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일간지와 CNN 등 방송사에서는 “영부인인 미셀 오바마가 아동비만을 줄이기 위한 대책마련에 나섰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오바마 여사는 인터뷰에서 “우리 어린이들의 건강한 삶과 밝은 미래를 보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건강을 위해 비만을 예방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을 살펴볼 때, 비만은 진화상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에서 진화에 대한 개념을 처음 발표했다. 그로부터 151년이 지난 지금, 진화론은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쳐 진화경제학, 진화심리학, 진화윤리학, 진화의학 등 다양한 용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진화론을 이용해 건강과 질병을 이해하려는 진화의학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날 비만, 당뇨, 고혈압, 대사증후군 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비만은 진화의 당연한 결과
10~11세기에 노르웨이 출신의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했을 때 이들을 몰아낸 인디언들은 수만년 전 아시아로부터 베링해협을 거쳐 이주해 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1492년 콜럼부스가 바하마 군도에 도달했을 때 음식을 제공하고 농사짓는 법을 알려줘 유럽 선원들의 목숨을 구해준 원주민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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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생존을 위해 영양소의 저장능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화가 되어야 했다. | 미국 인디언의 조상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목숨을 걸고 추위를 이겨내며 아시아로부터 북아메리카로 이동을 해야 했고, 지금의 베링해협 부근을 건너는 동안 적은 양의 식량을 지니고 미지의 대륙을 향해 걸어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이라는 강력한 세력을 만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을 것이다.
환경에 대한 적응이 뛰어난 인간들은 영양소를 섭취할 경우 재활용을 위해 이를 저장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화했고, 먹을거리가 생기면 필요 이상의 영양소를 몸에 보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음식이 바닥나도 이미 체내에 저장된 영양소를 이용해 생존이 가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몸 속에 영양소를 저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만 년간 굶주림으로부터 살아남아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비법이다.
피마 인디언을 통해 찾아낸 증거
인류는 유인원 때부터는 수백만 년, 현생인류부터라면 수만 년 동안 살아왔다. 농사 짓는 법을 처음 안 것은 신석기시대인 약 1만년 전이니, 그 전에는 한 장소에서 먹을 것을 해결할 수 없었다. 신석기 이전의 사람들은 동물처럼 음식을 찾아 헤매는 것이 그 날의 의무이자 해결과제였다.
농사짓는 법을 깨달은 후에도 식량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진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당시에 ‘인권’이나 ‘윤리’라는 말이 사람들의 삶에 깊이 파고들지 못한 것도 먹을 것이 부족해 생존의 기본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먹을 게 없는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려는 욕망을 가진 집단은 침략이나 전쟁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비인간적 행위를 통해 노예를 얻어야 식량을 톨이라도 더 생산할 수 있었다. 음식이 부족한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사람의 몸은 영양소를 저장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20세기 후반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당뇨 환자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고혈압, 고지혈증, 대사증후군과 같이 비만, 당뇨와 연관이 있는 환자들도 많아졌다. 원인은 영양소 저장 능력이다. 미국 남부와 멕시코의 소노라(Sonora) 지방에 사는 피마(Pima) 인디언들을 예로 들어보자.
피마 인디언의 명칭은 “나는 모른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처음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유럽인들에게 이 말을 자주 사용했기 때문이다. 1845년 멕시코에서 전쟁을 감행한 미국은 1848년 승리함으로써 영토를 넓혔다. 결국 리오그란데 강이 국경으로 정해지며 피마 인디언들의 일부는 미국 국적을, 일부는 멕시코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비만, 당뇨 환자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 국적의 피마 인디언들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 현상이었다. 반세기 전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비만인이 전 인구의 50%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다. 당뇨 환자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칼로리가 높은 패스트푸드가 미국의 피마 인디언들에게 보급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여겨진다. 멕시코의 피마 인디언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
지난 반세기동안 멕시코 국적의 피마 인디언들에게서는 어떠한 체형 변화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패스트푸드가 보급되지 않아 과거처럼 농업을 위주로 생활을 하고 있다. 결국 영양 및 칼로리 과다 상태에 놓이지 않은 것이 현대 질병에 노출되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비만과의 전쟁, 생존 위해 운동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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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만과의 전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과제이다. | 수만 년간 배고픈 상태로 살아야 했던 인류는 100년 전부터 생활이 획기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약 200년 전 발표된 맬서스의 인구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식량 생산도 급격히 늘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맬서스가 예견하지 못했을 만큼 농사와 축산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후반이 되자 여기에 더해 패스트푸드처럼 영양분이 ‘충분함을 넘어서 과다한’ 음식이 일상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현재 인류의 신체는 영양소 저장 능력을 극대화한 상태로 발전해 있는 상태다. 탄수화물 1g은 4kcal의 열량을 지니고 있지만 지방은 9kcal이다. 문제는 지방을 섭취하지 않아도 우리 몸에 지방이 저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진화의 결과로 인해 탄수화물만 섭취해도 지방으로 대사되어 저장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저장된 영양소를 사용하려면 많은 일과 운동을 해야 한다.
지금은 고칼로리의 음식이 주변에 넘쳐난다. 식품첨가제인 MSG(monosodium glutamate)가 감칠맛을 자극해 배가 부른데도 계속 음식을 입에 넣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문제다. 게다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보편화되고, 가까운 거리도 자동차를 몰고 가는 일에 익숙해 비만과 관련된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대사증후군 등이 전염병처럼 인간 사회에 퍼지고 있다.
진화란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만 년간 진화된 인간의 영양소 저장 능력을 몰아내려면 최소한 수천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해결책은 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 선조들이 지쳐 쓰러지도록 동물을 사냥하며 뛰어다녔듯 우리도 운동을 해야 한다. 먹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음식 섭취를 줄여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과제다. 저장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만 생존할 수 있도록 자연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부인 오바마 여사가 ‘아동 비만’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듯 우리도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할 때가 되었다. 지금은 비만해지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비만에 시달리는 몸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수많은 불편과 통증을 야기한다.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