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서울대 자연대학장·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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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AIST에서 시작된 교수 재임용과 정년보장 심사 강화 움직임은 이제 전국 대학으로 확산되는 느낌이다. 보도에 따르면 연세대와 성균관대 심사에서 탈락자가 있었고, 서울대에서도 대학본부의 정년보장 심사에서 몇 명의 대상자가 보류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사실 대학의 경쟁력은 본질적으로 교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모든 세계적인 대학에서는 교수진의 수준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고, 그 방법 중 하나가 교수들의 승진과 정년보장 심사의 강화다. 그동안 한국 대학에서는 심사가 대부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그것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걸림돌의 하나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최근의 심사 강화 움직임은 우리 대학들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인사제도가 그렇듯 이러한 조직의 논리와 인사 대상자 개인의 이해는 상충되게 마련이다. 특히 재임용이나 정년보장 심사에서의 탈락과 같이 직장에서의 퇴출을 의미하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충격이 심각할 것이다. 당사자의 충격은 차치하고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이들은 대부분 대학 졸업 후 최소 10년 이상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한 사람으로서, 다른 자리에서 활동할 기회를 잃는다면 사회에 엄청난 손실이다. 그러기에 대학과 대학, 대학과 (기업)연구소 간의 자리 이동이 쉽도록 만들어주는 일이 급선무다.
물론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사회·문화적 풍토가 바뀌어야 되겠지만, 지금은 제도나 규정 또한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공계 연구자의 경우 본인이 사용하던 연구기자재를 다른 기관으로 옮기기가 매우 어렵다든가, 다른 직장에서의 경력을 100% 인정해주지 않는 등의 제도적 장벽은 마땅히 없애야 하고, 이를 제거해주는 것이 연구자의 교류를 촉진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둘째로 대학에서는 절대적으로 평가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외부에서는 대학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교수 재임용 심사의 경우 과거에 정권이나 대학 실세들이 눈 밖에 난 교수를 탈락시킨 일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탈락 교수가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하거나 사법부에 소송을 내면 이들 기관은 학교보다 교수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에 관여한 교수를 서울대학교에서 재임용 탈락시켰을 때에도,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복직을 명령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부에서 대학의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잦으면 대학 교수 인사제도의 개혁은 정착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대학들도 학문 외적인 이유로 승진을 거부하거나 재임용·정년보장 심사의 탈락률을 높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근 언론에서 교수의 철밥통 깨기가 대학 개혁의 척도인 양 보도하자,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인사제도를 강화하고 이를 홍보에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해 그 부작용이 우려된다. 어떤 경우에도 교수의 업적 심사는 명백한 원칙과 학문적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대학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을 것이고 그래야 인사제도 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교수들에 대한 평가기준을 높이려면 연구 여건과 지원의 수준도 같이 높여주어야 한다. 3년 전 서울대학교의 이공계 대학들이 외국 석학들의 평가를 받았을 때, 이들 평가단도 형식적인 교수 인사제도를 개선해야만 서울대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1년 후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모임에서 자연대가 교수의 승진 및 정년보장 요건을 선진국 대학 수준으로 강화했다고 보고하자, 평가단의 첫마디는 “신임 교수들에 대한 지원을 선진 대학 수준으로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국제경영개발원(IMD)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다.
그러나 소득은 아직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데, 이처럼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우리 국민이 게으르거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여건과 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성실한 교수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앞으로 교수들에게 선진국 수준의 업적을 요구한다면 그들의 연구 여건 또한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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