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 사람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러 가는 길이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보면 지리산 자락에 얹혀 사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지리산 자락에 밴 숱한 역사의 흔적을 목격하게 된다. 지리산 종주가 지리산 자체를 체험하는 일이라면,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건 지리산 자락의 역사와 문화를 온몸으로 체득하는 일이다. 지리산둘레길은 제주올레처럼 코스에 숫자를 붙이지 않는다. 대신 마을 이름으로 표기한다. 지리산둘레길의 본 뜻이 지리산 자락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어서다.

(주천~운봉~인월~금계~동강~수철)
전북 남원 주천에서 시작해 경남 함양을 거쳐 산청군 초입에 이르는 약 70㎞ 구간이다. 지리산둘레길 중에서 제일 먼저 열린 길이다.
주천~운봉~인월 구간은 거의 평지다. 주천 구룡치 숲길을 지나면 논밭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적당한 숲길과 들판길이 어우러진 이 길은 조선시대 관로 ‘통영별로(통영~전주~서울)’가 지나던 길이다. .
인월~금계 구간의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부터 함양군 창원마을까지 길이 지리산둘레길의 효시다. 2004년 지리산 생명평화탁발순례를 마친 도법 스님이 지리산둘레길 조성을 제안했고 이 뜻을 받들어 2007년 (사)숲길이 꾸려졌다. 그 이듬해 이 길이 시범구간으로 처음 열렸다.
상황마을부터 창원마을로 넘어가는 등구재는 전북과 경남의 경계다. 행정구역은 달라도 두 마을의 풍경은 비슷하다. 다랭이 논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논을 오르내리는 샛길이 가르마처럼 이어진다. 등구재로 향하는 길목엔 지리산둘레길 최초의 주막 ‘등구령 쉼터’가 있다. 처음엔 평상 하나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비닐하우스 세 동이 들어서 제법 규모가 된다. 등구령 쉼터에서 구절초 식혜 한 잔 들이키고 등구재를 넘으면 상황마을에 다다른다.
창원마을을 지나면 금계~동강 구간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용유담(龍遊潭)이 있다. 조선시대 지리산을 유람하던 사대부가 잠시 쉬어 유흥을 즐긴 곳이라는데, 지리산 댐이 들어서면 수몰된다고 한다.
용유담을 지나면 동강~수철 구간 내 점촌마을이 나온다. 진분홍빛 작약이 활짝 고개를 내민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이 나타났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무장공비 토벌을 이유로 자행된 양민 학살을 기억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처럼 지리산둘레길 곳곳에선 지리산의 슬픈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