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공의 제안과 지도 교수의 압력(?)으로 실험실 내 실험 보고서 및 주간 보고서 제작은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갔다. 이젠 전이공도 학교와 직장을 오가는 강행군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갔고, 표현 기법 개발에 재미를 붙여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중이었다. 대학 실험실과 연구소 사이의 공동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전이공은 매주 학교와 직장을 오가며 동일한 내용의 회의를 했다. 이 기회를 통해 전이공은 자신의 표현 기법을 학교와 직장에서 동시에 시험해가며 적절한 기법을 찾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번에 회사에서 회의할 때 이런 표현이 반응이 좋았다면 다음에 학교에서 랩 미팅 때 다시 시도해보고 하는 식이었다.
월요일 아침. 회사에 출근한 전이공의 팀 동료들은 주간 업무 회의를 시작했다. 팀원 여섯명과 팀장만 참여하는 약식 회의로 격식을 차리지 않고 지난 한 주간 자신이 했던 업무의 진행 상황과 이번주 진행상황에 대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였다. 내용은 회사내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내용을 A4 1-2장으로 정리해서 사내정보관리시스템에 등록하기는 했지만, 따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오늘 그의 동료인 정감성 선임연구원이 자료를 정식으로 PPT 파일로 만들어 빔 프로젝트를 이용해 발표했다. 그가 오늘 얘기할 내용이 그간 자신이 했던 연구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마무리 발표를 하려니 프로젝트 초기에 잡았던 연구 목적과 그동안의 진행상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들이 있어서 아예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만들었던 것이다.
“얼굴 미백, 참 쉽죠~잉?”
“자, 제가 그동안 연구한 것은 미백 화장품에 들어갈 새로운 미백제의 활성과 작용 기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미백제는 주로 알부틴이나 코직산, 비타민 C, 닥나무 추출물 등이었습니다. 이들 물질들은 미백 효과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안정성이 떨어져 이들 제품의 유효기간이 제한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자사에서는 미백 효과 뿐 아니라 안정성도 뛰어난 미백제를 찾는 연구를 시도했는데, 저는 대규모 초기 파일롯 실험에서 효능이 있다고 인정되었던 제품인 NM-23번에 대해 지난 6개월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자료 보시죠.”
사람들은 그가 보여준 화면에 주목했다. 그런데 화면에는 화학물질의 결과 테스트가 아니라, 미녀 배우 한백설 사진이 떠 있었다.
“보십시오, 이 배우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사람일 것입니다. 한백설은 특히 하얗고 투명한 피부를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이 얼굴에 자외선을 쪼여 보이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며 포인터의 버튼을 누르던 순간, 화면 윗부분에 갑자기 심굴궂은 표정의 태양이 ‘나 태양’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타나더니, 말풍선을 통해 ‘다 태워버리겠다’라고 말하며 강력한 자외선 화살표를 방출했다. 그랬더니 화면 한 쪽에 있던 한백설 사진에서 피부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주 새까맣게 변해버린 한백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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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램프의 요정 지니가 램프의 주인이 원하는대로 소원을 들어주는 것처럼, 상대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프리젠테이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그림:Rei) | “제 아무리 날고기는 한백설이라도 쏟아지는 자외선 폭탄 앞에서는 버텨낼 수 없겠지요. 여기에 우리의 미백 유효 성분들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화면에 한백설의 얼굴이 여럿 비춰졌다. 그리고 각각 미백 성분의 꼬리표들이 지우개가 되어 열심히 한백설의 얼굴을 지우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이 지나고 나자, 좀전보다는 밝아진 피부를 가졌지만, 그 중에서도 MN-23을 쓴 얼굴은 하얗게 못해 빛이 날 정도였다. 한백설의 얼굴에서 과장된 눈물선이 지워졌고, 다시 말풍선이 나타났다.
“얼굴 미백, 참 쉽죠~잉?”
순간, 발표를 지켜보고 있던 팀원들은 폭소를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요즘 말로 ‘빵 터졌다’라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웃고 난 뒤 팀장이 말했다.
“이야, 정 선임, 대단한 걸?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웃다가 배꼽 빠지는 줄 알았네.”
이어 화기애애해진 사람들은 다음 발표를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전이공은 동료의 유머 센스에 반했고, 다음번에 자신도 써먹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유머 센스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써먹어라
“정 선임, 왜 얼굴이 그렇게 어두워? 지난 번 발표했다가 빵 터진 거, 아침에 연구소 간부 회의에서 발표했다며? 칭찬 못 받았어?”
정감성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칭찬은커녕 잔소리만 잔뜩 들었다네.”
“아니, 왜?”
“오늘 발표하니까, 젊은 팀장님 몇몇은 웃겨서 정신이 없었는데, 소장님 이하 최고 책임연구원들은 못마땅해 하더라구. 발표를 무슨 장난으로 여기냐면서, 진지하게 발표하래. 그리고 내가 과장하려고 MN-23을 사용한 한백설 얼굴을 백옥같이 표현한 것도 뭐라 하면서, 비쥬얼로 보여주는 건 좋은데, MN-23의 효능은 기존 다른 미백제 대비 15% 정도 개선된 건데 비해 그렇게 번쩍번쩍 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거야. 사실에 입각해서 말해야지. 그리고 보여주는 것에만 치중해서 데이터가 안 보인다고, 연구원 발표로는 바람직하지 않대.”
“그랬단 말야... 에이, 잊어버려. 소장님이 원래 센스가 바닥이잖아. 자, 우리 이제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구.”
그날의 사건을 통해 전이공은 다시 유머 센스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써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효과적인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요소들
1) 효과적인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외적 요소
보통 효과적인 프리젠테이션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청각 자료들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 이를 위해서는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ppt 파일이나 기타 시각 자료들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 발표용 파일에서 사용하는 문장은 문장형보다는 명사형으로, 데이터는 숫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보다 도표나 그래프로 보여주는 것이 좋다.
- 발표자의 외모 및 어투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깔끔한 복장과 너무 빠르거나 늦지 않고 분명한 발음으로 말하는 것도 신뢰감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 발표자의 태도 역시 전달 능력을 좌우한다. 편안한 표정으로, 효과적인 제스쳐를 사용하고, 유머를 곁들이는 것도 전달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가능하면 정해진 발표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도 도움이 된다.
2) 효과적인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내적 요소
- 프리젠테이션은 상대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따라서 발표자는 상대가 요구하는 바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필요하다. 정 선임이 소장님에게 ‘깨진’ 이유는 상사가 바라는 것이 ‘재미있는 발표’가 아니라 ‘정확한 현황 보고’였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청중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청중의 수, 지위, 사전 지식 유무 등 다양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 철저한 사전 지식을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 발표를 하게 되면 내용에 대해 궁금한 사항이나 추가적으로 알고 싶은 사항들에 대해서 질문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즉, 예상 가능한 질문을 미리 파악하여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 리허설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대개 발표 자료만을 만들어 놓고 리허설은 따로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의외로 시간이 많이 들어 뒷 부분은 쫓기듯 넘어가거나, 반대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어색해지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자신의 발표내용을 사전에 리허설을 통해 시간을 예측하여 조절하고, 자료에 틀린 부분이나 보완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