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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대 경영대생들의 희망직장

FERRIMAN 2008. 9. 1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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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서울대 경영대생들의 희망직장

2학기 개강과 함께 대학 졸업반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이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직장에 대해 경영대 학생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우리 젊은이들과 기업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 경영대학의 교육 목표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런 목표와는 사뭇 동떨어진 직장을 원하는 것 같다.

서울대 경영대학 학생들의 희망 직장은 크게 세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직업은 사법고시 행정고시 공인회계사와 같은 '라이선스형' 직업이다. 시험 준비로 대학생활의 재미를 희생해야 하지만 합격이 주는 만족감과 혜택이 희생 대가로 충분하다고 학생들은 믿는 것 같다.

두 번째 유형은 외국계 컨설팅 및 투자금융회사로 대표되는 '금전형' 직업이다. 하루 16시간이라도 일할 각오를 해야 하지만 입사 후 몇 년 안에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마지막으로 공사 같은 '안정형' 직업이다. 이들 공적기관이나 공기업에는 '라이선스형' 직업의 명예나 '금전형' 직업의 화려함은 없지만 대신 평생직장을 보장해준다. 또한 업무 스트레스가 적다는 점도 보너스다.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 학부 정원은 학년당 130명이다. 경영대 교수인 내 뜻대로 130명 졸업생의 직업을 배정해보라 하면 다음과 같이 하고 싶다.

100명은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이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대기업, 15명 정도는 창업 또는 벤처기업, 나머지 15명은 법조계 정부 회계법인 대학교와 같이 기업활동의 지원 기능을 담당하는 직장으로 보낼 것 같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국부 창출에 열쇠를 쥐고 있는 글로벌 대기업과 벤처기업으로 가장 유능한 인재가 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다. 정확한 조사 자료는 아니지만 대기업과 벤처기업에 취업하는 졸업생은 고작 20~30% 정도일 뿐, 대다수는 '라이선스형' '금전형' '안정형' 직장으로 진출한다. 더구나 대기업에 취업한 상당수 졸업생들마저 대기업을 꼭 가고 싶어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학생들이 나의 소신과는 거리가 먼 직장을 원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분배 및 가치 시스템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대형 로펌에 취직하면 억대 연봉을 받지만 경영학 공부 열심히 해서 대기업에 취직하면 3000만원도 채 받지 못한다.

서울대 출신 법조인 중 경영대학 출신이 10.8%로 법과대학 다음으로 많았다는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분배관을 정확히 반영한 단면일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를 위해 기업으로 진출해 국부창출에 매진하라고 아무리 독려해 봐야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현재는 자격시험에 합격할 때까지의 경쟁이 합격 후 경쟁보다 휠씬 치열하다. 법조계 공급 인력을 대폭 확대해 라이선스 취득을 용이하게 하고, 대신 합격 후 경쟁을 보다 치열하게 바꿔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의 정원은 푸는 것이 합당하다.

대기업의 기업문화 역시 바뀌어야 한다. 옥석을 조기에 가려낼 수 있는 평가시스템과 인재에 대한 획기적인 보상시스템을 빨리 갖추라는 것이다. 입사 몇 년 안에 억대 연봉과 임원 승진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대기업이 있다면 인재들의 희망 직업 순위가 바뀔지 모른다. 반면 기업문화를 가르친다고 잡무나 처리하도록 방치하거나 후배 길들이기로 스트레스나 주는 대기업은 학생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할 것이다.

'탁월한 경영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존경받는 사회라면 나는 지금보다 휠씬 신바람 나는 강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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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0 17:59:2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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