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본래 커피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30대 나이에는 하루 20잔 정도 마셨던 양에 비해 점차 질적으로도 심취했었습니다. 80년대초 외국산 커피메이커를 구입해서 소위 드리프(Drip)식 내려먹는 커피를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이폰에 알콜램프로 끓이는 좀 거추장스런 방식으로 즐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는 원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신촌시장과 남대문시장의 수입품코너에 가야 구할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향좋은 원두를 구해서 수동으로 갈아서 바로 끓여 먹는 맛이라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었지요. 비오는 일요일 아파트거실에서 콜럼비아산 모카를 사이폰에 알콜램프로 끓이면 온 동네가 커피향에 휩싸입니다. 운치가 절로 배어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못참고 달려 온 동네 분들과 한잔씩 했더랬습니다. 요즘은 어느덧 자판기 커피나 인스턴트에 익숙해서 그런 맛을 즐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끔 우리연구원 지부장으로 계시는 커피매니아께서 끓여주는 고급 커피를 맛보기도 합니다만.....
<사이폰추출기와 수동식커피분쇄기>
그러는 중에도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음료보다 어째서 커피를 더더욱 즐겨 마시는가. 일설에 의하면 커피열매를 먹고 흥분하는 양들이 목동들에게 목격되면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1년에 4천억 잔이나 소비된다고 하니 대단한 기호식품인 셈입니다. 그런데 커피하면 떠오르는 것이 카페인이지요. 카페인은 아데노신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는 각성효과를 느낀답니다. 그래서 자주 마시게 되는가 봅니다.
요즘 에스프레소라는 것도 많이 드시지요. 공기를 압축하여 뽑아낸 이탈리아식 커피인 에스프레소는 독특한 향과 진한 맛으로 제법 즐기는 분들이 늘아나고 있습니니다. 스페인의 나바라 대학에서는 이 에스프레소가 왜 맛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하네요. 연구진은 커피 표면에 떠 있는 부드러운 갈색 거품인 크레마 때문인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합니다. 계면활성체 막으로 둘러싸인 이 거품 안에는 이산화탄소와 수증기, 유화오일과 원두 커피 조직이 담겨있는데, 이 거품이 오랫동안 꺼지지 않으면서 위 성분들과 뜨거운 열을 오래 유지시킴으로 인해 풍부하고 진한 맛을 낸다는 것이지요.
그럼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는 무엇일까? 답은 사향(麝香)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든 '코피루왁(Kopi luwak)'이라는 커피입니다. 아무리 사람 몸에 좋다고 해도 고양이의 배설물로 커피를 만든다고 하니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지요? 고양이의 배설물 자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설물 속에 포함된 커피 열매를 이용해서 커피를 만드는 것이니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서양에서 '시빗(Civet palm)'이라고 불리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을 커피 재료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불편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커피열매의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이 작업이 귀찮고 매우 번거로웠답니다. 그런데 이 사향고양이가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었답니다. 커피열매를 먹고 배설함으로써 한번에 해결해 버린 것이지요. 완전히 자란 원두만을 먹는 사향고양이는 열매를 삼키면 겉껍질과 내용물은 소화하는 반면 딱딱한 씨는 그냥 배설하는데, 이 배설된 커피 열매를 이용해 커피를 만들어 보았더니 그 맛과 향이 기가 막혔더랍니다. 커피 전문가들은 코피루왁의 독특한 향과 맛의 원인에 대해 체내의 효소분해 과정에서 많은 아미노산이 분해되면서 쓴 맛이 첨가되어 커피에 특유의 맛을 더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커피를 맛있게 먹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원두커피는 공기 중에 너무 오래 방치 하지 말고, 필요한 양 만큼 갈고, 필터는 여과기에 꼭 접어서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1잔에 1.5 작은 술 정도의 가루를 넣는 것이 좋습니다.
인스턴트 커피는 잔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부어 따뜻하게 만들고, 물을 버린 다음 93~95도 정도의 물로 타는 것이 가장 좋으며, 먼저 설탕을 넣고 온도가 85도 이하로 내려갈 때 크림을 넣는 것이 좋습니다. 인스턴트커피의 맛을 내는 핵심은 물의 온도입니다.
바쁘게 돌아가고, 뭔가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따끈한 원두커피 한잔을 앞에두고, 천천히 음미하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비록 인스턴트 커피일지라도 말입니다.
커피한잔에 시름을 털고, 커피한잔에 여유를 담고, 커피한잔에 앞날을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