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에너지

[중앙일보] 스마트 그리드(똑똑한 전기)

FERRIMAN 2010. 10. 6. 08:36

기사 입력시간 : 2010-10-06 오전 12:01:00
대한민국 스마트 혁명, 그 현장을 가다 ⑤ E에너지=지능형 전력망
SK텔레콤 제주 ‘스마트 그리드’ 시범 사업
전자제품별 전력소모량 체크 … ‘낭비 NO’ 똑똑한 전기 서비스
#장면1. 지난달 16일 제주공항에서 동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20여 분 달려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동성동의 한 2층 농가. 햇빛에 반짝이는 태양광 전지패널이 옥상에 널찍하게 깔려 있었다. 집 안에는 각종 전자제품의 전기 소모량을 실시간 볼 수 있는 ‘스마트 소켓(똑똑한 전기코드)’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국책 프로젝트’ 시범가구의 하나인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동성동의 한 농가 옥상. 집주인인 이동일 동성동장이 태양광 전지패널 앞에서 휴대용 정보단말기로 여러가지 시연을 해 보이고 있다.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생산하고, 정보단말기로 집 안의 전자기기를 원격 조작한다. [SK텔레콤 제공]
집주인인 이동일(56) 동성동장은 손바닥만 한 공책 크기의 모바일 단말기 ‘홈디스플레이(IHD)’를 시연해 보였다. 화면에 손가락을 터치하면서 집 안의 전자제품 전력 소모량을 체크해 보더니 아무도 없는 방에 켜진 선풍기와 전등을 원격으로 껐다. 그는 집 외벽에 붙어 있던 ‘스마트 미터(계량기)’를 가리키며 “냉장고 등 몇몇 가전제품이 작동 중인데도 전력 소모량을 알려주는 눈금이 마이너스(-)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태양광 발전량이 집 안에서 쓰는 전력보다 많으면 계측기 눈금이 거꾸로 돌아가게 돼 있다는 것. 옥상에 설치한 3㎾(한 달 평균 30~60㎾h) 발전 규모의 태양광 패널 14개가 한낮의 햇빛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어 집 안에서 쓰고 남은 것은 인근 전력회사에 판다.

SK텔레콤이 제주도의 김녕·동북·월정리 세 곳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국책 프로젝트’의 시범주택 현장이다. 이 사업을 수행하는 윤석중 SK텔레콤 미주사업본부장은 “지난 5월부터 세 지역의 총 1000여 시범가구에 ‘똑똑한 전기’를 서비스하고, 태양광 발전기·가전제품은 물론 전기자동차까지 시험 운영한다”고 소개했다. 시범가구가 되겠다는 신청이 몰리는 바람에 제비뽑기를 할 정도였다.

정부는 올해를 ‘스마트그리드 서비스 원년’으로 선언하고, 4개 민간 컨소시엄과 제주 실증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제주방송·일진전기가 참여하는 SK텔레콤 컨소시엄 이외에 KT·LG전자·한국전력이 주도하는 컨소시엄 등 모두 4개 컨소기업이다. 지식경제부의 김재섭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장은 “2030년까지 스마트그리드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산 2조여원 등 모두 27조원을 투자해 사업을 일으키면 5만여 개의 일자리와 74조원 규모의 관련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이 인터넷으로 세계 사이버 시장을 그물처럼 연결한 것처럼 대한민국이 세계 처음으로 전국적인 지능형 전력망을 거미줄처럼 연결해 글로벌 ‘E(임베디드IT)-에너지’ 시장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IT 입혀 ‘똑똑한 전기’로

스마트그리드는 전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데 정보기술(IT)을 활용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나 IHD와 같은 정보단말기로 전력 소모량을 확인한 뒤 쓸데없이 돌아가는 전자제품을 끌 수 있다. 또 전기요금을 시간대별로 차등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집 안의 전자제품이 스스로 꺼지거나 충전되도록 한다. 나아가 가정에서 태양광 패널 등 발전설비를 이용해 전기를 만든 뒤 쓰고 남으면 전력회사에 파는 과정을 IT로 자동 제어·관리한다.


전력회사도 소비자의 전기 사용 패턴을 1년 365일 한눈에 파악해 발전·송전 부문의 비효율을 줄인다. 전력산업과 일상생활에 IT를 입혀서 ‘똑똑한 전기’를 생산·유통·소비시키는 것이다.

#장면2. 제주공항 인근의 SK텔레콤 제주지사 3층의 ‘네트워크운영센터(NOC)’. 전기를 똑똑하게 만들고 이를 하루 24시간 원격 관리해 준다. 이곳의 중대형 컴퓨터와 첨단 통신제어시스템, 대형 액정모니터가 시범가구들의 전력 소모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갑자기 전력 소모가 급증하는 등 이상 징후가 보이는 시범주택이 나오자 직원이 집주인에게 연락하면서 원격으로 그 원인을 찾고 있었다. 시범가구들의 전력 소모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것이다. 곽승현 SK텔레콤 매니저는 “가정마다 전력 시스템의 문제점을 따져보고, 어떤 시간대에 전기를 쓰는 것이 좋은지 자문한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시범가구들을 보면 일반 가정보다 전기를 덜 쓴다. 집 안 전기 소모량보다 태양광 발전량이 많아 거꾸로 한국전력에 전기를 팔아 돈을 받는 가구도 있다.

전력을 친환경 신성장엔진으로

#장면3. 제주공항에서 1131번 도로를 타고 남쪽 한라산 방향으로 가다 보면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가 나온다. 건물 입구엔 넉 대의 전기자동차와 충전설비가 있다. 도심형 저속 전기차인 CT&T ‘e-존(ZONE)’ 두 대와 기아자동차의 경차 모닝을 개조한 전기차 두 대다. 전기차의 엔진인 배터리는 SK에너지가 개발하고, 전력제어시스템은 SK텔레콤이 운영한다. SK에너지의 안규찬 스마트그리드팀 부장이 충전설비의 액정화면에 인증카드를 대자 이용자와 전기차 정보가 떴다. 전기코드처럼 생긴 집 안의 전력케이블을 충전설비에서 꺼내 전기차에 연결하자 계기판의 충전 눈금이 돌아갔다. 그는 “이달부터 김녕리 등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에 충전설비를 설치하고 전기차를 운영한다. 밤에 충전 플러그를 꽂아 놓으면 100㎞ 이상의 거리를 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똑똑한 전기는 친환경 녹색산업에도 부응한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30년 전국에 스마트그리드를 도입할 경우 원유 약 3억 배럴(47조원어치)을 덜 수입하고, 발전소 건설비용 3조2000억원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억여t 줄일 수 있다. 똑똑한 전기는 전력회사뿐 아니라 전자·자동차·화학 등 관련 업계에도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세계 스마트그리드 시장이 올해 897억 달러에서 2014년 1714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주=이원호 기자

☞◆홈디스플레이(IHD·In Home Display)=가정 내 전자기기들의 전력 소모량을 원격 점검·조작하는 개인정보단말기. 가전제품의 실시간 전력 사용은 물론 전기자동차의 충전 상황과 태양광 발전량, 전기요금 고지서 등이 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