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마트 혁명, 그 현장을 가다 ① E카의 산실 - 현대모비스
‘바퀴 단 컴퓨터’ 차 스스로 운전하는 시대로
알아서 가다 서는 자동차, 손톱 만한 칩 하나로 손금 들여다보듯 위치를 알 수 있는 화물, 고속철도 안에서도 책이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손 수첩만 한 태블릿 PC…. 세계적인 ‘스마트 혁명’ 바람이 국내에도 불면서 ‘똑똑한(Smart)’ 정보기술(IT)이 자동차·물류·출판 등 일반 산업을 바꿔 나가고 있다. 이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임베디드(Embedded) IT 혁신 산업’의 10개 현장을 중앙일보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공동 선정했다. 각 산업 현장에서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지, 또 무엇이 숙제인지 따져보는 10회 시리즈를 준비했다.
지난 16일 경기도 용인시 마북동 산기슭에 자리 잡은 현대모비스 연구소의 실험동 주차장. 여기 오기까지 정문에서부터 외부 방문객에 대한 보안점검이 예사롭지 않았다. 기자의 휴대전화 폰카에 촬영금지용 테이프를 붙이고, 휴대용 저장장치(USB)와 노트북 검사까지 했다. 우선 차체의 중요 부분을 검은색 천으로 가려놓은 개발 차량들이 눈에 띄었다. 무슨 차종인지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하고서야 그중 한 승용차의 조수석에 앉을 수 있었다. 운전자는 운전석 옆에 있는 모니터의 버튼을 누르며 “목을 돌리지 않고 모니터 화면만 보면서 깔끔하게 주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니터에 차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이미지 화면이 곧 나타났다. 운전자는 모니터만 보며 핸들을 조작해 주차선을 넘지 않고 차를 주차했다. 최근 개발에 성공해 상용화를 앞둔 AVM(Around View Monitoring) 시스템이다. 이 연구소 기술전략팀의 이원우 차장은 “AVM은 차량 앞뒤, 그리고 좌우 사이드미러 아래쪽에 주변 180도 각도를 촬영할 수 있는 렌즈를 한 개씩 달아 차량 주변을 모두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일본 닛산의 인피니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에 들어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현대모비스가 처음 개발에 성공했다.
# IT 융합으로 자동차 리더 된다
현대모비스 용인연구소 사람들은 요즘 ‘정보기술(IT) 융합’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 회사는 지난 7월 IT와 융합된 첨단 부품 개발에 연구력을 집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정석수 부회장은 최근 전장(電裝) 분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업구조를 환골탈태하는 중장기 사업 비전을 제시했다. 2015년까지 IT융합 부품의 비중을 크게 늘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 3500억원인 연구개발비를 2015년에 65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연구인력도 1500명에서 2015년까지 2200명까지 확충할 계획이다. 신영철 전무는 “자동차에 장착되는 전장부품 비율이 40%에 육박할 만큼 부품산업이 친환경 전자장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모비스는 국내 자동차 부품 정상 업체이면서도 모듈 생산에 치중해 전자제어장치(ECU)로 대표되는 IT부품 개발에 뒤처졌다는 자체 반성론이 일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의 ‘자동차 전자화와 차량용 전자부품 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만 해도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ECU가 8∼10개 정도였으나 2005년에 37개까지 늘어났다. 고급 차량일수록 더 많았다. 2006년에 나온 4세대 렉서스 LS460에는 100개 넘는 ECU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 버튼 하나면 주·정차가 자동으로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모비스가 집중 개발하는 IT 장치는 ▶SCC(차간거리 제어장치) ▶LKAS(차선유지 도움장치) ▶EPB(전자식 주차브레이크) 등이다. 앞차와의 간격을 짧아도 4m까지 유지하도록 해주는 SCC를 개발해 2012년부터 국내 양산차에 도입할 예정이다. 나아가 PCS(전방추돌안전장치)도 연구한다. 독일의 콘티넨탈과 보쉬가 양분한 SCC 시장에 뛰어들 예정이다. 이원우 차장은 “앞차가 급정거했을 때 이를 따라 차가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시스템까지 개발한다”고 말했다. SCC에서 앞차 간격을 알기 위해 쓰는 레이더 센서에 카메라·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까지 결합하는 기술이다. 2014년까지 개발을 마치고 상용화한다는 게 목표다.
LKAS는 SCC와 함께 운전자의 졸음이나 부주의에서 비롯되는 사고를 예방해 준다. 전방 200m까지 거리가 측정되고 근거리에서 64도까지 카메라 센서가 추적한다. 차선 이탈 위험이 감지되면 경보음을 울려 위험상황을 알리고 핸들에 적당한 힘을 가해 차선을 자동으로 유지시킨다. 해외에서 볼 수 없던 기능도 연구 중이다. EPB는 손발로 제어하는 주·정차용 브레이크를 버튼 하나로 조작하는 것이다. 출발 때는 페달만 밟으면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풀리며, 비탈에서도 뒤로 밀리지 않는다. 내년 2월 기아자동차 세단 K7에 처음 적용할 예정이다.
현대모비스는 종국적으론 차가 알아서 운전해 주는 전자동 시스템을 목표로 삼았다. 기술전략팀의 김남종 차장은 “도로상의 차량 소통 정보를 실시간 추적해 주는 한국도로공사 ‘ITS(지능형 교통시스템)’와 결합할 경우, 차가 스스로 주행하면서 안전은 물론이고 연료절감 등 환경친화 기능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 자동차 - IT 업계 협력이 필수
지식경제부 등 업계·정부는 IT 융합에 팔을 걷어붙였다. 2008년 11월부터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현대자동차 그룹·마이크로소프트가 현대차 경기도 의왕연구소에 차량 IT 혁신센터를 공동 설립해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10개 회원사를 선정해 19억원의 상용화 기술개발 자금을 지원했다. 다국어 음성인식 미들웨어 등 우수 결과물은 이르면 내년 신차에 적용된다. 지식경제부의 정만기 정보통신국장은 “국내 자동차 산업은 연관 분야까지 합하면 150만 명의 고용효과를 낸다. IT 융합까지 활발하면 고용효과는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다만 제품을 지능화·시스템화하는 핵심 기술인 임베디드 소프트웨어(SW)나 자동차-IT 업계 간 자발적 협력이 아직 부족하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에 따르면 자동차 원가 중 SW 비중은 2007년 8.8%에서 2012년 15.5%까지 커질 전망이다. 2008년 현재 이 SW의 국산화 비율은 5%에 불과하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선진국에선 독일 BMW-인피니언, 일본 도요타-도시바 등 한 국가 내 기업 간 IT 융합 협력체제가 활발히 조성되고 있다.
특별취재팀=이원호·이나리·심재우·박혜민·문병주 기자
☞◆ECU(Electronic Control Unit, 전자제어장치)=센서를 통해 차량 안팎의 상황을 파악해 주행 중 부딪치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도록 해주는 부품. 점화시기 등 엔진의 핵심 기능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IT 발달과 더불어 차량의 전 부분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ITS(Intelligence Transportation System, 지능형 교통시스템)=전자·정보·통신·제어 등의 기술을 교통체계에 접목한 교통 시스템. 차량 간 또는 도로 주변의 통신 기지국 간 정보교환을 통해 교통 흐름이나 사고 유무 등을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나아가 차량의 자동운행 시스템에도 적용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