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교육과 정책

[사이언스타임즈] SF에서의 형이상학 (Metaphysics) (상)

FERRIMAN 2013. 10. 7. 09:56


SF에서의 형이상학 (상) SF관광가이드/SF 속의 종교 2013년 10월 07일(월)

형이상학(Metaphysics)은 이 세상이 존재하게 하는 궁극의 근원을 연구하지만 과학적인 검증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종교와 깊은 친연성을 지닌다. (사실 옛날에 둘은 한 몸이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첨단과학기술이 인간의 조건을 끊임없이 변화시켜왔음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과 종교가 오늘날까지 굳건한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체득한 과학지식과 합리주의만으로는 이 세상과 우주의 비밀을 충분히 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다중우주론과 멤브레인 차원이론 같은 이론물리학의 첨단영역을 탐색하다 보면 자연과학과 형이상학의 경계 구분이 모호해지는 지점까지 나아가게 된다. 물론 언제고 과학이 완벽하게 우주의 신비를 해명하는 날이 온다면 형이상학과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위안거리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역설적이지만 명색이 과학소설 작가라 해도 과학이 아직 100% 밝혀내지 못한 인간의 정신계와 우주의 물질계에 대한 통찰을 작품 속에 담아내자면 나름의 형이상학적인 (혹은 보기에 따라서는 종교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 <전설의 밤>의 무대가 되는 외계행성은 천년마다 그동안 쌓아온 견실한 문명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만다. 이 행성은 여러 개의 태양을 돌고 있어 천년에 불과 하루만 밤이 찾아오기 때문에 이를 천재지변으로 오해한 주민들이 광기와 공포에 휩싸여 세상의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 단편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계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얄팍하고 무너지기 쉬운지를 일깨워주는 과학소설의 고전이다.  ⓒDimension X

아시모프의 유명한 단편 <전설의 밤 Nightfall, 1941>과 하인라인의 <조던의 아이들 Orphans of the Sky, 1963>이 알기 쉬운 예들이다. 둘 다 불완전한 당대 과학지식의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형이상학과 구분되지 않는 종교적인 요소가 일조한다.

<전설의 밤>에서는 태양이 여러 개인 세상에서 밤이란 걸 모르고 살던 어느 행성의 주민들이 천년마다 밤이 한번씩 찾아오는 궤도에 접어들게 되자 그러한 천체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해명보다는 광란과 미신에 빠져들어 번번이 천년 간 쌓아올린 문명을 무너뜨린다.

<조던의 아이들>의 주무대는 목적지인 식민행성까지 빛보다 느린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거대한 세대우주선이다. 우주 바깥과 폐쇄되어 있는 이 인공 생태계에서 나고 자란 후손들은 초기 승무원들의 기억을 잃고 문명마저 퇴행한 나머지 우주선이 우주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기에 자연스럽지 못한 자신들의 인공 환경을 나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 위해 종교를 끌어들인다.

▲ 하인라인의 <조던의 아이들>은 거대한 우주의 방주를 타고 목적지까지 장구한 세월을 여행하는 이들의 후손이 과거의 역사를 잊고 자신들의 폐쇄 생태계가 세상의 전부인양 오해하면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독특한 종교를 발전시킨다. 이 작품 또한 인간이 얼마나 환경에 좌우되는 나약한 존재인가를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Chris Foss & 기적의 책

보다 최근의 예로는 애덤 로버츠(Adam Roberts)의 장편 <위에서 on, 2001>가 있다. 태양이 밑에서 떠서 수직으로 바로 위에서 져버리는 가파른 벼랑 세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왜 세상이 그렇게 생겼는지 그 이유조차 잊혀진 터라, 15세기의 미성숙한 과학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식으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한답시고 얼토당토않은 종교적 해석을 덧붙인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세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하드SF나 스페이스 오페라라 해서 형이상학을 끌어안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1) 엄밀히 말해 과학소설은 오로지 검증된 과학지식에만 국한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문학이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마다의 다양한 형이상학적 믿음이 기존의 검증된 과학지식과 결합하여 인간과 사회 그리고 우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비전을 제시한 결과가 바로 과학소설 문학이라 보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존 클루트(John Clute)와 피터 니콜스(Peter Nicholls)가 편집한 <과학소설백과사전 The Encyclopedia of Science Fiction, 1999>을 보면 형이상학은 철학의 한 분야이자 자연과학과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개념적 돌파(Conceptual Breakthrough)2), 대체역사(Alternate History), 우주론(존재론), 차원, 세상의 끝, 엔트로피, 종말론, 진화론, 신과 악마, 현상과 실체에 대한 인식의 문제, 지성(Intelligence), 언어학, 신화, 인간의 기원, 평행세계, 환생과 윤회, 경이감, 시간역설, 가상현실 그리고 종교 등의 항목들과 관련지어 설명되는 것이 그러한 반증이다.

다만 형이상학이 존재론적 철학의 범주를 벗어나 종교적인 색채를 띠게 될 때에는 과학소설 작가마다의 호불호가 갈리며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이러한 국면에서 과학소설 작가들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종교에 우호적인 작가들과 이를 백안시하는 작가들이 있다면 그 사이 어디쯤엔가 중도적인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작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 종교를 호의적으로 다룬 과학소설 작가 C. S. 루이스(왼쪽)와 레이 브래드버리(오른쪽). 특히 루이스는 자신의 과학소설에 종교적 목적을 갖고 집필했다는 인상을 줄만큼 노골적으로 기독교 색채를 드러냈다.  ⓒArthur Strong & February 1951 issue of Esquire

먼저 종교에 우호적인 작가들을 거론하자면 C. S. 루이스(Lewis)와 레이 브래드버리가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C. S. 루이스는 이미 그의 환상소설들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노골적으로 대입한 바 있으며, 과학소설의 창작 동기 또한 반과학주의의 메신저 역할을 하기 위한 취지에서 나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3) 예를 들어 그의 <우주3부작 Space Trilogy, 1938~1945>은 조잡한 과학기술로 의기양양해진 나머지 태양계 내 각 행성을 수호하는 대천사와 수호정령들의 힘을 시험하려 드는 사악한 과학자의 독단과 오류를 부단히 지적한다. 루이스는 인류의 성숙에 진정으로 기여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신앙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침례교도 가정에서 자란 레이 브래드버리는 흔히 유니테어리언(Unitarian)4) 신도로 분류되지만 정작 자신은 이러한 딱지 붙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로 브래드버리의 작품들은 하느님과 신앙에 관한 언급으로 가득하지만 작가 자신은 자신의 종교관을 좀처럼 밝히지 않았다.)5) 14세 이후로 작고하기 전까지 카톨릭과 선불교를 포함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와 신앙을 편력한 브래드버리는 루이스처럼 특정 종교를 맹목적으로 싸고돌기보다는 다양한 종교와 휴머니즘을 결합하여 사랑으로 귀결되는 철학을 지향한다. 그의 신앙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며, 사랑이 그에게는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다.6)

이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작가가 이언 M. 뱅크스(Iain M. Banks)로, 그는 종교에 비판적인 동시에 무신론의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사다. 현대사회의 대다수 무신론자들과 마찬가지로 뱅크스는 종교가 앞으로 인류와 상관이 없어지거나 주요한 관심사가 되지 못하리라고 본다. 1996년 영국의 모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종교란 세상을 이해하려던 인류사회 초창기 시도이며 현재는 과학이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으니 과학이야말로 이제 새로운 종교인 셈이라고 밝혔다.

▲ 종교에 비판적인 견해를 서슴지 않는 영국 작가 H. G. 웰즈(왼쪽)와 이언 M. 뱅크스(오른쪽).  ⓒBetterworldheroes.com & Kate Copeland

흥미로운 것은 뱅크스의 이 같은 형이상학적 편향성이 신앙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별 불만을 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의 대표작 <컬춰 The Culture> 시리즈는 영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잘 팔리는데 구매자 중에는 기독교인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SF평론가 피터 니콜스는 오늘날의 개방적인 사회분위기에서는 종교 비판을 흔히 접할 수 있는데다 설사 종교에 대한 비판이 있더라도 그 주장이 형이상학적인 논거를 지녔을 경우 감내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7)

뱅크스의 모국인 영국에서 무신론을 신봉하는 과학소설 작가의 뿌리는 H. G. 웰즈(Wells)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8) 또 다른 영국작가 데이빗 린지(David Lindsay)는 자신의 대표작 <아크투르스로의 여행 A Voyage to Arcturus, 1920>에서 조물주를 기독교와 유태교의 통속적인 하느님 이미지와 닮게 그렸는데, 이는 고통과 개인적인 분발만이 의미 있는 우주에서 기성종교들이 그려낸 신의 이미지들은 천박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한편 대서양 건너 미국의 초기 과학소설계에서는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가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웰즈의 초기작 <두 세계들 간의 전쟁 War of the Worlds, 1898>에서 화성인들의 침공을 신학적으로 설명할 방도를 찾지 못한 성직자가 끝내 미쳐 죽는가 하면, 그의 후기작 <다가올 세상의 모습 The Shape of Things to Come, 1933>에서는 유토피아 사회건설을 목표로 건설된 세계단일정부가 그 과정에서 모든 유형의 종교들을 없애버린다. 특히 웰즈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숱한 잔혹행위와 크고 작은 전쟁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니, 이러한 입장은 다음 회에 언급하게 될 아서 C. 클락의 견해와도 일맥상통한다. (C. S. 루이스의 과학소설은 웰즈의 작품들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출현했다.) 반면 아시모프는 자신이 무신론자라 해서 무조건 기성 종교와 종교인을 백안시하려 하지는 않았음을 지적해두고 싶다. 그는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지녔을지 모르는 선입관을 우려하여 다음과 같이 속내를 피력한 바 있다.

내가 무신론자라서, 종교인들의 믿음을 버리게 하려고 애쓴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나는 무신론을 포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무신론을 기성 종교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믿도록 강요해야 하는 일종의 또 다른 믿음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나는 누구보다 많은 책과 글을 썼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문제들을 놓고 수없이 씨름했다. 종교와 무신론에 대한 내 입장을 믿지 못하겠다면, 내 글들을 꼼꼼히 읽어가며 내가 종교를 그런 식으로 비꼰 적이 있는지 얼마든 찾아봐도 좋다. 다만 나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타당성 있는 과학적인 발견들(예를 들면, 진화론 같은)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맞설 뿐이다. 그들은 증거도 없이 그렇게 하거나 심지어는 거짓 증거를 가지고 진실을 왜곡하려고까지 든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진정한 종교인이라고 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종교의 격을 떨어뜨리며 과학보다는 종교 그 자체에 더 큰 해를 입힐 것이라는 점을 조심스레 지적해두고 싶다.
                                               --- 아이작 아시모프, "종교와 과학소설"(Religion and Science Fiction)9)
  
 
1) 그렉 베어(Greg Bear)의 하드SF <핏빛 음악 Blood Music, 1983>과 폴 J. 매콜리(Paul J. McAuley)의 스페이스오페라 <영원한 빛 Eternal Light, 1991>이 좋은 예다.

2) 개념적 돌파란 독자들이 기존의 세계관이나 인식체계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치 강한 충격을 받게 되는 과학소설상의 플롯이나 설정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하는 작품이어야만 과학소설로서 최상급 대우를 받는다는 뜻인데, 이는 일반소설이 추구하는 목적과는 확연히 궤를 달리하는 특성이다.

3)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하고 실증적인 논의는 ‘로버트 스콜즈 & 에릭 라프킨, SF의 이해, 평민사, 1993’을 참고하기 바란다.

4) 기독교 정통 교의(敎義)인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에 반하여,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고 하느님의 신성만을 인정하는 교파.

5) John Blake, “Sci-fi legend Ray Bradbury on God, 'monsters and angels”, CNN, August 2, 2010 (http://edition.cnn.com/2010/LIVING/08/02/Bradbury/index.html)

6) 브래드버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신약성서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요한복음이라며, 이 복음에는 사랑에 대한 언급이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7) 이에 덧붙여서, 피터 니콜스는 서구의 종교인들 대다수가 종교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실천하고 산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기독교를 비롯해 여타 종교들이 하나 같이 신앙체계라기보다는 해당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당연시하는 보편적인 생활양식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종교가 신성불가침한 절대영역이 아니고 우리의 삶과 일상의 일부라면 종교인들 역시 그에 대한 비판을 그리 위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John Clute & Peter Nicholls, The Encyclopedia of Science Fiction, Orbit, London, 1999, p.803)

8) 웰즈는 종교에 대해 공개적으로 적의를 드러낸 역사상 최초의 과학소설 작가였다.

9) Isaac Asimov, Religion and Science Fiction, [Asimov's Science Fiction], 1984
   (http://www.sfsite.com/asimovs/columns/edit.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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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2013.10.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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