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못지않게 그 사실성으로도 주목 받은 본격 SF의 선구자 쥘 베른이 1874년에 쓴 ‘신비의 섬’이란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난파당해 무인도에 도착한 군인들이 석탄연료가 떨어지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걱정한다. 그때 누군가가 ‘물을 때면 된다’고 말한다. 물을 분해하면 얻을 수 있는 수소의 경우 석탄과는 비교도 안 되게 힘이 좋으므로 ‘미래의 석탄’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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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무한한 양의 물을 원료로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무한 에너지이다. ⓒ사이언스타임즈 | 그로부터 120여 년 후인 지난 2002년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수소 혁명(원제는 Hydrogen Economy)’이란 저서를 통해 2020년경에는 수소 에너지가 대세를 이루는 수소경제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쯤이면 세계 석유 생산이 하락하고, 우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소 가운데 가장 흔한 수소가 대체 에너지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원자번호 1번인 수소의 최대 장점은 그 명칭 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수소를 뜻하는 ‘하이드로젠(hydrogen)’은 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히드로(hydro)’와 생성한다는 뜻의 ‘제나오(gennao)’의 합성어이다. 물로부터 얻을 수 있으며, 태우면 물이 생성되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수소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소원자 2개와 산소원자 1개로 이루어진 물을 전기분해하면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수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무한한 양의 물을 원료로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무한 에너지이다.
또한 수소는 연소시킬 경우 극소량의 질소산화물만 발생할 뿐 다른 공해물질이 전혀 생기지 않는 청정 에너지이다. 더구나 사용 후에는 다시 물로 재순환되므로 고갈될 걱정이 없다.
에너지 효율 또한 좋다. 수소는 산소와 2:1의 부피비로 연소하는데, 이때 1㎏당 약 2만8천여㎉의 열량을 발생시킨다. 적절한 조건으로 통제하면서 연소시키면 가스처럼 에너지원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연료전지를 통해 전기에너지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수소 생산법
1783년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가 인위적으로 수소를 얻는 데 처음 성공한 이후 1920년대부터 수소가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소의 대량 생산법은 천연가스나 석탄의 주요 성분인 탄화수소를 반응시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단점을 지닌다. 더구나 천연가스나 석탄은 매장량이 한정돼 있다는 문제점까지 있다.
이 같은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고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은 전기를 이용해 물로부터 산소와 수소를 분해하는 전기분해법이 있다. 하지만 전기 역시 대부분 화석연료를 이용해 생산되고 있으므로, 이 방법으로 생산되는 수소의 경우 진정한 의미의 대체 에너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물 전기분해에 사용되는 전기를 화석연료가 아닌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태양에너지나 풍력에너지, 지열에너지 등을 이용한 방법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전기 생산 단계를 거치지 않고 태양에너지를 직접 수소로 전환시키기 위한 방법들도 연구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광합성을 모방해 수소를 얻는 방법이다. 식물의 엽록소에서 태양광을 흡수하고 그 에너지로 물을 분해하여 수소를 산소를 분리한다는 것.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수소는 현재 수율이 2~3%에 불과하다.
광합성으로 이산화탄소를 동화시켜 유기물을 생산하고 산소를 발생시키는 시아노박테리아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도 제안되었다. 유전공학적으로 개량된 시아노박테리아를 사용할 경우 바다 표면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공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지난해에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태평양 심해의 열수구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닷물에 서식하는 해양 고세균을 배양해 일산화탄소와 유기물 등 먹이를 통과시켜 수소를 얻을 수 있는 생물반응기를 개발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 기술의 장점은 제철소에서 내뿜는 오염물질인 일산화탄소를 이용해 청정 에너지인 수소를 생산하다는 것인데, 해양과학기술원은 대량생산 개발목표 시한을 2018년으로 잡고 본격적인 실증 생산을 추진하기 위한 플랜트를 구축한 후 대량생산을 위한 연구에 나설 예정으로 알려졌다.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초고온가스로
하지만 현재 대규모 저비용으로 수소를 얻는 방법 중 실용화하는 데 가장 근접한 것은 원자력을 이용한 수소 제조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에서 수소를 분해하는 데 쓰이는 비용의 70~80%가 열분해에 필요한 에너지에 들어가는데,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열을 이용해 물을 직접 분해하자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은 원료인 우라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발전효율이 높은 에너지원으로서 대량생산체제를 갖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우라늄도 앞으로 60년 후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매장량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단점을 지닌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4세대 원자로 중의 하나로 개발 중인 ‘초고온가스로(VHTR)’이다. 4세대 원자로는 효율이 좋아 같은 양의 연로로도 6배 이상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므로 최장 향후 3천600년까지 연료 고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 분해는 흡열반응이므로 온도가 높을수록 수소생산 효율이 높아진다. 헬륨을 냉각재로,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하는 초고온가스로는 섭씨 950도의 고온을 내므로 이를 통해 물 분해를 할 경우 매우 효율이 높게 수소를 제조할 수 있다. 따라서 초고온가스로는 다가올 수소경제 시대를 대비해 경제적인 방법으로 수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초고온가스로는 수소 생산 외에도 고온의 열을 이용해 산업 공정열 및 고온 중기 공급, 연료전지, 수소 환원 제철, 메탄올 생성, 가스터빈을 이용한 전기 생산 등 다양한 산업적 이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원자력 선진국들은 초고온가스로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미국 에너지부도 2021년까지 원형로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2년까지 초고온가스로를 이용한 원자력 수소 생산시스템을 완성하고 2026년까지 실증로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프로젝트를 앞당길 수 있는 좋은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지난 15일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포스코 등 국내 13개 기업 및 기관이 참여하는 ‘원자력수소협의체(KNHA)’가 미국 주도로 14개 산업체가 참여하는 ‘차세대원전계획산업체연합(NIA)’와 초고온가스로 기술 개발 및 상업화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앞으로 협력해나가기로 합의했다는 것.
이번 협정으로 수소경제시대가 조금이라도 앞당겨져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지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