌 백열전구 꺼지고
전기 덜 먹고 더 환한 LED로 교체
보안등으로 사용되는 100W짜리 나트륨등<左> 대신에 반사판을 부착하고 35W짜리 메탈할로이드등으로 바꾼 결과 골목길이 훨씬 밝아졌다. 또 인근 주택 창문으로 침입하던 보안등 불빛도 크게 줄었다. [서울 영등포구청 이명기 에너지팀장 제공]
무역업체를 경영하는 서기남(64·서울 이촌동)씨는 지난해 말 미국인 바이어와 인천공항에서 서울 시내로 들어오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미국인 바이어는 “한국의 고속도로나 서울 시내 모두 대낮처럼 환하다”며 “지금 서울은 축제 중이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서씨는 “바이어가 ‘자동차가 잘 안 다니는 한밤에도 길에서 동전을 주울 수 있을 만큼 환할 필요가 있느냐’고 해 너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고 있지만 전국의 가로등과 간판은 대낮처럼 밝다. 특히 자치단체들은 도심 야경을 아름답게 꾸민다며 가로등 불빛을 더 밝히고 현란한 경관 조명을 설치하는 ‘밤 밝히기’ 경쟁을 하고 있다. 전력 소비를 덜고 환경을 보호하려고 야간 조명을 줄이고 절전형 제품으로 교체하는 일본·유럽연합(EU) 같은 선진국과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거리 네온사인을 철거하고 있고, EU는 2009년까지 백열등을 콤팩트 형광등으로 바꿀 예정이다.

◇“한국은 더 밝게”=서울에는 17만 개의 가로등과 23만 개의 보안등이 있다. 서울시의 한 구청은 연말까지 주요 간선도로와 이면도로의 가로등과 보안등을 더 밝게 할 예정이다. 보안등 2000여 개를 50W짜리에서 100W짜리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도심을 밝게 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지만 그만큼 에너지 소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로등은 효율을 높여 400W짜리를 350W로 낮추지만 설치 간격이 35m에서 27~28m로 촘촘해져 전력 소비량은 별 차이가 없다.

서울 영등포구청의 이명기 에너지팀장은 “국내에서는 필요한 곳에만 빛을 정확히 보내는 반사경 제작 기술이 부족해 에너지 낭비가 많다”고 진단했다. 야간에 주위는 어둡고 도로만 밝아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지만 국내 도시에서는 가로등 불빛이 위쪽 방향까지 퍼지는 바람에 도시가 지나치게 밝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빛 공해’에 대한 부작용도 나타난다. 매미가 밤낮으로 우는 것이나 농작물이 제때 여물지 못하는 일도 밝은 조명이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도쿄·파리시의 절전”=일본 도쿄시는 간선도로 가로등 7만 개를 향후 10년 동안 에너지 절약형인 ‘세라믹 메탈할로이드(metal haloid)등’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과거 수은등에 비해 약 40%의 소비전력을 줄일 수 있어서다. 일본 편의점들도 간판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설치를 추진 중이다. 편의점들은 점포당 2008~2012년의 평균 에너지 소비량을 1990년보다 20%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업계 1위인 세븐일레븐도 지난해 가을부터 새 점포는 간판 뒤에 반사판을 붙여 조명 효율을 높이도록 하고 있다. 일본의 1만3000개 점포가 가입해 있는 ‘전일본 유기(遊技·빠찡꼬)사업협동조합연합회’도 점포의 백열등을 형광등으로 바꾸고 있다. 화장실에 불이 필요할 때만 들어오도록 센서 달기도 하고 있다. 교토시는 경관 보호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옥상 간판과 점멸식 네온사인 간판을 철거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명물인 샹젤리제 크리스마스 트리의 백열등도 지난해부터 LED로 교체됐다. 파리시와 샹젤리제 상인연합회는 대신 관광객들이 더 오랫동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설치 기간을 20일 늘렸다.

◇“조명도 효율적으로 하자”=광주광역시는 광주과학기술원~호남고속도로 광산인터체인지 사이 3㎞ 구간의 신호등과 조명을 LED로 교체했다. 화우테크놀로지나 LG이노텍 같은 국내 기업들도 절전형 가로등 개발에 힘을 쏟고 있지만 당장 시행하기가 쉽지 않다. 수명은 길지만 설치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영등포구청 이 팀장은 “어두워야 할 곳은 더 어둡게, 밝아야 할 곳은 더 밝게 해야 효율적인 조명”이라고 지적했다. 현재는 주홍빛을 내는 100W짜리 나트륨등이 보안등으로 주로 사용된다. 이를 흰빛이 나는 메탈할로이드등으로 교체하고 제대로 된 반사판을 달아 빛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면 소비전력을 3분의 1 수준인 35W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빛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조례도 마련 중이다. 필요 이상의 조명으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야간 경관을 해치는 행위를 ‘조명 공해’로 규정하는 내용이다. 지역에 따라 야외 조명의 방법이나 밝기 기준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박노수 정책연구실장은 “2~3월 임시회 때 상정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김현기(도쿄)·전진배(파리) 특파원·천창환·박신홍·이현택 사회부문 기자, 송지영(숙명여대 법학과 3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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