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세라믹,그리고 Ferrite

[퍼온글] 불의 발견

FERRIMAN 2008. 3. 9. 17:36
 [2006년은 화학의 해-역사 속의 화학] 불의 발견·연금술이 화학의 밑거름  

원자론 완성되면서 근대 화학혁명... 20세기엔 생물학과 손잡고 의학 발전시켜

▲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오스타데가 그린 `연금술사`.
이집트의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을 찾아온 로마의 안토니우스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단숨에 1만세스텔치아를 소비할 수 있는가였다. 1만세스텔치아는 약 2억7000만원에 해당하는 액수다. 안토니우스는 기꺼이 내기에 응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양쪽 귀고리에 달려있던 큼지막한 진주를 떼어 식초가 담긴 술잔에 떨구었다. 진주는 식초에 닿자마자 소리를 내며 녹았다.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 내기에서 이긴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사랑이라는 선물까지 덤으로 얻었다.

화학(化學)은 이처럼 어떠한 물질을 다른 상태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탐구한다. 영어로 ‘화학’을 뜻하는 ‘Chemistry’는 고대 그리스어의 ‘케미아(chemia)’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미아’는 ‘나는 가한다’ 혹은 ‘나는 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화학(化學)’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화학(火學)’일지 모른다. 화학에서 ‘불’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원시인들은 벼락이나 사물의 마찰에서 불을 만드는 기술을 터득했다. 인류에게 불은 사물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가장 소중한 에너지였다. 불을 통해 인간은 음식을 익혀먹고, 토기를 구웠고, 화로를 만들었다. 불의 발견은 인간의 노동을 물리적 노동에서 화학적 노동으로 변화시켰다.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은 SF영화 ‘제5원소’에서 흙, 불, 공기, 물의 4원소 외에 사랑이라는 다섯 번째 원소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세상의 만물이 흙, 불, 공기, 물의 4원소로 이뤄졌다는 믿음은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4원소론은 원래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설파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4원소에 온(溫), 냉(冷), 건(乾), 습(濕)이라는 네 가지 성질을 덧붙여 더 복잡한 조합을 만들었다. 이 이론은 서양에서 17세기 근대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만고의 진리로 통했다.

영국의 인기작가 조앤 롤링의 소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Philosopher’s Stone)에 등장하는 마법사의 돌은 중세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보물이다. 연금술사들은 마법사의 돌이 납과 같은 싸구려 금속을 금으로 바꿔주는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 연금술사들은 금속을 사람과 같은 유기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천한 사람이라도 신의 은총을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천한 금속이 신성한 돌의 세례를 받으면 고귀한 황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신성한 돌을 연금술사들은 ‘현자(賢者)의 돌’(philosopher’s stone)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현자의 돌’이 별로 미덥지 않았던 것 같다. 영국판과 달리 해리포터의 미국판은 ‘현자의 돌’을 ‘마법사의 돌’(sorcerer’s stone)로 고쳐 썼다. 이쪽이 흥행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덕분에 한글판도 ‘마법사의 돌’로 둔갑했다.

연금술은 중세시대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행해졌다. 동양의 연금술은 불로장생할 수 있는 금단의 열매를, 서양의 연금술은 금과 은을 얻는 비법을 추구했다. 연금술사들이 1000년 넘게 환상의 금을 좇은 덕분에 각종 화학물질과 실험기구가 발명됐다. 근대화학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그러나 18세기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앙 라부아지에는 이 고마운 연금술사들에게 찬물을 확 끼얹었다. 연금술사들은 나무를 태울 때 불과 물이 생기고 연기(공기)가 일어나며, 재(흙)가 남는 것이 4원소론의 증거라고 했다. 그런데 라부아지에는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 원소가 아님을 증명했다. 연금술사 세계관의 기초였던 4원소론이 무너진 것이다.

▲ 멘델레예프와 주기율표
이후 세상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구성돼 있다는 원자론이 힘을 얻었다. 17세기 영국의 화학자 보일은 “어떤 물질을 다시 분해할 수 있다면 물질의 근본인 원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8세기 돌턴에 이르러 원자설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원자가 결합해 분자를 이룬다는 이론도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근대 화학혁명이라고 부른다.

안타깝게도 혁명은 시간이 흐른 뒤 곧잘 뒤집히곤 한다. 20세기에 등장한 원자력 기술은 원자를 쪼개거나 하나의 원소를 다른 원소로 바꾸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로 구성돼 있다. 주기율표의 원자번호는 각 원소에 포함된 양성자(proton)의 수에 따라 정해진다. 납의 원자번호는 82이고 금의 원자번호는 79다. 납 원자에서 3개의 양성자를 빼내면 금이 되는 셈이다.

오늘날의 입자 가속기는 일상적으로 원소 변환을 일으킨다. 에너지를 가한 입자를 가속해 특정 물질의 원자에 부딪치면 양성자와 중성자가 튀어 나가면서 새로운 원소로 바뀐다. 이보다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핵 원자로를 이용해 원소 변환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의 화학자 글렌 시보그는 1980년 이런 방법으로 극미량의 납을 금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금을 만드는 좀더 가능성 있는 대안은 납 대신 수은을 이용하는 것이다. 수은의 원자번호는 80으로 금(원자번호 79)보다 양성자가 한 개 더 많다. 양성자 한 개만 빼내면 금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손해가 막심하다.

연금술사들이 오랜 세월 찾아 헤맨 현자의 돌은 과연 존재할까? 흥미롭게도 시보그는 현자의 돌을 믿었던 것 같다. 이론적으로 양성자의 수가 126인 초(超)중금속이 존재한다면, 이 금속의 플로오르화물은 수은을 금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큰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 이런 금속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현대판 현자의 돌이 되는 셈이다. 시보그의 동료였던 앨버트 기오르소는 원자번호 114 이상의 원소를 만드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시보그와 내기를 걸었다. 그는 1999년 일부 과학자들이 114번 원소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병상에 누워있던 시보그에게 달려가 “내가 졌다”고 말했으나 시보그는 이미 숨진 뒤였다.

오늘날과 같은 주기율표를 완성시킨 사람은 19세기 러시아의 과학자 멘델레예프다. 그는 여러 원소를 원자량에 따라 배열해 보니 일정한 주기로 원소간에 비슷한 화학적 성질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원소들을 위 아래의 한 줄로 배치한 주기율표를 만들었다. 그가 1869년 발표한 주기율표는 처음에는 진실성을 의심 받았으나 그가 주기율표에 근거해 예언한 원소들이 차츰 발견되면서 인정을 받게 됐다.

노벨상을 만든 사람으로 더 유명한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화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1866년 통에서 흘러나온 니트로글리세린이 규조토에 흡수되면서 완전히 건조되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기존에 발파용으로 사용한 니트로글리세린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폭발하는 위험한 물질이었다. 그러나 니트로글리세린을 흡수한 규조토는 평상시에는 집어던져도 될 만큼 안전하지만 뇌관을 설치해 작동하면 엄청난 폭발력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 다이너마이트가 대량 살상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지켜본 노벨은 죄책감을 느끼고 사재를 털어 노벨상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화학의 부작용 때문에 노벨상이 생겨난 셈이다.

유기화학과 무기화학은 19세기 말에 완전한 틀을 이루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고분자 화학이라는 분야가 유행했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합성수지,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이 고분자 화합물이다. 20세기 화학이 생물학과 손을 잡으면서 의학 발전의 전기가 마련됐다. 1928년에 영국의 플레밍이 발견한 최초의 항생물질인 페니실린은 사람이 아닌 곰팡이 등 미생물이 만든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계기가 됐다. 페니실린의 등장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

(출처: 주간조선 2006.03.06. 1894호 /김민구 주간조선 기자 roadrunn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