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44> 산업 비타민 또는 산업 무기, 희토류
‘나는 숨어 있다’ ‘얻기 힘들다’ … 희귀하다는 희토류 원소들 이름 뜻이죠
|
 |
|
| 산업의 비타민에서 산업용 무기로. 희토류가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녹색성장의 미래는 희토류 없이 생각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하지만 불안 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매장과 생산이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분쟁으로 이런 불안이 현실화됐다. 중국은 자국에 편중된 희토류 자원을 무기화했고, 중국산 희토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일본은 일단 백기투항했다. 전 세계가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희토류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세계적 주목을 끌고 있는지 살펴본다.
최현철 경제부문 기자
지각 내 함유량 300ppm 미만 금속, 총 17개 원소
희토류란 지각 내에 총 함유량이 300ppm(100만 분의 300) 미만인 금속을 의미한다. 영어로 ‘희귀한 흙(rare earth)’이란 단어를 일본에서 직역해 만든 말을 그대로 수입한 것이다. 원자번호 57~71번인 란탄계열 원소 15개와 스칸듐(Sc, 원자번호 21), 이트륨(Y, 원자번호 39) 등 모두 17개 원소가 이에 포함된다. 꼭 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금속류도 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787년 스웨덴의 포병장교가 처음 발견했다. 그래서인지 원소 이름에 스웨덴 지명(테르븀·에르븀 등)이 많다. 또 작고 희귀하다는 의미를 가진 원소이름도 많다. 예를 들어 란타늄(La)은 ‘나는 숨어 있다’는 의미고, 디스프로슘(Dy)은 ‘얻기 힘들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은백색 또는 회색을 띤다. 공기 중에서 서서히 산화하며, 산과 뜨거운 물에는 녹지만 알칼리에는 잘 녹지 않는다. 물리화학적 성질이나 광물 내 공존하는 특성에 따라 경희토(輕稀土, 란타늄·세륨·프로세오디뮴·네오디뮴), 중희토(中稀土, 프로메튬·사마륨·유로퓸·가돌리늄), 중희토(重稀土, 테르븀·디스프로슘·홀뮴·에르븀·톨륨·이테르븀·루테튬) 등으로 나뉜다. 특성상 이 세 종류의 희토를 적절히 혼합했을 때 경제성을 최대화할 수 있다.
원자로·전기자동차·유도탄 … 쓰임새 점점 넓어져
|
 |
|
희토류 어디에 쓰이나 전기자동차, LCD, 초전도체(위쪽부터) |
| 희토류가 처음 발견됐을 때는 광학산업의 렌즈 연마용 정도로 쓰였다. 하지만 화학적으로 안정적이고 열을 잘 전달하는 고유한 성질 때문에 갈수록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란타늄·프리세오디뮴·네오디뮴·사마륨·디스프로슘 등은 영구자석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란타늄·유로피움·테르븀·이트륨은 형광체를 만드는 원료로 쓰인다. 홀뮴·톨륨·이테르븀 등은 레이저에 응용된다. 이 밖에 유리연마제·촉매·충전지·세라믹·원자로·초전도체·광디스크 등 사용 범위가 무척 넓어졌다. 쓰이는 양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산업 곳곳에서 없으면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기 때문에 ‘산업의 비타민’이라 불릴 정도다.
특히 최근 들어 더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희토류가 더 작고 강력한 영구자석을 만들 수 있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석은 여러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데 필수적인 부품이다. 미래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되는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차, 2차 전지, 디스플레이, 풍력발전 등에는 꼭 자석이 들어간다. 자석의 크기가 작아지고 기능이 향상될수록 완성된 친환경 제품의 크기도 줄고, 더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희토류 소비의 30%가량이 영구자석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도요타의 전기자동차 ‘프리우스’ 한 대를 만들려면 네오디뮴 1㎏이 필요하다. 배터리에는 란타늄을 비롯한 다른 희토류 10~15㎏이 필요하다. 풍력발전기에는 큼지막한 영구자석이 들어가는데 이 중 3분의 1 정도가 희토류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일본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금지 조치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첨단무기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게 희토류다. 보잉의 제트기용 정밀 유도폭탄 방향조절장치에 필요한 미세 자석을 만들기 위해선 네오디뮴이 필요하고, 미사일 유도 시스템과 전자전 시스템, 레이저 등에도 희토류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지난 4월 “중국의 희토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재의 상황은 전략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공식 우려를 제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매장량 31% 중국, 저가 공세로 생산량 97% 장악
1992년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고 호언했다. 그의 예측대로 지난해 세계 희토류 생산량 12만4000t의 97%가 중국에서 나왔다.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마운틴 패스 광산은 1975년까지만 해도 컬러TV의 음극관에 쓰이는 희토류의 세계 최대 공급지였다. 호주 등 다른 나라에서도 희토류 광산이 꽤 있었다. 지금도 매장량만 따지면 러시아(22%), 미국(15%)·호주(6%) 등의 부존량이 많다. 중국의 매장량은 전체의 31% 수준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이 일부러 독점적 시장을 만들려 의도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 광산들이 중국의 저가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희토류는 대게 순도가 무척 낮다. 다른 광물과 달리 캐낸 뒤 순도 높은 광물로 추출·분리해내기가 어렵다. 분리 과정에서 독성 약품으로 걸러내야 한다. 그래서 희토류 광산이 경제성을 갖기 위해선 채굴과 추출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와 함께 싼 노동력, 환경파괴에 무심한 사회적 환경 등이 필요하다. 상당한 기술력도 있어야 한다.
중국의 경우 이미 1980년대부터 희토류 개발을 위한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당국은 환경 문제에 대해 적당히 눈감았다. 싼 인력은 얼마든지 있다. 돈이 좀 된다 싶으니까 마구 캐내는 현상도 나타났다. 당시 중국에서는 “희토류가 흙값보다 싸게 팔린다”는 개탄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미국 등지에서는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희토류 광산은 기피 대상이었다. 이런 와중에 싼 중국산 희토류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자 다른 나라에선 생산을 포기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독점 체제가 굳어지자 중국은 태도를 바꿨다. 2000년대 초반부터 희토류 광산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금지하고, 지분투자도 49% 이상 할 수 없게 했다. 2007년엔 수출량을 전 세계 수요량의 80%로 제한했다. 지난해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 외신들은 중국 정부가 테르븀·디스프로슘·이투륨·툴륨·루테튬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6개년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 국부펀드가 나서 희토류 비축사업도 벌인다. 조만간 가격 급등뿐 아니라 아예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센카쿠 분쟁 계기로 자원 무기화 경각심 퍼져
일본과의 영토분쟁에서 희토류 수출 금지 카드를 꺼낸 것은 일련의 희토류 보호정책의 결정판이다. 그동안 수요-공급의 문제로 치부하던 세계는 이 사건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원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즉각 대응책 마련에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미국은 2002년 문을 닫았던 마운틴 패스 광산을 다시 열겠다고 선언했다. 호주 등 매장량은 꽤 되지만 생산은 하지 않았던 나라들도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번에 크게 한 방 먹은 일본은 중국 아닌 다른 나라로 수입처를 돌리기 위해 몽골이나 호주 등을 기웃거리고 있다. ‘희토류 먹는 하마’로 불리는 전기자동차용 영구자석에 쓸 대체 자원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각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희토류의 특성상 짧은 기간 안에 중국 독점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그보다도 훨씬 심각하다. 현재 희토류 비축분은 수요량의 0.2일분(3t)에 불과하다. 내년까지 270t을 수입하기로 했지만 전용 창고조차 없다. 온도에 민감한 희토류를 사무용품 창고에 쌓아둬야 할 판이다. 광물자원공사가 중국의 두 개 희토류 광산에 지분을 투자한 게 전부다.
정부는 일본과 중국의 분쟁이 터진 다음에야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식경제부는 최근 6대 전략광종에 희토류를 추가해 7대 전략광종으로 지정하고, 2016년까지 2500억원을 투입해 1200t의 희토류를 비축하기로 했다. 아프리카나 몽골 등에서 아예 새 광산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