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4일 오후 3시 강원도 대관령 3㎞ 상공. 산줄기를 타고 남쪽 방향으로 날던 6인승 항공기의 양쪽 날개에서 희뿌연 연기가 날렸다. 날개에 부착된 막대 모양의 연소탄에서 나온 연기는 북동풍을 타고 대관령을 넘어오는 엷은 구름과 뒤섞였다. 30분 뒤 대관령에서 10여㎞ 떨어진 용평스키장에는 거센 눈발이 몰아쳤다.
국립기상연구소 장기호 박사팀은 올 3월 대관령에서 요오드화은 알갱이를 수증기에 뿌려주는 인공강수 실험을 세 차례 진행했다. 항공기에서 내뿜은 연기 속에는 요드화은(AgI)이 들어 있었다. 요오드화은은 ‘씨앗’이 돼 수증기는 물방울로 커지고 비나 눈이 돼 내리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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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실험에서 요오드화은을 뿌린 용평스키장 위 하늘은 항공레이더에 노란 표시가 분명해졌다. 증설이 이뤄졌다는 신호다. 실제로도 용평스키장에는 10㎝의 눈이 쌓여 요오드화은을 뿌리지 않은 곳에 비해 최고 2㎝의 눈이 더 내렸다. 장 박사팀은 국내 인공강수 실험 가운데 처음 성공한 이날의 실험 결과를 최근 기상학회 학술대회 때 공식 보고했다.
◆한국은 걸음마 단계=세계적으로 인공강수 실험을 하는 나라는 40여 개국 정도다. 미국은 50년 전부터, 러시아는 30년 전부터 기술을 개발해 왔다. 러시아는 전승기념일인 5월 9일마다 모스크바 광장 위에 낀 구름을 미리 없애는 데 인공강수를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기상 조절을 위해 전용항공기 34대, 대공포 7000여 문, 로켓발사대 4600여 문을 보유하고 있다. 3만5000여 명의 연구·관리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8월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대기오염을 개선하기 위해 인공 강수를 실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 기상청도 1995년 인공강수 연구를 시작했으나 98년 집중호우로 큰 피해가 발생하자 연구가 중단됐고, 2001년 봄 가뭄 이후에 재개됐다. 장 박사팀은 이번 실험에서 6000만원을 썼으나 연구비 절반은 항공기를 빌리는 데 썼다. 그나마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3㎞에 불과해 겨울에만 실험이 가능했다. 요오드화은은 상층 온도가 영하인 곳에 뿌려야 하는데, 여름에는 5㎞ 이상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눈을 내리게 할 수는 있지만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는 셈이다.
장 박사는 “내년에는 기상청 예산 1억원으로 강원도 지역에서 실험을 계속할 계획이고, 2013년부터는 가뭄 취약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요오드화은으로 인한 수질오염 문제, 기상 조작으로 인한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 박사는 “한반도는 좁기 때문에 지역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고, 요오드화은을 살포하는 양도 대기 중의 요오드화은의 농도를 0.05% 증가시킨 데 불과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풍을 소멸시키거나 진로를 바꾸는 것처럼 대규모 기상 조작에 대해서는 세계기상기구(WMO)도 권장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온난화와 가뭄 대비해야=인공강수는 가뭄 피해를 줄이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한반도 남부는 지금도 가뭄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경남·전남 265개 마을은 9월부터 제한급수와 운반급수를 하고 있다. 기상청 윤원태 기후예측과장은 “전체 강수량의 30%를 책임지는 태풍이 올해는 하나밖에 오지 않았다”며 “올 하반기 경남·전남 등지에 내린 비는 평년의 25~45%에 그쳤다”고 말했다.
기상연구소 권원태 기후연구팀장은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강수량도 늘지만 증발량도 증가하기 때문에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변희룡 교수는 “우리나라는 124년 주기로 대가뭄이 나타나곤 했는데, 다음 대가뭄은 2012년에 시작해 2025년에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가뭄 지역에 인공강우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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