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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대덕 연구원들의 자가진단

FERRIMAN 2008. 5. 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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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 연구원들의 자가진단

같은 주제로 예산 따먹기 경쟁…연구기관`컨트롤타워`있어야

◆이젠 C&D시대로 (下)◆

이명박 정부가 실용주의와 성과를 강조하면서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 개편에 나서는 데 대해 가장 관심이 큰 곳은 역시 대덕연구단지다.

대덕은 30여 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10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기업연구소가 몰려 있는 한국 최대 과학기술 연구 현장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구원을 모두 포함하면 고급 인력 2만여 명이 분야별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덕 연구원들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청와대와 정부가 정부 출연 연구기관 중 절반을 지식경제부로 이양한 데 이어 △출연기관장 일괄 사표 제출 △정부 출연기관과 대학 통합 △연구기관 간 통폐합을 추진하는 등 외부에서 개혁을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연구원 자아비판 =

대덕단지 내 한 출연연구기관 임원은 "프로젝트베이스시스템(PBS)에 따라 연구예산을 확보하려면 원래 연구 주제와 동떨어졌더라도 예산 규모가 큰 프로젝트에 응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특정 연구 분야 인력을 추가로 뽑지만 몇 년이 지나면 해당 인력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털어놨다.

당초 해당 연구기관이 계속 연구할 주제가 아니었던 만큼 추가로 뽑은 인력이 고스란히 연구기관에 부담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 인력 역시 국가나 기업이 필요한 연구 분야보다는 본인 관심 분야에 대해서만 연구를 고집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대덕 박사급 연구원 2000여 명 모임인 연구발전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성재 한국표준연구원 박사는 "필요 예산 중 30%만 할당받고 70%는 프로젝트 수주 경쟁을 통해 따내야 하는 현 예산시스템 아래에서 국가 R&D를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왜곡된 연구 환경을 만드는 PBS와 논문 편수만을 중시하는 양적인 평가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연구단지 미래는 없다"고 설명했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대동소이한 연구 주제를 놓고 대학과 기업연구소, 출연 연구기관이 서로 경쟁을 벌이는 것도 문제점이다.

다른 출연기관에 소속된 책임연구원은 "거의 비슷한 연구 주제를 두고 대학과 기업, 출연 연구원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 회의가 느껴진다"며 "출연기관 연구원들이 국가만 담당할 수 있는 기초연구와 거대 과학 프로젝트, 민간이 하기 어려운 연구 주제에 투입될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예산ㆍ평가시스템 없는 개혁은 실패 =

결국 연구기관 간 정보를 공유하게 만들고 연구 주제를 교통정리해 줄 투명하고 권위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이미 참여정부에서 기초기술ㆍ공공기술ㆍ산업기술연구회가 이런 목적으로 운영됐지만 연구기관 간 벽을 허무는 기능에 있어서는 '실패작'이었다는 평가다.

김상선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은 "과학행정 분야 일부 전문가들은 연구원 간 벽을 없애기 위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며 "개별 연구소가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는 가운데 중요한 국가 R&D 과제가 생기면 흩어져 있는 인력과 예산을 이곳에 집중 투입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이전 정부에서도 연구 현장과 조직에 대한 물리적인 통폐합은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19개로 늘어난 출연연구소를 9개로 통폐합했지만 부작용이 나타나자 노태우 정권에서는 연구소들을 분리했다. 문민정부는 연구원들이 각 부처와 산업체를 뛰어다니면서 예산을 따내는 체제로 연구현장 분위기를 바꿨다.

모두 물리적인 통폐합에 방점이 찍힌 개혁이었지만 정부 출연 연구기관 성과 향상에 있어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대덕 = 김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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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3 07:33: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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