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은 잘 몰라도 한국 대기업 총수를 아는 사람은 많지요."
지난주 취재차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만난 한국인 유학생 가이드가 해준 말이다. 실제로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도로에는 한국 차들이 넘쳐났고 국내 기업 광고판도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다. 40여 개에 달하는 수입 브랜드 중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현대차는 물론 올해 들어 수입 브랜드 1위 자리를 꿰찬 제너럴모터스(GM) 시보레도 따지고 보면 국산차나 마찬가지다. GM대우가 부평공장에서 생산해 시보레 브랜드를 붙여 내보낸 차들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스카이라인은 국내 기업 광고판 홍수다.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푸틴 총리 집무실이 있는 크렘린궁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다리 이름은 아예 LG 다리로 불린다. LG가 14년째 통째로 다리를 임차해 광고판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리 위에서 고개를 약간만 돌리면 레닌국립도서관 위에 자리잡은 삼성(SAMSUNG) 광고가 시야에 들어온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도 마찬가지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네바강변을 끼고 목 좋은 자리에 위치한 빌딩 위에는 어김없이 현대차, 삼성전자 광고판이 설치돼 현지인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시선을 확 잡아끈다.
지난 1990년 한ㆍ소 수교 정상화로 수출을 시작한 지 20년도 채 안 됐지만 국내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덩달아 한국 이미지도 좋아졌다. 유학생 가이드는 "국내 기업들이 좋은 제품을 내놓으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교민이나 유학생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며 "정부가 못한 일을 기업들이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사회주의 종주국인 러시아까지 사로잡을 만큼 국내 대기업들은 해외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성장했다. 대기업들이 투명한 지배구조와 투명경영을 통해 국내에서도 친대기업 정서를 확산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간절해지는 이유다.
[산업부 = 박봉권 기자 pea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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