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국서 시간강사로 살기 위해선…'부당한 대우' 받아도 말 못해
올해로 시간강사 생활 7년차에 접어든 김철웅씨(가명·37)는 이번 학기에 3개 학교에 강의를 나간다. 국립대와 사립대, 전문대이다. 박사 과정을 수료했지만 아직 학위는 없다. 국립대에서는 4년째 강의를 하고 있고, 전문대에서는 2001년 이후 2년을 제외하곤 줄곧 강의하고 있다. 그는 '2년 이상 연속적으로 강의하는 박사학위 미소지자'다.
그러나 김씨는 그 어느 대학에서도 해고통보를 받지 않았다. 그가 출강하는 대학들이 시간강사들에게 특별히 관대한 곳이어서가 아니다. 비정규직법의 빈틈을 악용하는 방법으로 해고통보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학기에는 20시간을 강의했지만 이번 학기에는 14시간만 강의를 하게 됐다. 대학은 비정규직법 사용기간 제한 조항을 피해 가기 위해 강사들의 강의 시간을 줄였다. 대학은 강의 시간을 줄인다고 강사들에게 공고했고, 이유도 밝혔다. 그러나 강의 시간 축소는 그가 원해서 된 일이 아니다.
비인기 과목, 6시간 강의도 어려워
지금 출강하고 있는 국립대에서는 시간당 4만2000원을 받는다. 지난 7년 사이 시간당 보수가 오르긴 올랐다. 그런데 상승폭은 몇 천 원 수준이다. 물가상승률과 비교하면 무의미한 수치다. 국립대의 경우 시간당 보수는 4만4000원, 사립대는 대부분 3만3000원에서 3만5000원 수준이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시간당 최고 보수는 5만5000원이다.
그는 지금까지 매학기 평균 20시간을 강의했다. 과목 수로 따지면 6과목이 넘는다. 전임교수들은 학기당 2, 3과목을 가르친다. 전임교수들이 가르칠 과목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같은 과목이라도 시간강사들이 가르치면 훨씬 비용이 적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이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주차장 만들어서 돈이나 벌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20시간을 강의하면 한 해 2000만원이 넘는다. 또래 직장인들에 비하면 결코 많은 수입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시간강사들의 평균은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시간강사들은 전국적으로 평균 4.2시간을 강의한다. 연간 수입으로 따지면 487만5000원이다. 월평균 40만원이다.
시간이 줄어든 지금도 매주 14시간 강의가 가능한 건 그가 영문학 석사 학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문학이나 국문학처럼 교양강의 수요가 많은 과목을 가르치는 강사는 이 정도 물량이 가능하다. 비인기 과목이거나 전임교수 비중이 높은 전공인 경우는 6시간 강의하기도 어렵다. 임금을 기준으로 한다면 극빈층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강의가 많아지면 수업의 질은 떨어진다. 강사들이 게을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석사 학위를 갖고 있는 안성애씨(가명·57)는 1986년부터 강사로 있었다. 한때는 그도 20시간 넘게 강의를 했다. 3개 학교에 출강하고, 방학 때 계절학기까지 꼬박꼬박 챙겨가면서 강의했다. 어느 해 수업에서는 매우 열성적으로 준비했다. 지정된 교재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온갖 자료를 뒤지면서 다채롭게 수업을 준비했다. 시험문제도 색다른 방식으로 냈다. 학기가 끝날 즈음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전임교수들은 자신의 세부 전공 분야에 따라 해당 강의만 한다. 강사들은 다르다. 학기마다 수업 내용이 바뀐다. 전공수업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대개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강의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강의의 깊이를 확보할 수도 없다.
강의 배정을 대학이 일방적으로 하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생긴다. 시간강사들의 강의는 학과에서 시간표를 짜면 학과 조교들이 해당 강사들에게 전화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전화가 오면 다음 학기 강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없으면 그만이다. 이유를 밝히는 경우도 없고, 전화를 받지 못한다고 이유를 묻는 사람도 없다. 1학기가 끝날 때쯤 안씨는 유학 중인 친구와 통화 중이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지만 중간에 전화를 끊지 않았다. 휴대전화에 찍힌 번호만으로는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강하던 대학이었다. 조교가 시간표를 확정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있던 중이었다.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건 학과 조교는 "전화를 받지 않아 강의를 목요일에 잡아놨다"고 말했다. 목요일에 안씨는 다른 대학 강의가 예정돼 있었다. 안씨가 "요일을 바꿀 수 없겠느냐"고 하자 학과에서는 강의를 아예 없앴다.
"강사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
안씨는 1990년대 초반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당시 출강하고 있던 한 사립대에서 강사들을 입학시험 감독관으로 동원했다. 하루 종일 시험 감독을 하고 왔더니 이튿날 채점하는 데도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보수를 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개인 사정으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안씨는 다음 학기 강의를 배정받지 못했다. 그는 "해고는 상시적인 일이다. 그나마 이번엔 '비정규직법 때문'이라는 핑계라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 강의평가가 도입된 뒤로는 강사 생활이 더 팍팍해졌다. 현재 안씨가 출강하고 있는 대학은 전임교수와 시간강사 모두를 상대로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한 뒤 하위 10% 해당자에게는 강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안씨는 처음부터 불리한 게임이라고 말한다. 전공을 가르치는 전임교수들의 강의에 대한 집중력과 강사들이 가르치는 과목에 대한 집중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강생 수에서도 불리하다. 전임교수가 20~30명 규모의 수업을 할 때 강사들은 90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강의든 채점이든 제대로 될 리 없다. 게다가 수업에 열의가 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강사가 엄격한 통제를 하려고 하면 평가가 좋게 나오기 어렵다.
지금과 같은 시간강사 제도는 학문적 역량의 위축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강의 준비와 생계에 대한 우려가 연구에 몰두해야 할 힘을 빼앗기 때문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강사인 경우 학위 취득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수 년이 지나도록 학위 논문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논문을 쓰기 위해 강의 시간을 줄이는 건 기회비용이 크다. 강의 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넘쳐나기 때문에 한 번 줄어든 강의는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간강사들의 사회적·경제적 조건은 저마다 다르다. 시간강사들이 모두 극빈층이라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성별과 전공, 결혼과 맞벌이 유무, 집안의 경제력 등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요인은 여럿이다. 그러나 이런 구조가 유지되는 건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과 우리 사회의 학문적 역량만을 훼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안성애씨는 "문제의 근본은 불안정한 신분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면서 "강사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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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시간강사 생활 7년차에 접어든 김철웅씨(가명·37)는 이번 학기에 3개 학교에 강의를 나간다. 국립대와 사립대, 전문대이다. 박사 과정을 수료했지만 아직 학위는 없다. 국립대에서는 4년째 강의를 하고 있고, 전문대에서는 2001년 이후 2년을 제외하곤 줄곧 강의하고 있다. 그는 '2년 이상 연속적으로 강의하는 박사학위 미소지자'다.
↑ 한국에서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은 부당한 대우와 학문적 역량의 쇠퇴를 오랫동안 견뎌내야 하는 일이다. <경향신문>
비인기 과목, 6시간 강의도 어려워
지금 출강하고 있는 국립대에서는 시간당 4만2000원을 받는다. 지난 7년 사이 시간당 보수가 오르긴 올랐다. 그런데 상승폭은 몇 천 원 수준이다. 물가상승률과 비교하면 무의미한 수치다. 국립대의 경우 시간당 보수는 4만4000원, 사립대는 대부분 3만3000원에서 3만5000원 수준이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시간당 최고 보수는 5만5000원이다.
그는 지금까지 매학기 평균 20시간을 강의했다. 과목 수로 따지면 6과목이 넘는다. 전임교수들은 학기당 2, 3과목을 가르친다. 전임교수들이 가르칠 과목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같은 과목이라도 시간강사들이 가르치면 훨씬 비용이 적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이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주차장 만들어서 돈이나 벌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20시간을 강의하면 한 해 2000만원이 넘는다. 또래 직장인들에 비하면 결코 많은 수입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시간강사들의 평균은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시간강사들은 전국적으로 평균 4.2시간을 강의한다. 연간 수입으로 따지면 487만5000원이다. 월평균 40만원이다.
시간이 줄어든 지금도 매주 14시간 강의가 가능한 건 그가 영문학 석사 학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문학이나 국문학처럼 교양강의 수요가 많은 과목을 가르치는 강사는 이 정도 물량이 가능하다. 비인기 과목이거나 전임교수 비중이 높은 전공인 경우는 6시간 강의하기도 어렵다. 임금을 기준으로 한다면 극빈층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강의가 많아지면 수업의 질은 떨어진다. 강사들이 게을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석사 학위를 갖고 있는 안성애씨(가명·57)는 1986년부터 강사로 있었다. 한때는 그도 20시간 넘게 강의를 했다. 3개 학교에 출강하고, 방학 때 계절학기까지 꼬박꼬박 챙겨가면서 강의했다. 어느 해 수업에서는 매우 열성적으로 준비했다. 지정된 교재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온갖 자료를 뒤지면서 다채롭게 수업을 준비했다. 시험문제도 색다른 방식으로 냈다. 학기가 끝날 즈음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전임교수들은 자신의 세부 전공 분야에 따라 해당 강의만 한다. 강사들은 다르다. 학기마다 수업 내용이 바뀐다. 전공수업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대개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강의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강의의 깊이를 확보할 수도 없다.
강의 배정을 대학이 일방적으로 하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생긴다. 시간강사들의 강의는 학과에서 시간표를 짜면 학과 조교들이 해당 강사들에게 전화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전화가 오면 다음 학기 강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없으면 그만이다. 이유를 밝히는 경우도 없고, 전화를 받지 못한다고 이유를 묻는 사람도 없다. 1학기가 끝날 때쯤 안씨는 유학 중인 친구와 통화 중이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지만 중간에 전화를 끊지 않았다. 휴대전화에 찍힌 번호만으로는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강하던 대학이었다. 조교가 시간표를 확정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있던 중이었다.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건 학과 조교는 "전화를 받지 않아 강의를 목요일에 잡아놨다"고 말했다. 목요일에 안씨는 다른 대학 강의가 예정돼 있었다. 안씨가 "요일을 바꿀 수 없겠느냐"고 하자 학과에서는 강의를 아예 없앴다.
"강사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
안씨는 1990년대 초반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당시 출강하고 있던 한 사립대에서 강사들을 입학시험 감독관으로 동원했다. 하루 종일 시험 감독을 하고 왔더니 이튿날 채점하는 데도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보수를 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개인 사정으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안씨는 다음 학기 강의를 배정받지 못했다. 그는 "해고는 상시적인 일이다. 그나마 이번엔 '비정규직법 때문'이라는 핑계라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 강의평가가 도입된 뒤로는 강사 생활이 더 팍팍해졌다. 현재 안씨가 출강하고 있는 대학은 전임교수와 시간강사 모두를 상대로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한 뒤 하위 10% 해당자에게는 강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안씨는 처음부터 불리한 게임이라고 말한다. 전공을 가르치는 전임교수들의 강의에 대한 집중력과 강사들이 가르치는 과목에 대한 집중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강생 수에서도 불리하다. 전임교수가 20~30명 규모의 수업을 할 때 강사들은 90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강의든 채점이든 제대로 될 리 없다. 게다가 수업에 열의가 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강사가 엄격한 통제를 하려고 하면 평가가 좋게 나오기 어렵다.
지금과 같은 시간강사 제도는 학문적 역량의 위축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강의 준비와 생계에 대한 우려가 연구에 몰두해야 할 힘을 빼앗기 때문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강사인 경우 학위 취득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수 년이 지나도록 학위 논문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논문을 쓰기 위해 강의 시간을 줄이는 건 기회비용이 크다. 강의 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넘쳐나기 때문에 한 번 줄어든 강의는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간강사들의 사회적·경제적 조건은 저마다 다르다. 시간강사들이 모두 극빈층이라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성별과 전공, 결혼과 맞벌이 유무, 집안의 경제력 등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요인은 여럿이다. 그러나 이런 구조가 유지되는 건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과 우리 사회의 학문적 역량만을 훼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안성애씨는 "문제의 근본은 불안정한 신분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면서 "강사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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